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적으로 착실한 성격이다. 어떤 형식을 규정하고 나면 자꾸만 그쪽으로 모범이 되려고 의식한다. IT평론가라는 블로그 성격을 규정하고 나자 좀더 넓은 범위에서 뉴스를 다루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전부 다루는 뉴스라면 약간 나중에 심층적으로 다룬다. 아니면 다른 뉴스에 밀려 묻힐 뻔한 뉴스에 관점을 붙여 쓰려고 한다.


삼성이 새로운 노트북을 내놓았다. 사실 그다지 신선한 뉴스는 아니다. 삼성을 비롯해 많은 노트북 업체들은 거의 몇달마다 다른 노트북 모델을 쏟아낸다. 어차피 고만고만한 스타일에 똑같은 윈도우를 탑재한 노트북이니 뉴스거리도 안된다.

그러나 이번 노트북은 약간 느낌이 다르다. 운영체제는 여전히 윈도우7이지만 이번에는 삼성이 여러 분야에서 경쟁자로 여기는 애플의 맥북을 잔뜩 의식하고 만든 제품이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자. (출처)

삼성전자가 센스 시리즈 9를 내놨다. 이 제품은 지난 1월 CES2011에서 처음 선보였으며 337mm(13.3인치) 노트북이 구현할 수 있는 최소 무게와 두께를 갖췄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시리즈 9를 보면 가장 먼저 두께가 눈에 띈다. 13.3인치(337mm) 크기를 지녔지만 두께는 16.3mm다. 가장 얇은 부분은 15.9mm다. 두꺼운 부분만 따지면 17mm인 맥북 에어보다 얇다. 두께가 얇으면 깨지거나 파손되기 쉽다. 삼성전자는 얇은 두께를 유지하면서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해 항공기 소재로 쓰는 듀라루민으로 만들었다. 알루미늄 합금의 일종으로 알루미늄보다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은 2배 이상이다. 참고로 맥북 에어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부팅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였다.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은 노트북인 경우 부팅하는 데 보통 40~60초가 걸린다. 하지만 시리즈 9은 15초다. 대기 상태라면 3초 안에 쓸 수 있다. SSD에 자체 개발한 컨트롤 칩을 달아 부팅 시간을 줄였다는 설명이다.

배터리 수명도 자랑거리다. 6셀 리튬폴리머로 최대 7.7시간 쓸 수 있다. DivX 동영상을 돌렸을 때는 4.7시간 동안 쓸 수 있다. 파워플러스 배터리 기술을 넣어 1,000번까지 충전할 수 있다고 한다. 기간으로 따지면 3년 정도다. 보통 일반 노트북 경우 500회(약 2년)가 넘어가면 수명이 다 된다.

디자인이나 기계적으로 평가해 볼 때는 분명 매우 뛰어난 노트북이다. 기존 맥북은 알루미늄을 통째로 깎아서 만드는 방식과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명품반열에 들었다. 이번 삼성의 시리즈9 노트북은 아예 듀랄루민이라는 신소재를 들고 나왔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공업시간에서나 배운 소재가 여기서 다시 나올 줄은 몰랐다. 분명 알루미늄보다 한단계 더 나아간 좋은 소재다.

또한 빠른 SSD의 채용으로 속도도 향상시켰다. 배터리 성능도 좋아졌고, CPU를 비롯한 사양도 월등하다. 비슷한 크기와 무게의 맥북 에어와 단지 하드웨어에서는 충분히 경쟁상대라고 불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것 뿐일까?


삼성 노트북, 애플 맥북과 경쟁할 수 있을까?

요즘 사람들이 맥북을 비롯한 애플 노트북을 찾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자.

1) 각 부품의 품질이 극히 뛰어나다. 애플은 가격을 비싸게 받는 대신 어느 곳의 어떤 부품이든 생각없이 싸구려 부품을 집어넣지 않는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기능성과 품질이 좋은 편이다.

2)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애플 제품이 주는 브랜드 파워가 매력적이다. 사과 마크를 비롯해서 척 보기만 해도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감각적이고도 멋스러운 이런 느낌은 특히 예술가들에게 프리미엄을 얹어준다.

3) 애플의 독특한 운영체제인 OS X와 그 안에서 돌아가는 특유의 소프트웨어가 쓸 만하다. 완전한 업무에는 조금 비효율적이지만 가벼운 웹서핑이나 워드프로세싱을 비롯해, 음악, 미술, 동영상 편집, 전자출판 등에서 맥은 매우 직관적으로 쉽고도 기능이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운영체제 자체가 오류나 다운이 적고 바이러스나 웜의 위험이 훨씬 적다.

4) 인기리에 판매중인 다른 애플제품-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과의 연결성이 뛰어나다. 운영체제 안에서 이들과의 연동이 매우 쉽다. 또한 아이폰용 앱을 만들기 위해서는 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개발자들은 살 수 밖에 없다.

5) 멀티터치가 지원되는 트랙패드를 비롯해 각종 사용자를 위한 입력장치가 진보되어 있으며 잘 지원된다.




크게 구별해서 이 다섯 가지가 애플 맥북이 가진 주요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내놓은 삼성 노트북이 얼마나 이런 맥북의 매력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대충 따져봐도 이 가운데 1번 부품 품질과 2번의 절반인 디자인, 그리고 5번의 멀티터치 지원 정도다.

나머지 항목인 소프트웨어나 운영체제의 매력은 본래 삼성의 영역도 아닐 뿐더러 해결도 불가능하다. 그러면 과연 세 가지 항목도 채 안되는 절반 정도의 매력만으로 삼성 노트북이 비슷한 컨셉의 맥북에어와 경쟁할 수 있을까.

사실 운영체제가 다르다는 점에서 벌써 애플 맥북과는 동등한 경쟁이 안된다. 맥북은 윈도우를 깔아서 쓸 수 있지만 삼성 노트북은 편법이 아니고서는 맥의 운영체제를 쓸 수 없다. 그러니 삼성은 그저 범용 노트북의 디자인과 품질만을 극도로 끌어올린 물건을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것으로는 아무리 넘치는 의욕으로도 맥북을 이길 수 없다. 델이 맥북을 정면으로 겨냥해 만든 고급형 노트북 아다모 역시 잘 만들었지만 실패했다. 아다모는 단종되었고 고급형 노트북 라인에서 제외되었다.

가격 역시 비관적이다. 삼성의 시리즈9은 249만원쯤으로 예정되어 있다. 맥북에어의 가격이 129만원에서 시작하며 가장 높은 사양이라고 해도 비슷한 가격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맥북을 사기로 결심한 사람이 삼성노트북으로 마음을 돌릴 가능성은 매우 적다.



삼성의 시도 자체가 아주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애플의 영향으로 점차 마감이나 재료, 부품의 품질에 신경을 쓴 고급 노트북이 나온다는 건 좋다. 선택의 여지가 넗어지니까 말이다. 다만 만일 맥북과 맞서려는 생각이 있다면 보다 맥북의 장단점을 확실히 파고 들었으면 한다. 삼성의 건투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