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돈을 중심으로 놓고 움직이는 곳은 어디일까. 기업? 공장? 아니다. 바로 돈을 취급해서 먹고 사는 은행이다. 은행은 다른 말이 필요없다. 취급하는 상품 자체가 돈이며 오고 가는 거래수단도 돈이다.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나는 곳이니 돈에 민감한 정도가 다른 분야와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한국의 은행창구는 이때까지 힘만 들고 돈이 되지 않는 소액 방문고객을 무시해왔다. 단순히 작은 돈을 찾거나 입금하는 손님은 현금입출금기로만 몰고 갔다. 또한 잔돈을 바꾸러 온다든가, 동전을 교환하는 손님은 아예 대놓고 귀찮은 고객으로 간주했다. 오로지 수익이 안된다는 이유였다. 하긴 철저히 돈으로만 움직이는 은행이니 나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한국 은행의 자동화 역사는 고객편의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돈 안되는 고객을 분리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이제 현금입출금기와 인터넷 뱅킹, 나아가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온라인 뱅킹이 자리잡으면서 은행은 드디어 숙원(?)을 이뤘다. 은행창구를 찾아오는 귀찮은 고객들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이제 은행에는 통장을 처음 만들러 오는 사람 외에는 거금을 예금한다든가 찾으려는 사람만 온다. 부자들만 드나드는 좋은 곳이 된 것이다. 참으로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맞아 은행들이 과연 만세를 부르고 있을까? 재미있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본래 한가지를 만족하면 다른 한가지를 탐내는 게 사람 심리다. 은행들은 어이없게도 스스로가 원해서 은행창구에서 쫓아낸 손님의 다른쪽 호주머니를 탐내고 있다. 바로 은행창구에서 파는 보험과 금융상품이다. 다음 뉴스를 보자.(출처)

지난해 모바일뱅킹이 포함된 인터넷뱅킹 등록고객은 꾸준히 늘면서 전년보다 12.6% 증가했습니다. 이용금액도 계속 늘면서 30조 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행 창구는 썰렁하기만 합니다.

은행들은 비상입니다. 손님이 방문해야 예금도 받고, 보험이나 펀드를 팔 수 있지만, 방문객이 줄다 보니 세일즈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은행이 아이디어를 내놨습니다. ATM을 통해 거래하면 화면에 자신에게 맞는 금융상품이 추천되고, 콜센터를 통해 간단히 가입할 수 있습니다.

다소 딱딱한 분위기였던 은행 점포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아이패드 등 전자기기가 비치된 아늑한 공간으로 변신하고, 지점 안에 학생들을 위한 스터디룸과 커피전문점이 들어와 있기도 합니다. 번호표를 뽑아들고 몇 십 분씩 기다려야 했던 은행의 모습은 서서히 추억의 한 장면이 되고 있습니다.

나도 얼마전에 은행 창구를 이용할 일이 있어서 다녀왔다. 평일 낮이긴 했지만 정말 손님이 없었다. 번호표를 뽑을 필요도 없었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창구 직원도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매우 친절했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입장으로만 본다면 이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건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 적어도 은행이 고객과의 소통을 하면서 그 지역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이런 썰렁한 은행 창구는 무의미하다.

스마트폰 시대, 은행 창구의 역할은 무엇인가?

소셜 커머스가 요즘 들어 주목받고 있다. 어째서일까? 아는 사람을 통해서 쌓인 신뢰와 정감에 의해 사람들이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단순한 광고나 판매촉진으로 되는 게 아니라 아날로그적으로 대면하거나 평소에 정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은행이 이제까지 그렇게 귀찮아하고 돈이 안된다고 여기는 소액 예금자들의 입출금이나 동전바꾸기, 잔돈 교환은 그저 낭비가 아니다.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 소비자들은 은행과 대면하게 되고 아날로그적인 신뢰를 쌓으며, 친밀감을 얻는다. 이런 작고 돈 안되는 일에도 친절히 성의껏 해주는 창구를 보면 감탄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보험에 가입해야 하든가, 금융상품을 구입할 때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그 은행의 상품을 사게 된다. 그게 바로 지금 유행하는 소셜 커머스의 본질이다.



그런데 은행들은 그렇지 않아도 현금입출금기와 스마트폰 등을 통해서 줄어들고 있는 창구의 역할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언뜻 돈 안되는 고객들을 기피할 뿐이다. 그러면서 그런 고객들에게 보험은 팔고 싶다니 대체 이런 눈앞만 보는 무지함이 어디서 나오는 지 모르겠다.

한번 입장을 바꿔보자. 어떤 돈 많은 고객이 평소 자기를 찾아와서 예금을 좀 해달라고 하는 은행을 귀찮게 취급하며 비서하고나 이야기하라고 하며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더이상 은행들이 찾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재정 사정이 악화된 그 고객이 은행을 상대로 대출을 받아야겠다고 신청하면 기꺼이 해주고 싶을까?



스마트폰 시대에 은행창구의 역할은 고객의 사소한 요청이나 거래에도 성심껏 대응하는 감성적인 교류의 장이 되어야 한다. 소셜 커머스가 따로 필요한 게 아니다. 그곳에 있는 은행창구의 방침이, 창구 직원의 친절한 응대 하나가 바로 소셜 커머스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은행들의 획기적인 변화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