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비트 컴퓨터가 전성기를 누렸던 80년대 후반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이런 선전을 기억할 것이다. 기묘한 우주공간음과 함께 '이제 어떤 컴퓨터에서도 소프트웨어를 바꿔쓸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던 대우 IQ1000의 선전 말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와 일본 아스키사가 공동개발한 MSX 규격의 컴퓨터가 내세운 호환성 보장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지금이야 어떤 컴퓨터든 대충 IBM PC와 호환되니 이상할 것이다. 대체 호환이 안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엄밀히 말해서 맥의 응용 소프트웨어는 PC와 호환되지 않는다. 8비트 컴퓨터 초창기의 상황은 전세계에 수십 종 이상의 독자기종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들은 프로그램 호환은 물론이고 기초적인 파일포맷이나 입출력 단자마저 제각각이어서 도저히 같이 쓸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무슨 원시시대 이야기야? 라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컴퓨터는 몰라도 지금 막 발달하고 있는 스마트폰 업계가 딱 그렇다. 이미 나와있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말고도 심비안, 윈도폰7, 블랙베리, 바다, 윈도우모바일 등 전혀 호환되지 않는 독자플랫폼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저마다 우수함을 내세우며 경쟁하고 있을 뿐 별로 손을 잡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문제는 소비자다. 한가지 플랫폼에서 전용 앱을 구입하면서 편리하게 썼다면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데 이것이 큰 장애가 된다. 수백 달러 이상 쓰고 구입한 앱이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순간 아무것도 못하는 쓰레기가 되어 버린다. 아이폰에서 구입한 앱은 안드로이드에서 쓸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발자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머리를 싸매고 한가지 앱을 개발해도 끝이 아니다. 해당 플랫폼의 점유율만큼만 판매를 기대할 수 있기에 또다른 플랫폼도 개발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단순노동으로도 모자랄 만큼의 무식한 작업량이 생긴다. 그래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 사람이 아닌 소프트웨어가 호환성을 보장해주는 방법이 요구되었는데 드디어 그 결과가 나왔다. (출처)

그동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의 운영체제(OS)가 달라서 애플리케이션(앱ㆍ응용프로그램)을 자유롭게 내려받지 못했던 불편함이 사라질 전망이다.

애플 아이오에스(iOS), 안드로이드, 윈도폰7, QNX(블랙베리 플레이북) 등 OS에 상관없이 앱을 개발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앱' 도구가 등장하는가 하면 기존 OS 개발사도 다른 업체 OS의 앱을 전격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개발자들이 게임 앱을 만들어 아이폰의 앱스토어와 구글 안드로이드마켓에 등록하면 MS의 스마트폰 '윈도폰7'과 블랙베리의 태블릿PC '플레이북' 등 다른 OS 스마트기기에서도 내려받을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이르면 다음달부터 등장하는 소위 한국형 슈퍼앱스토어(K-WAC)도 '하이브리드 앱' 시대를 열게 된다. 슈퍼앱스토어는 OS에 상관없이 앱을 올리고 내려받을 수 있는 이동통신사업자의 공동 앱스토어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슈퍼앱스토어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OS와 관계없이 앱을 올리면 사업자 스토어에서 앱을 내려받을 수 있게 된다. 일단 다음달부터 약 250개 앱이 올라가고 점차 확대된다.

무려 30년전 옛날에도 난립하는 하드웨어 사이의 표준을 정하고 호환성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있었다. 하물며 인간의 지혜가 더 발달한 2011년이다. 당연히 더 편리한 세상을 위한 노력은 이어진다. 그렇지만 이런 호환성 보장의 움직임은 과연 좋기만 한 것인가?



모든 스마트폰에서 가능한 앱, 바람직한가?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앞서 나가고 있는 애플은 최소한의 요건을 제외하고는 이런 일체의 움직임에 매우 부정적이다. 독특한 감성과 프리미엄을 주는 아이폰의 앱은 순수하게 전용으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리고 이런 고집 덕분에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고품질을 유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애플을 제외한 기존 스마트폰 회사와 이통사는 호환성을 적극 반기는데 애플만 이에 저항하는 구도이다. 애플은 고유의 개성과 노력에 따른 대가를 요구한다. 반면 다른 경쟁자는 소비자의 편리를 위한 통합을 요구한다. 양쪽 모두 나름의 논리가 있는데 과연 누가 옳은 것일까?



1) 단기적으로는 애플의 주장이 맞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할 때는 각 회사의 창의성과 개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호환성이란 이름하에 속박하거나 1위 업체의 성공에 묻어가려는 시도를 하는 건 좋지 않다. 그런 면에서 어떤 스마트폰이든 쓸 수 있는 앱이란 결국 어떤 스마트폰에서든 돌아가는 평이하고 몰개성한 앱일 뿐이다.

2)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나머지 진영의 주장이 옳다. 기술 발전이 일정 단계이상 전개되고 난 뒤에 호환성 없이 각자 규격을 만드는 건 산업의 효율성 측면이나 소비자 권리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대지진후 생수가 모자란 일본이 깨닫고보니 일본 생수회사들이 통일된 규격 하나없이 저마다 뚜껑만 200종류가 넘는 규격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말이 있다. 평시에는 개성적이어서 좋았는지 모르지만 힘을 합쳐야 할 때는 이 때문에 생수 증산조차 어려워졌다.



따라서 어떤 스마트폰에서든 쓸 수 있는 앱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어쨌든 애플은 이런 움직임에 불참했다. 따라서 앞으로 당분간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제외한 나머지 플랫폼의 통합과 호환성 보장이 주요 화두가 될 것 같다. 어느쪽이든 소비자가 편리하고 즐거운 쪽으로 움직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