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란 중국의 고사가 있다. 노인에게 닥쳐온 여러가지 일들이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단 한가지 의미만 가지는 것은 아니며 언제든지 반전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아가서 승자가 패자로 변할 수 있고, 패자가 다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IT업계 또한 사람이 사는 세상의 일부다. 새옹지마란 말이 딱 들어맞을 만한 여러가지 일이 벌어지곤 한다. 애플을 떠나 넥스트를 세운 뒤 10년 정도를 고생하고 실패했던 스티브 잡스의 컴퓨터 운영체제 넥스트 스텝이 나중에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핵심 운영체제로 성공하게 될 거라고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삼성이 오랫동안 야심차게 벌여왔던 하드 디스크 사업을 정리했다. 해당 생산부분 전부를 시게이트사에 매각한 것이다. (출처)

삼성전자가 자사의 반도체사업부 HDD사업부문을 미국 씨게이트에 매각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씨게이트의 지분 9.6%를 인수하면서 삼성전자의 HDD 사업부문을 씨게이트로 양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포괄적 사업협력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양도 가격은 총 13억7500만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다. 삼성전자는 이 가운데 절반을 씨게이트의 지분 약 9.6%에 해당하는 주식으로, 나머지는 현금(6억8750만달러)으로 받을 예정이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씨게이트의 2대 주주로 이사회에 참여하게 되며, 재무적 투자자를 제외할 경우 최대주주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양사는 또 ▲씨게이트 SSD용으로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대량 공급 ▲삼성전자 PC사업부문에 씨게이트의 HDD 대량 공급 ▲특허 상호 라이선스 계약 확대 ▲스토리지 솔루션 공동개발 등 전략적 제휴 관계를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협력은 전형적인 '원윈' 전략"이라며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LSI 등 반도체 사업에 더욱 집중할 것이며, 씨게이트는 전 세계 HDD시장에서 전략적 위상을 확보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 이 뉴스를 보았을 때는 삼성이 치열해져 가는 하드디스크 생산 경쟁에서 패해서 그저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만 보았다. 그러나 자세한 내역과 전후배경을 살펴보자. 이것이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나아가서 삼성이 행동하기에 따라서는 세계 하드디스크 시장을 지배하는 최강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어째서 그런지 하나씩 짚어보자.

삼성 HDD 사업부 매각, 현명한 선택일까?

1) 이 거래로 인해 세계 하드 디스크 시장의 판도가 크게 바뀐다.


기존의 점유율은 웨스턴디지털(WD)가 40퍼센트 좀 넘게, 시게이트가 35프로 남짓, 삼성이 10프로 전후, 기타업체가 나머지를 차지하는 형세다. 장기적으로 볼 때 군소업체는 망하거나 흡수되어 양대 업체의 경쟁체제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전의 뉴스로 볼때 현재는 시게이트가 자본력이나 점유율에서 약간 밀리는 형세였다.

그런데 삼성이 관련사업을 매각함으로서 시게이트-삼성은 점유율에서 웨스턴 디지털을 앞서게 되었다. 시장의 1위업체가 바뀐다는 건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소비자들에게 당당히 세계시장 1위라고 광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삼성이 오히려 시게이트를 장악할 수 있다.



픽사를 세워 애니메이션 시장을 장악한 스티브 잡스는 픽사를 디즈니에 팔았다. 겉보기에는 픽사가 결국 디즈니의 규모와 자금력에 흡수된 것일수 있다. 그러나 실상 픽사의 인수대금으로 디즈니의 주식을 받은 스티브 잡스는 현재 디즈니의 최대주주다. 픽사를 통해 디즈니를 오히려 인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삼성이 시게이트의 실질적 최대주주로서 의사결정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재무적 투자자는 돈만 벌 수 있다면 경영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는 의사를 밝힌 존재다. 따라서 삼성은 앞으로 시게이트의 기업 전략과 장기 목표, 기술 개발에까지 관여할 수 있다.

더구나 반도체- 특히 SSD에 강세를 가진 삼성이다. 라이벌인 WD가 SSD에 전혀 기술력이나 역량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게이트-삼성의 연합은 폭발적인 기술적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다. 기존의 HDD사업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성장 역량인 SSD를 시게이트가 만들어간다는 명분도 충분한 셈이다.

3) 시게이트 - 삼성의 브랜드를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다.

시게이트의 브랜드가 강한 나라와 분야에는 시게이트의 상표를 이용하면 된다. 그 외에 삼성의 브랜드 파워가 강한 곳에서는 시게이트의 HDD에 삼성 브랜드가 달려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삼성의 SSD에 시게이트의 브랜드를 달 수도 있다는 건 마케팅에 있어 상당한 매력이다.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런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위의 매각은 단순 매각이 아니다. 정말로 전략적 제휴인 것이다. 얼핏 삼성이 포기하고 사업을 접은 것처럼 보이지만 새옹지마처럼 도리어 삼성이 시게이트를 장악하고 최대 HDD 업체가 되어 세계 시장을 호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삼성은 현명하고 멋진 선택을 한 셈이다.


4) 삼성의 진심은 향후 움직임으로 판단할 수 있다.

문제는 삼성이 과연 이런 모든 점을 계산하고 치밀하게 승부수를 던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삼성의 이제까지 행보로 봐서는 돈 안되고 미래전망이 없는 사업을 단지 접었을 뿐이란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만일 그렇다면 주식으로 받은 지분은 단지 시게이트가 당장 현금으로 매각대금을 줄 수 없어 취한 임시수단일 뿐이다.

결국 삼성이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지 않고 주식을 매각하느냐 아니냐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주식을 매각하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삼성이 이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그게 오히려 멍청하다. 새옹지마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꼴이다.

과연 앞으로 시게이트-삼성 연합이 웨스턴디지털을 제치고 세계 HDD시장의 최강자로 떠오를 것인가? 한번 흥미있게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