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 같다. 삼국지연의의 첫부분에는 ‘천하는 갈라졌다가 합쳐지고, 합쳐졌다가 갈라진다.’ 는 말이 있다. IT업계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어서 아날로그(사람)가 디지털(기계)로 바뀌었다가 다시 아날로그(사람)으로 돌아오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런 것은 또한 문명의 발전단계에 따라 다르다. 최근 우리가 즐겨찾는 맛집 가운데 ‘수타면’ 이란 걸 보자. 옛날에 우동이나 짜장면의 면발은 당연히 손으로 쳐서 만들었다. 그러다가 인건비가 비싸지고 기계가 발달하자 기계로 뽑은 면발로 바뀌었다. 하지만 다시 예전의 손맛과 정성을 그리워하는 풍조에 의해 손으로 뽑은 수타면이 주목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슷한 시간대를 사는 지금 얼마전 인터넷에서 본 뉴스가 있다. 중국의 시골에서는 오히려 로봇(기계)이 만드는 면발을 이용한 우동집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인건비가 싸고 문명이 뒤진 곳에서는 오히려 당연히 손으로만 만들기에 기계가 뽑아내는 면발이 귀하고 신기한 것이다.

큐레이션. 이 단어는 흔히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작품을 선정하고 배열해서 찾아온 관람객에게 전시하는 직업군-큐레이터들이 흔히 쓰는 단어다. 아주 쉬운 단어로 말하면 이것은 흔히 ‘편집‘ 이라고 하는 개념과도 유사하다.


최근 나온 책 가운데 바로 이 ‘큐레이션’이란 제목을 가진 책이 있다. 스티븐 로젠바움이 짓고 이시은이 옮겼으며, 명승은이 감수를 맡은 책이다. 정보과잉시대의 돌파구로서 콘텐츠를  걸러주는 인간 필터에 주목하라! 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지난 11월 8일, 티앤엠의 대회의실에서 바로 이 '큐레이션' 책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나는 여기에 토론패널로 참석했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 바로 옆자리에서 큐레이션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심도있는 의견을 나눴다. (블로거가 아닌, IT평론가 안병도 로서 참석했다.)
 


이 책은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보통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지만 확실히 이론적으로 정립하지 못한 부분을 정확히 이론화시켜서 ‘큐레이션’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지만 누구나 뉴튼이 발견했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정보가 넘치는 요즘 시대에 혼란스러워하지만 누구나 이런 시대의 대안으로서 정보를 인간이 걸러주는 ‘큐레이션’이란 개념을 확립하지는 못했다.

구글의 자동 검색엔진은 많은 정보를 잘 처리해왔다. 하지만 구글의 기계적 엔진은 막상 폭발적으로 넘치는 정보의 홍수에서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한다. 과도한 정보와 광고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는 혼란을 보여주었다. 결국 어떤 뛰어난 사람이 그 사이에서 컨텐츠를 수집하고 편집해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필터링과 검색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큐레이션의 원동력이며 본질이다.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한 것이 허핑턴 포스트를 비롯한 큐레이션 미디어다. 이들은 공개된 뉴스 사이트 등에서 사람이 직접 정보를 뽑아낸다. 그리고는 가치있는 정보를 골라서 인용과 배치, 의견 첨가를 함으로서 새로운 관점과 가치를 제시했다. 이것은 기계적 검색엔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품질 컨텐츠로서 다가오게 되었다. 사람들은 넘쳐나는 정보를 걸러주고 아름답게 포장해주는 미디어 큐레이터에 반해버렸다.

이것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래된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비롯해 종이매체조차도 했던 수집과 편집이란 방법일 뿐이다. 다만 인터넷 시대에 있어 보다 방대하고 빠른 정보의 수집과 가공, 소비가 가능해진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은 ‘공짜’라는 수익모델을 타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말하자면 독자는 구독비용 하나없이 고급 정보가 공들여 편집된 뉴스잡지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블로그와도 마찬가지로 이런 큐레이션을 내세운 미디어는 대개 영세한 벤처기업이나 개인이다. 이들은 기존 거대미디어와 달리 겸손하며, 비교적 정직하고, 열정적이다. 독자들의 애정이나 신뢰를 얻을 조건이 더 갖춰진 셈이다. 기본적으로 공짜라서 접하기 쉬운 이 미디어를 향해 급속히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 허핑턴포스트는 크게 성공했으며 2011년 하반기에는 뉴욕타임즈 사이트를 순방문객에서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미국에서 많은 큐레이션 미디어들이 생겨나 저마다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책은 하지만 큐레이션의 장밋빛 미래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큐레이션이 ‘미디어 흡혈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다. 

이들이 직접 1차정보를 생산하지 않는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남이 공들여 지은 작물을 가지고 가공상품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누군가는 큐레이션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한다.

저비용에 저품질의 미디어(인터넷 게시물)나 고비용 고품질의 미디어(언론)의 시대는 갔다. 이제는 저비용에 고품질의 미디어(큐레이션)의 시대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1차 정보 수집비용을 무료수집으로 대치하고, 전문 에디터 발굴과 양성을 아마추어리즘에 맡기고 난 대가로 얻은 저비용일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도 그렇게 고품질은 아니다. 아직은 신선함이 유지되는 개성적 미디어라는 이점으로 인해 어느 정도의 허술함이 용인된 나머지 얻는 좋은 반응이다. 이것을 고효율로 착각하고 있다.

큐레이션을 추구하는 미디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에디터의 능력과 열정이다.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을 떠올려보자. 결국 최종적으로 중요한 건 각 정보를 편집하고 배치하며 가공하는 지휘자의 능력이다. 큐레이션의 한계는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스타일일 뿐이지, 저비용이 전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예산으로 성공한 사업자에게 더 많은 투자는 그냥 낭비일까? 아니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큐레이션에도 고예산의 고품질과 차별성을 요구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천만달러의 연봉을 받고 일한다고 치자. 전세계 십만명에게 백달러씩 주고 같은 일을 맡기면 같은 가치가 창출되겠는가? 실리콘 밸리의 천재 백명에게 십만달러씩 준다고 같은 가치가 나오겠는가?

소비자 측면에서 보자. 큐레이션은 인터넷에서 공개정보를 수집한다. 이것은 자기가 만들어 공개한 어떤 사적인 정보조차도 다른 큐레이션 미디어의 수익모델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를 심어준다. 보통 이런 점은 대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는 무시된다. 하지만 막상 체감할 만한 피해가 발생하고 나면 수습하거나 보상받을 방법이 거의 없다. 

한국적인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기계검색이 일상화된 구글이 지배하는 서양기준에서는 인간의 따스함과 주관이 깃든 미디어가 반갑다. 그러나 수동작업이 많아 검색어 조작과 기사배치 의혹까지 일던 네이버와 다음이 지배하는 한국에서는 수동작업이 그리운 사람에 반해서 기계적이고 공정한 검색과 배치를 원하는 사람도 상당하다.

큐레이션, 뉴미디어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단점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실 큐레이션은 미디어의 새로운 희망이 되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기존의 미디어들이 현재 위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발전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취향은 점점 기술과 함께 발전하는데 미디어는 여전히 옛날 방식만 고집한다. 이런 가운데 나온 새롭고 발랄한 개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큐레이션이 만일 확실한 수익모델을 확립하고 성공사례를 만들 수만 있다면 새로운 미디어의 방향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디어와 정보가공의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끝으로 한마디 하자면 수단은 절대로 목적에 우선할 수 없다. 큐레이션은 단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더 좋은 정보만을 접할 것인가?’ 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의 하나다. 그 본질을 잊지않는 범위에서 수단을 항상 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고인 물은 썪는다. 스티브 잡스는 목적지향이란 개념을 매우 좋아했다. 혁신을 위해서는 항상 수단에 집착하지 않고 목적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