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인간만큼 모순되고 논리적이지 못한 존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귀신조차도 인과관계가 뚜렷한 편이고, 옛날 이야기속 도깨비도 약속은 잘 지킨다. 설령 그것 때문에 자기가 피해를 보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인간만큼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 꾀를 내어 어떤 약속을 해도 그것때문에 피해를 보면 다시 자기 유리한 대로 바꿀 생각을 한다.



얼마전까지 한국에서 휴대폰으로 이용하는 데이터통신이란 공포의 대상이었다. 별로 좋은 기능도 없는데 조금이라도 이용하려고 하면 패킷 단위의 엄청난 요금이 청구되기 마련이었다. 하다못해 밖에서는 그렇다치고 집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편히 쓰려고 해도 그 와이파이와 인터넷 서핑 가능은 철저히 외면했다. 집에서도 3G를 써서 비싼 이용료를 내란 뜻이었다.

때문에 해외에서 와이파이 기능이 붙어 출시된 스마트폰이 국내에만 출시되면 와이파이가 제거되고 대신 DMB가 붙어나오기 마련이었다. 멋모르고 쓴 데이터 요금에 몇백만원, 몇천만원의 요금이 나와서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왔지만 이통사는 변명만 할뿐 맞춤형 요금제조차 만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실수로라도 누를 만한 장소에 데이터이용 버튼을 큼지막하게 달아놓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고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서 이런 상황은 획기적으로 변했다. 데이터 정액요금제가 생기고 와이파이 기능이 탑재되자 오히려 이통사는 밖에서도 될 수 있으면 와이파이를 이용해달라고 선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야 무선망에 투자를 더 안하고도 와이파이 만으로 정액요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입장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리고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라는 것을 신설하면서 다시 정액요금 자체를 인상했다. 어차피 쓰다남은 데이터가 이월되는 것도 아니니 이통사 입장에서는 적게 쓰고 요금만 꼬박꼬박 내는 사용자를 원했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이에 마치 반발하듯 와이파이 대신 무제한 요금제로 집안에서도 3G망으로 인터넷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

이번 달엔 7기가바이트밖에 쓰지 못해 속상해요. 다음 달엔 더 분발해야 할 듯 ^^;
갤럭시S로 14기가 쓰셨다는 분도 계시던데 동영상만 보셨나봐요
꺼졌다 켜졌다 하는 무선랜(Wi-Fi) 때문에 아예 3세대(3G)망만 써요

최근 한 스마트폰 카페에 올라온 사용자들의 말이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충실히' 사용하는 이른바 '데이터 하마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통신사들은 서비스품질(QoS·Quality of Service) 정책으로 이들의 데이터 사용에 제한을 걸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부에선 통신사들의 무리한 경쟁으로 도입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결국 단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들이 많아지면서 '데이터 하마족'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주문형 비디오(VOD)나 주문형음악(MOD)을 주로 활용하는 사용자들이다. 적게는 매월 2?에서 많게는 10? 이상씩 쓰는 사용자들도 늘고 있다. 최근엔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에어비디오, 다음TV팟 등 각종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들이 다수 나오면서 데이터 트래픽은 향후에도 빠른 속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지만 이동통신사들은 약관에 고지된 대로 '데이터 하마족'의 데이터 사용량에 제한을 걸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처방법이 잘못됐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이동통신사들의 과도한 욕심에 있다.

생각해보자. 이동통신사들은 처음에는 와이파이가 들어간 스마트폰을 두려워했다. 사용자들이 자기들 망을 이용하지 않고 무료만 이용할까 봐서다. 그러나 스마트폰 이용이 폭증하고 데이터 이용 자체가 늘어나자 오히려 더 많은 이윤을 거둘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밖에서도 데이터를 이용하고 싶은 사용자들이 기꺼이 3G망도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다소 비싼 정액요금을 신설한 이통사는 이미 충분히 재미를 보고 있다. 그냥 피처폰 시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윤이 나는 재미를 말이다. 그런데 이통사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이윤을 노리고 요금제에다가 데이터를 적게 필요한 데서만 이용하는 사용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의 요금제를 만들지 않았다. 시중의 요금제를 보면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적게 이용해도 기본요금이 많다. 그리고 많이 이용해도 적게 이용하는 것에 비해 요금이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무제한 요금제는 제한 요금제에 비해 고작 만원이 비쌀 뿐이다.

이것의 의도는 명확하다. 데이터 요금제의 과소비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자기에게 필요한 데이터량보다 훨씬 기본이 많은 요금제에 가입시켜서 다 쓰지도 못하고 데이터가 남아도 꼬박꼬박 그 요금응 받으려는 욕심이다. 어차피 데이터를 적게 써도 이월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돈을 돌려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되니 어떤 일이 생길까. 악착같이 그 데이터를 써보려는 사용자가 늘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데이터 하마족이다. 이들은 악질 사용자가 아니라, 이통사의 정책에 반사적으로 반발하는 사용자다.

스마트폰, 데이터 요금제의 진짜 문제점은?

이런 데이터 하마족에게 제한을 걸거나 무제한 요금제를 없애는 건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 다음은 정해진 데이터량을 한계까지 아슬아슬하게 다 쓰려는 소비자를 낳을 뿐이다. 진짜 문제점은 이통사가 알뜰한 데이터 이용자에게 메리트를 주는 요금제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사실 동영상을 일부러 다운받거나 하지 않는 한 현행 데이터 용량은 남아돈다. 또한 밤낮으로 스마트폰만 붙잡고 쓰는 것도 아닌 이상 그걸 월마다 착실히 다 소모하는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에서 쓴느 데이터는 요금제 총량의 3분의 1도 안된다. 바쁜 생활속에서 잠시 필요한 때만 3G를 열어 쓰고 곧바로 닫는 사용자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을 끌어들일 요금제가 필요하다. 즉 데이터양은 현행의 3분의 1정도이고 요금도 절반 내지 3분의 1정도인 정액 요금제가 필요하다.

이솝 이야기에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건 북풍이 아니라 햇빛이었다. 이통사는 현재 데이터 요금제의 진짜 문제점이 무엇인지 깨닫고 현명한 대응을 하길 바란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이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