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눈앞의 물건이나 미시적인 현상만 보고는 정작 그 뒤에 있는 커다란 전체흐름을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IT제품과 업계를 보는 시각에서도 종종 이런 문제점이 드러난다. 개별 제품의 특성과 성패에만 집착한 나머지 전체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인류가 하늘을 날아보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었다. 이카루스의 신화를 굳이 떠올릴 것도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설계도를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이 비행기를 만들려했다. 조선시대의 우리 선조들도 임진왜란때 날으는 차량인 비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기술수준이 아직 조잡하고 항공역학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을 때 이들 비행기는 너무 위험하거나 비행에 실패했다. 그렇다고 이들 비행기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신의 뜻에 반해 사람이 감히 하늘을 날려고 하면 안되었다고 꾸짖어야 했을까? 그게 아니다. 비행기를 만들려는 큰 흐름에 비춰 이들은 성패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의미를 갖는다. 비행하는 기계란 미래개념을 제시하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컴퓨터에 들어가는 CPU기술을 선도하는 인텔이 새로운 개념의 플랫폼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을 아직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다. (출처)



대만 컴퓨텍스에서 인텔이 향후 6~9개월이면 울트라북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울트라북은 맥북에어보다 얇고 넷북보다 가볍지만 빠른 성능과 인텔리전트 기능으로 전혀 새로운 차원의 노트북이 될 것이라는 게 인텔의 설명이다.

인텔의 울트라북은 애플 맥북 에어와 유사한 점이 많으나 컴퓨텍스에서 인텔의 신 말로니 수석부사장은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노트북으로 맥북에어와 아이패드의 최고 장점만을 결합한 제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텔에 따르면 울트라북 시스템은 22나노미터 아이비 브리지 2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를 장착하며 20mm(0.8인치) 두께의 슬림한 외형을 갖는다. 이는 노트북 역사상 가장 얇은 제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의 맥북 에어 15인치 모델은 0.11인치부터 0.68인치다. 첫 번째 울트라북은 올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발표될 예정이다. 가격은 1000달러 수준에 책정될 예정이다.

인텔 발표 하루 전날 아수스가 컴퓨텍스에서 인텔 프로세서를 장착한 울트라북 ‘아수스 UX21’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수스 UX21는 얇고 스타일리시한 11.6인치 노트북으로, 인텔 코어 i5 CPU를 장착했다. 무게는 단 2.2파운드(약 990그램)로 태블릿PC와 유사하다.

아수스의 조니 쉬 회장은 “태블릿PC로 CPU, OS 등을 포함해 업계 전체가 재편되었다”며 노트북, 태블릿PC, 스마트폰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노트북은 살아남기 위해 혁신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노트북의 혁신은 초슬림, 초경량, 즉각적인 응답(ultra thin, ultra light and ultra responsive)를 말한다.


평범한 시선으로 본다면 이 뉴스는 사실 별개 아니다. 아이패드에게 넷북 시장을 잠식당해서 아톰 CPU 매출이 둔화되고, 맥북에어에게 언론의 주목을 빼앗긴 인텔이 아이패드와 맥북에어의 장점을 취한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

운영체제를 쥔 MS도 아닌, 그저 칩 업체에 불과한 인텔이 새로운 플랫폼을 내놓아 성공시킬 수 있을 지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그래서 이 울트라북은 그저 말장난에 그칠 뿐이라 간주하는 의견도 있다. 나도 일정부분은 그런 전망에 동의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상기시키고자 한다. 안 그러면 그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인텔 울트라북, 새로운 PC시대 예고하는가?

인텔이 발표한 울트라북은 그 자체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개념이다. 애플이 아이패드에게 많은 것을 깨달아 만든 것이 최근의 맥북에어인데 다시 인텔이 맥북에어에서 깨달아 만든 것이 울트라북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바로 미래에 우리가 쓸 플랫폼이 한단계씩 가벼운 쪽으로 전환한다는 파워 시프트의 흐름이다.



파워 시프트라고 하니 어쩐지 무슨 미래학자의 고상한 용어로 보일 것이다. 그럼 아주 쉽게 써보자. 하드웨어의 발전으로 인해 좀더 가볍고 작은 기기가 무겁고 커다란 기기를 잠식하면서 대체해간다는 뜻이다.

1) 스마트폰은 점점 강력해지면서 종래 들고 다녔던 초소형 휴대용PC를 대체한다.
2) 초소형 휴대PC의 위치에 있어야 할 태블릿이 점점 강력해지면서 윗단계인 넷북과 노트북을 대체한다.
3) 노트북은 더 성능이 나아지면서 데스트톱을 대체한다. 이런 식으로 한단계씩 기기들이 상위 기기를 밀어내버린다.
4) 데스크톱은? 강력한 성능이 필요한 워크스테이션이나 서버의 영역을 밀어내고 차지할 것이다.




이렇듯 플랫폼 권력이 좀더 가볍고 작게 이동하는 것이 미래의 흐름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PC시대다. 그런 면에서 울트라북은 인텔조차도 앞으로 노트북 유저들이 보다 태블릿에 가까운 노트북을 선호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태블릿으로 전환할 것이란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진화하지 못하면 멸망해야 하는 공룡처럼 노트북이 종래의 시장을 지키려면 태블릿처럼 진화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시대의 흐름이다. 울트라북으로 대표되는 인텔과 아수스의 시도가 과연 이런 흐름을 주도할지, 아니면 너무 앞서다가 좌절할 지 한번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