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삼국지 연의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 란 부분이다. 신묘한 계략으로 촉한군을 이끌던 군사 제갈공명이 죽자 공명의 계략을 두려워해 방어에만 전념하던 위의 대장군 사마중달이 반격에 나선다. 그러나 유언에 따라 미리 꾸며놓은 공명의 인형을 수레에 태워 나오자 중달이 크게 놀라 도망쳤다는 내용이다.


팀쿡의 첫 제품으로서 발표 당시에 실망감과 혹평을 몰고 왔던 아이폰 4S가 갑자기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날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추모분위기와 함께 주문이 쓰나미처럼 몰려들고 있다. (출처)

10월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AT&T, 버라이존 등 미국 이동통신사업자들이 7일부터 아이폰 4S의 예약 주문을 받기 시작한 결과 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AT&T는 이날 주문을 받은 지 12시간만에 20만건의 사전주문 예약을 받아 지금까지 출시된 아이폰 가운데 가장 빠른 판매실적으로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예약주문 결과는 애플과 동일시돼 온 스티브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 에 대한 추모 분위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이폰4S는 지난 4일 제품발표 행사 이후 시장 애널리스트들과 애플 팬들로부터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이 같은 선주문 실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폰4S는 지난 8월 스티브 잡스에 이어 애플 CEO자리에 오른 팀 쿡 체제의 첫 시험대이자 고(故) 스티브 잡스의 ‘유작’이라고 인식되고 있다. 



삼성전자도 스티브 잡스 추모 분위기를 인식한 듯 구글과 손잡고 내놓기로 했던 차세대 안드로이드폰 ‘넥서스 프라임’ 출시 행사를 잠정 연기했다. 삼성전자는 8일 “오는 10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고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삼성 모바일 언팩 2011’ 행사를 잠정 연기한다”며 “여러 정황을 고려했을 때 신제품 발표 행사를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조금 당혹스러울지 모른다. 특히 아이폰4 S가 철저히 실패할 거라 예측했던 사람은 더욱 그럴 것이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조금 복잡하다. 나는 예전 포스팅을 통해 아이폰4S가 혁신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그래서 판매가 잘 안될거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아이폰4S의 기록적인 초기 판매량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할 수 없던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과연 위의 뉴스대로 잡스 추모 열기때문에 현재 잘 팔리고 있는 것일까?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 것처럼, 죽은 잡스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는 희소성이나 상징성이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일까? 


분명 그점도 작은 이유는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큰 이유는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이번에 나온 새 아이폰이 애플의 제품 역사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를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한번 차분히 단계별로 분석해보자. 

1 . 애플의 이전 혁신제품이었던 애플2 컴퓨터의 역사를 보자. 애플1에 비해 애플2는 엄청난 혁신을 준 제품이고 기록적인 판매와 성공을 안겨주었다. 그 혁신의 원동력은 뭐니뭐니해도 ‘연속성’에 있다. 

애플2는 애플1을 잇는 설계개념 속에 등장했다. 새롭지만 이전 제품과 분명히 이어지는 라인업이다. 이런 과정에서 애플2+라든가 애플2 GS같은 개량 강화버전은 혁신성은 적었어도 호환성과 연속성이 있었기에 일정수준이 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판매량이 부진했던 애플1이 없었다면 애플2는 존재할 수 없다.

반면에 애플3, 그리고 리사란 후속 컴퓨터는 어떤가? 혁신적이고 대단한 잠재력을 가졌지만 연속성이 없었고 가격도 비쌌다. 이 제품들은 애플 역사상에서 처참할 정도의 실패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도전적인 판매 실패작이 없었다면 그 뒤에 성공작인 매킨토시는 나오지 못했다.

2 . 매킨토시의 역사를 보자. 리사의 실패를 교훈삼아 쓰기 쉽고 값싼 컴퓨터를 목표로 하고 나온 이 컴퓨터는 막상 그 대단한 마케팅비용과 혁신성, 화제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잘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레이저프린터와 포스트스크립트가 나오고 탁상 전자출판이라는 확실한 쓰임새가 생기자 판매량이 급속도로 올라갔다.


이 무렵에 나온 매킨토시 기종들은 쿼드라, 센트리스, 클래식, LC등 다양했지만 그저 약간씩 기능개선을 가한 개량품 뿐이었다. 사실 이때는 이미 잡스가 애플을 나간 뒤였고 관리형 CEO인 존스컬리가 애플을 이끌고 신제품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맥은 잘 팔렸고 스컬리는 애플의 순수익률을 역대최고로 끌어올렸다. 연속성이 보장된 존스컬리의 매킨토시는 당시 잡스가 돈과 노력을 퍼부어 만들어 정말 혁신적이었던 넥스트큐브보다 훨씬 잘 팔렸다.

아이폰4S, 어떤 제품으로 역사에 남을까?

역사는 바로 이렇게 뚜렷한 기록을 남긴다. 애플의 역사에서 정말 잘 팔린 제품은 오히려 진정한 혁신과는 거리가 좀 있는 제품이었다. 즉 판매량은 오히려 혁신성보다는 안정성이나 연속성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애플 역사에서 진정한 혁신제품은 뒤에 나올 히트작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 자체가 엄청나게 잘 팔린 적은 거의 없다.

3 . 아이폰4S를 보자. 이 제품은 iOS5, 음성인식기술 Siri, 8백만화소 카메라 등등 상당한 개량이 있다. 하지만 애플의 제품 역사에서 볼 때 부분 개량품에 속하는 제품이다. 그것도 성공한 전작인 아이폰4의 후속기다.

아이폰을 쓰는 대부분의 사용자들의 이용목적은 세련된 디자인 외에 아이폰의 다양하고 풍부한 앱을 쓰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아이폰에서만 가능하다. 독점이다. 따라서 부분개량품이고 하드웨어 스펙이 다소 떨어진다고 해도 선택을 강요받게 되면 살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아이폰3Gs를 아직까지 쓰면서 버틴다든가 하는 교체수요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 당장 눈앞의 혁신성이 모자라다고 대거 아이폰4S를 안산다든가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아이폰4S는 아마 잘 팔릴 것이다. 기존 아이폰 사용자들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했듯 그것이 애플역사에서 상징하는 바는 부분 개량품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이런 행보로서 잡스의 혁신을 그저 부분 개량만 한 채로 몇년 우려먹고 나면 서서히 기울어져 회사가 망해 간다는 것이다.

즉 아이폰4S는 애플의 역사에서 그저 부분개량품으로서의 위치밖에 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아이폰4의 성공에 묻어간 정도인 것이지 앞날을 위한 밑거름이 되지는 못한다.

팀쿡과 가장 비슷한 관리형 CEO 존스컬리는 잡스가 남기고 간 매킨토시 하나만 가지고도 거의 6년 동안 애플에 상당한 판매량과 최고의 수익률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는 성공한 경영자가 되지 못했고 애플은 막바지에 정말 힘없이 기울어졌다. 

마찬가지로 아이폰4S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내놓는 후속제품은 나름 잘 팔릴 것이다. 잡스의 후광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바로 그 판매량에 취해서 혁신을 게을리하면 남는 건 심각한 몰락일 거란 사실이다. 그것이 내가 아이폰4S의 엄청난 예약과 예상판매량을 보면서도 착잡한 이유다.


팀쿡은 눈앞의 판매량보다는 혁신제품을 통해 자기가 제 2의 존스컬리가 아니라는 증명을 해야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애플에 밝은 미래가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