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할 때, 처음에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던진다. 그렇게 한 7회까지 던지면 주위에서 슬슬 동요가 일어나고 8회쯤 되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던 투수도 의식을 하게 된다. ‘아, 내가 퍼펙트 게임을 할 수 도 있겠구나.‘ 라고 말이다. 볼넷을 포함해서 주자를 1루도 진루시키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다. 그러다 9회로 이어지면 도리어 매우 강한 압박감이 되어 투수를 괴롭힌다.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던질 때는 쉽게 넘어갈 수 있던 한 타자가 그렇게도 힘들고, 공 하나 던질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맞으면 어쩌지? 혹시 볼넷이 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에 몸도 무거워진다.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안타를 맞으면 도리어 한꺼번에 무너지기도 한다. 진정으로 위대한 투수는 이것마저 이기고 기록을 달성한다.

작년에 2010 코리아블로그어워드에서 IT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때, 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몰랐다. 상에 대해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고 의식조차 전혀 안했다. 그러다가 수상통보 전화를 받고도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도리어 시상식날에 가서야 실감이 나서 수상소감을 말할 때 긴장해서 허겁지겁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전혀 부담감이 없었기에 도리어 편했다.


올해 다음뷰에서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도 나는 한동안 거의 상을 의식하지 않았다. 사실 작년에도 후보에 올랐다가 수상하지 못한 터라 다소 아쉽기는 했다. 그렇지만 나보다 열심히 하고 나은 분이 받았기에 수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는 IT평론가로서 위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하루하루 열심히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때문에 상은 신경도 쓰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9월 정도에 문득 의식이 되었다. 아, 이러다 상을 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날은 많이 남았고 일년 동안을 총괄해서 가장 우수한 블로거에게 주는 상이란 게 쉽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리어 이런 생각이 내 글과 몸을 무겁게 만드는 게 싫었다. 자칫하면 글이 망가지고 상은 상대로 못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11월 정도가 되었을 때, 지나온 글들을 한번 살펴보았다. 과연 만족할 만한가? 이 정도면 상을 받더라도 누구에게 부끄럽지는 않을까 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대답은 좀 부족하긴 해도 나름 최선을 다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드디어 생각했다. ‘올해는 꼭 상을 받고 싶다. 받을 가능성도 크다. 더욱 노력하자.’ 고 말이다.


몇 번 말한 바 있지만 나는 현재 전문블로거로서는 한국에서 유일한 IT평론가다. 간혹 교수나 연구소장 등의 직함으로 평론을 하는 분이 있지만 블로그를 주력 미디어로 삼아 활동하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나는 이 분야를 어떻게든 개척하고 좋은 결과를 내서 뒷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전문 IT평론을 올리게 되면 돈이 되는 제품리뷰나 발표회 초대 등에서 불이익이 있다. 단순 홍보역할로 블로거를 보는 회사들이 날카로운 비평을 쓰는 사람을 우대할 리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제시할 것은 언론에 투고한다든가, 강의를 한다든가, 책을 내고 취재를 다닌다든가 하는 언론 미디어로서의 길이다. 또한 명예스러운 상을 받아서 인지도를 올릴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것조차 없다면 장기적으로 IT평론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블로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투표와 심사를 거쳐서 나는 마침내 염원하던 다음뷰 IT부문 수상자가 되었다. 이로서 나름 작년의 상과 더불어 두 개의 큰 상을 연거푸 수상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IT평론가로서 충분히 블로거가 성장해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너무도 기쁘다.


내 스스로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런 상을 받게 된 데는 한국에 IT평론가가 있어야 한다는 모두의 인정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필요하지만 나름 취약한 이 분야에 희망의 싹을 틔우기 위해 모두 호의를 보여준 것이다. 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내 글을 읽어주고 댓글과 추천으로 관심을 보여준 독자분, 이웃 블로거 분들께도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작년이 전반적으로 월드컵으로 인한 축구의 해였다면, 올해는 아마도 IT의 해가 아닌가 싶다. 많은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 가운데 큰 별이던 스티브 잡스의 죽음이 매우 아쉬움을 남겨주는 해였다. 작년에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소재로 전문 평론을 써서 블로그를 시작한 나로서는 감회가 새롭다. 그만큼 올해는 중요한 해였고 그 마무리로서 이번 수상은 멋진 유종의 미가 될 것이다.

나는 다시 도전한다.



커다란 상을 받는 것은 그 후에 어떤 의미가 될까? 누군가는 그것을 계기로 긴장이 풀려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는 하던 길에 대한 인정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할 수도 있다. 박수칠 때 떠나기 위해 상을 받은 후 명예로운 은퇴를 할 수도 있다.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다.

나는 IT업계의 영웅 스티브 잡스를 생각한다. 그는 어떤 영광과 결실을 얻어도 결코 안주하지 않았다. 반대로 어떤 좌절을 겪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항상 미래의 혁신으로 향했으며 그런 열정과 꿈이 사람들의 동감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커다란 상을 수상했지만 그것이 결코 끝이 아니다. 나는 다른 혁신적인 도전을 하고 싶다. 블로거로서 시작했어도 그 끝은 블로거뿐만이 아닌 보다 위대한 결실로 장식하고 싶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만 아직 시도하지 않은 어떤 것을 해보고 싶다. 나는 또 어떤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새로운 목표가 될 것이다.

이제 곧 2012년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블로거로서 세번째 맞는 해가 된다. 2012년을 맞아 다음뷰 수상자라는 명예와 자긍심을 품고 힘차게 달려가고 싶다. 그 길에 더욱 많은 분들과 함께 했으면 한다. 이런 좋은 상을 준 다음뷰와 응원해준 모두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