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는 법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유교로 대표되는 중국사상의 영향을 받은 면이 크다. 만사를 법이 아닌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관리는 법으로 백성을 문책하지 않고, 백성은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해서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관리를 앞에 둔 고소사건(송사)에 얽힌 동양의 옛이야기들을 보면 칼같이 누군가가 잘못했다는 판결을 내리기보다는 두 사람 모두에게 잘못이 있으며 그걸 깨우쳐주는 관리의 높은 덕을 칭송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로마제국으로 대표되는 서양에서는 법이 최우선이다. 법이 나를 보호해주고, 동시에 법적으로 누가 옳은지를 가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누구든 고소할 수 있고, 반대로 누구든 고소당할수 있다. 그러다보니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을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법정 그 자체를 이용해서 이득을 챙기는 경우가 많다.

애플이 스마트폰과 관련해서 삼성을 특허침해로 고소했다. 그리고 삼성 역시 애플에 대한 대응으로 맞고소를 했다. (출처)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이 지난 4월 15일(현지시각) "삼성전자의 갤럭시S와 넥서스S, 갤럭시탭 같은 제품들이 애플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며 미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18일 보도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와 태블릿PC '갤럭시탭'이 자사의 글로벌 히트 상품인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애플은 소장에서 "삼성이 독자적인 제품 개발을 추구하는 대신 애플의 혁신적인 기술과 사용자환경(UI), 심지어 포장까지 맹목적인 베끼기를 선택했다"며 "이는 애플의 귀중한 지적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삼성전자도 지지 않고 애플을 상대로 맞소송을 선택,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삼성 측은 "애플이 주장하는 표절은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애플이 우리 기술을 가져간 게 더 많다"고 주장했다.

국내 IT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스마트폰 영역에서 독보적인 기업이긴 하지만, 삼성전자 역시 전 세계 기업 가운데 미국 내 특허를 두 번째로 많이 가진 기업으로, 특히 통신 기술·장비 부문 관련 특허가 많다"며 "서로 상대의 제품에서 기술 침해를 찾아내기 시작하면 치열한 공방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뉴스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 애플은 이미 거의 모든 스마트폰 회사와 특허문제로 고소를 주고 받은 사이다. 오히려 삼성이 그 대열에서 빠진 게 이상할 정도다. 아무래도 삼성이 애플 제품에 공급하는 부품의 주요 공급원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고소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와 전망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다.

이미 각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 이 문제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애플이 대체 왜 이러지? 하고 어리둥절하는 의견, 싫어하던 삼성이 드디어 한방 먹었다며 통쾌하게 여기는 의견, 두 회사의 관계를 비춰보며 한판의 게임으로 분석하는 의견 등 다양하다.

애플이 삼성을 굳이 고소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특허권 침해를 참을 수 없어 분연히 일어난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애플이나 삼성 모두 이제는 세계 IT계의 공룡들이다. 또한 스마트폰과 관련 특허에 있어서도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세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핵심을 단계별로 짚어보자.

애플 vs 삼성의 특허권 소송, 향후 전망은?

1) 애플은 안드로이드 진영을 위축시키고 싶어한다.



아이패드는 아직도 월등한 위치에 있지만 아이폰은 그렇지 않다. 점유율은 유지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의 성능적 우위는 점점 옅어지고 있다. 특히 구글의 안드로이드 진영의 급성장은 대단한 기세다. 미래 전망에서는 결국 안드로이드폰이 주류가 되고 아이폰은 의미있는 20-30퍼센트의 점유율만을 차지하게 될 거란 예측이 많다.

애플이 노리고 있는 상대는 구글이다. 그러나 애플이든 구글이든 미국 회사다. 또한 얼마전까지 애플의 핵심 파트너였고 사외이사 자리까지 준 적이 있다. 구글과의 법정다툼은 승소도 힘들뿐더러 애플의 이미지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따라서 애플은 구글을 제외하고 구글의 팔다리가 되어 단말기를 제조해주는 제조사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미 대만의 HTC를 특허권 침해로 고소했고 모토로라와도 소송중이다. 결국 이번에 삼성 역시 고소한 것이다.

미국의 특허권 소송은 몇년이 걸린다. 또한 상대의 맞고소와 함께 3심까지 가면 상당한 기간이 흐른다. 직접 어떤 피해보상을 받는 건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애플은 삼성을 비롯한 안드로이드 진영에게 애플의 제품을 베낀 '카피캣'이란 이미지를 어떻게든 뒤집어 씌워서 견제할 생각이다. 그와 함께 새로 뛰어들 중소업체들이 조금이라도 이런 고소사태를 보고 위축되어 주길 바란다.

2) 삼성은 특허권 소송에 약한 회사가 절대 아니다.


삼성은 애플의 주요부품을 공급해주는 부품회사이지만, 동시에 최대 경쟁자로 떠오른 갤럭시 시리즈의 제조사이기도 하다. 이런 양면성은 애플에게도 다소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제야 고소를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만큼 이제 애플에게 의미있는 경쟁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삼성은 애플과의 분쟁에 있어 될 수 있으면 조용히 대응한다. 지난번 아이폰4의 데스그립 사건에서 잡스가 삼성 스마트폰을 대놓고 문제삼았음에도 거의 반발하지 않았다. 삼성에게 애플은 자사 부품을 대량으로 사주는 소중한 고객이니 자잘한 문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태도다. 까칠하게 나와봐야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특허권 소송은 다르다. 삼성전자는 초기에 특허권 소송에서 크게 패해서 대응조차 제대로 못하고 거액을 물어줘야만 했던 쓰라린 과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후로 특허역량을 엄청나게 키워서 지금은 미국의 연간 특허 2위를 차지할 정도다. 특허권 소송에는 그룹 최상층이 직접 개입하며 총력을 다해 응전한다.

애플이 스마트폰의 '컴퓨터' 부분에 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다면, 삼성 역시 '휴대폰' 부분에서 선배로서 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다. 맞고소할 때 애플이 삼성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을 확률이란 거의 없다. 따라서 애플이든 삼성이든 결정적으로 패할 가능성이란 희박하다.

3) 두 회사의 크로스 라이센스나 합의로 끝날 것이다.


애플이 노리는 바는 법정에서의 결정으로 인한 어떤 극단적 조치가 아니다. 그저 삼성에게도 아이폰 복제품 제조사 라는 이미지를 씌우는 것 뿐이다. 또한 될 수 있으면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너무 앞장서지 말라는 경고를 날리는 것 뿐이다.

현실적으로 애플이 삼성과 부품 거래를 중단할 가능성은 없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역시 엄청난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삼성 역시 세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품의 리더다. 일본업체가 대지진으로 큰 상처까지 입은 지금 대체할 공급선을 찾기도 힘들다. 최근 애플의 맥북에어에도 삼성의 SSD가 들어갔다.


결국 두 회사는 상호간에 특허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조건의 합의를 보게 될 것이다. 일방적인 피해보상금이 선고될 가능성은 없다. 아니면 중간에 서로 고소를 취하할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애플과 삼성이란 두 공룡이 서로 신경전을 날리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는 있다. 격투기도 헤비급이나 무제한급 싸움이 가장 재미있듯이 말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쓸데없는 피해는 보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