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미로는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나쁜 의미로는 마치 사기당한 느낌이었다. 일세를 풍미한 혁명적인 개념이 IT에 등장해서 수없이 화제를 만들다가 소리없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2000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등장한 '네트워크 PC' 의 개념이었다.

빠르게 발달한 인터넷망과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서 개인이 저장공간이나 처리속도, 골치아픈 바이러스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했다. 또한 굳이 비싼 정품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필요도 없이 매월 일정한 이용료만 내면 모든 것을 빌려서 쓰는 개념으로 제공한다고 했다. 중앙에 위치한 거대하고 넓은 서버가 모든 걸 다 처리해주면 끝에 연결된 작고 싼 네트워크 컴퓨터가 입력과 출력만 담당하는 것이다. 정말로 혁신적인 개념이자 새로운 세계였다.


그러나 대형 컴퓨터 회사가 중심이 된 이 개념과 혁신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우선 인터넷망의 보급이 그렇게 빠르지 못했다. 또한 속도는 느리고, 끈길 위험도 있었다. 개인의 데이터를 중앙에서 관리한다는 개념은 소비자에게 빅브라더의 이미지를 안겨주기도 했다. 야심차게 내놓은 모든 네트워크 PC는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다만 애플에서 인터넷을 위해 내놓은 가벼운 매킨토시인 아이맥만이 성공했다.

그렇지만 아이맥도 네트워크 PC의 개념으로 출발했지만 첫마디조차 꺼내보지 못했다. 소비자에게 있어 그때의 속이 비쳐보이는 아이맥은 그냥 싸고 친숙한 개인용 컴퓨터였을 뿐이었다.

마치 공룡이 번성했던 쥬라기를 회상하는 듯한 서론이었다. 자, 이제 그후로 10년이 지난 후 멸망해서 화석이 된 줄 알았던 공룡이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더 진화된 개념과 위협적인 무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바로 검색계의 공룡 구글이 직접 클라우드 서비스란 개념과 함께 사라졌던 네트워크 PC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의 파트너로 삼성이라는 한국의 신흥 공룡이 자리하고 있다. (출처)


(사진 : 인가젯)

구글이 '크롬북'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컴퓨터를 내놓는다. 내부에 하드디스크가 없는 대신 각종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클라우드(서비스 사업자의 데이터센터)에 저장해놓고 언제 어디서나 접속해 이용하는 네트워크 컴퓨터다. 삼성전자와 에이서가 생산해 다음달 15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7개 국가에서 발매한다.

구글은 12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 '구글 I/O 2011' 기조연설에서 그동안 관심을 모아왔던 크롬북을 공개했다. 크롬북은 클라우드 기반의 컴퓨터인 데다 크롬 브라우저가 운영체제(OS)를 겸하는 특이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중심의 컴퓨팅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을지 주목받고 있다.

크롬북은 전원 버튼을 누르면 8초 만에 켜지고,한 번 충전으로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으며,'샌드박스'란 기능이 있어 바이러스 침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스마트폰 · 태블릿에서 앱(응용 프로그램)을 통해 이용하는 각종 서비스를 웹 앱을 통해 이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웹 앱은 크롬 앱스토어에서 내려받는다.

크롬북 프로젝트 책임자인 순다 피차이 구글 부사장은 "크롬북은 20~30년 전에 개발된 운영체제에 의존하는 기존 컴퓨터를 혁신할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고 강조하면서 "바이러스를 막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패치할 필요도 없고,패치를 위한 패치를 할 필요도 없다"는 말로 기존 컴퓨터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구글은 크롬북이 기업용 · 학교용으로도 각광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솔루션을 패키지로 지원하기 때문에 전산관리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미국에서는 기업용 크롬북은 직원 1인당 월 28달러,학교용 크롬북은 1인당 월 20달러에 각각 공급할 계획이다.




구글 크롬북의 최대 목표는 업무나 교육에만 쓰도록 특화된 공간이다. 사실 개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에 크롬북의 용도 자체가 너무도 제한적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게임이나 멀티미디어 기능을 충분히 갖춰놓지 못했다. 한마디로 개인이 쓰기에는 좀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그러나 보안과 업무효율을 위해 있는 기능도 제한하길 원하는 회사나 교육기관에서는 환영받을 수 있다. 이런 곳에서는 오히려 잡다한 게임이나 필요없는 소프트웨어가 실행되지 않고 구할 수도 없는 점이 더 좋다. 또한 관리자가 일일히 업그레이드나 관리를 해줘야 하는 데 그것을 클라우드 서비스로 대신해주니 좋을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오피스와 결합되기만 한다면 분명 가능성은 있어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크롬북이 노리는 시장들에 각각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오는 경쟁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모두 뛰어난 기능과 보급률로서 차세대 컴퓨터 자리를 노리고 있다. 크롬북은 오히려 이제 막 그 위에 새로 뛰어든 도전자에 지나지 않는다.

구글 크롬북, 아이패드와 경쟁해야 한다?

1) 첫째로 스티브 잡스가 직접 포스트 PC라고 언급한 애플의 태블릿 - 아이패드가 있다.
크롬북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스마트폰에서 발전한 이 플랫폼은 이미 엄청난 보급률과 스마트한 성능, 질좋은 앱으로 인해 태블릿을 넘어 넷북을 위협하고 이다. 여기서 노트북 시장을 잠식하면서 회사와 교육기관에 침투한다면?



무선 키보드 등의 주변기기와 함께 놓인 아이패드가 모바일미 등의 서비스와 결합하면 크롬북이 노리는 시장을 먼저 차지해버릴 수 있다. 크롬북이 결국 아톰으로 대표되는 인텔의 X86 하드웨어 기반이고, 아이패드는 ARM코어로서 스마트폰 하드웨어 기반이므로 정반대의 특성에서 발전해서 만나는 셈이다. 특히 위 기사에서 구글이 강조한 크롬북의 장점 대부분을 아이패드 역시 가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모자란 것은 오로지 본격 업무용 패키지 뿐이다.

크롬북은 전형적인 넷북 하드웨어에서 MS의 윈도우를 몰아내고는 최대한 기능을 간결화시킨 플랫폼이다. 반대로 아이패드는 아이폰 하드웨어에 해상도를 늘리고 조금씩 기능을 추가해가며 만든 플랫폼이다. 이 두 가지가 포스트 PC라는 접점에서 가벼운 업무를 보려는 소비자를 놓고 치열하게 싸울 것이 예상된다. 더구나 아이패드는 장기적으로 맥북과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신생 플랫폼인 크롬북이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2) 구글의 또다른 자식인 안드로이드- 허니컴에서 갈라져나온 태블릿도 경쟁자다. 모토로라의 줌이라든가, 삼성의 갤럭시탭 역시 성장을 위해서는 크롬북이 노리는 시장으로 가려고 할 것이다. 구글이 나름 교통정리를 하려고 해도 시장흐름이란 게 인위적으로 만들기 어렵다. 자칫하면 구글은 자사 제품인 허니컴 태블릿과 크롬북이 하나의 시장에서 혼전을 벌이는 상황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3) 아예 차세대 컴퓨터란 단어 자체를 거부하려는 존재도 있다. 바로 윈도우로 대표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기존 PC다. 이 회사를 먹여살리는 절대적인 수입원인 윈도우와 오피스가 강제로 퇴출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특히 윈도우는 차세대 컴퓨터 모두에게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예전에 네트워크 컴퓨터가 각광받을 때도 MS는 묵묵히 선이 없어도 혼자 잘 돌아가는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제작에 힘썼다. 그리고 이겼다. 이번에도 아마 비슷한 대응을 보일 것이다. 아직은 클라우드가 무리라고 하면서 어떻게든 윈도우 중심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보급시키려 할 것이다.

이렇듯 마치 삼국지와도 같이 세 개의 세력이 각자 미래의 컴퓨터 시장을 놓고 나름의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과연 미래는 어떻게 움직일까? 크롬북은 다시 한번 실패한 이름이 될까. 아니면 윈도우를 몰아내고 안드로이드를 물리치며, 아이패드와 한판 승부를 내서 승자가 될 것인가? 참으로 흥미진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