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나 장기에서 '몇 수 앞을 내다본다' 라는 표현이 있다. 고도의 두뇌싸움에서는 눈 앞의 한 수만 내다보는 것이 무의미하다. 상대의 반응을 의식한 두 수나 세 수 앞까지 내다볼 수 있어야 그 게임에서 이기게 된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정치계나 경제계에서도 이런 표현을 빌린다.

그동안 소니는 정말 속된 말로 '삽질'을 했다. 몇 수 앞만 봐도 모자랄 판에 눈앞의 한 수조차 보지 못하고 좋은 기회를 놓치거나, 엉뚱한 상품을 내놓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로 80년대와 90년대 엄청나게 쌓아올렸던 좋은 기반을 거의 까먹고 지금은 쇠퇴하는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누군가는 이게 바로 일본식 경영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애플과 다른 기업이 하는 것을 보고 소니도 조금은 시대의 흐름에 눈을
뜬 모양이다. 소니는 남은 주력 영역 가운데 게임기를 놓고 긴 침묵을 깨며 파격적 정책을 내놓았다. (출처)

소니가 자사 게임기(플레이스테이션)에서만 이용 가능했던 1만1000개에 달하는 게임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개방키로 했다.

소니그룹의 게임사업 부문 자회사인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의 히라이 가즈오 최고경영자(CEO)는 27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 프린스 파크타워에서 열린 2011년 사업전략 발표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연내에 안드로이드 OS를 사용하는 모바일기기에서도 소니의 게임을 만날 수 있다"며 "이용자에게는 더 많은 즐거음울, 개발자에게는 더 많은 시장을 가져다 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니는 그동안 20년 가까이 게임 콘텐츠를 자사의 게임기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소니가 기존의 입장을 바꾸면서 삼성전자·LG전자 등이 안드로이드 OS를 채택해 만든 스마트폰·태블릿PC에서도 소니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히라이 CEO는 "소니가 직접 검증하고 인정한 고품질의 게임만 제공할 것"이라며 "제조사들을 위한 기술지원에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소니의 안드로이드 OS용 게임은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콘텐츠 쇼핑몰인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이는 애플이 `아이튠즈`와 `앱스토어` 같은 콘텐츠 장터를 통해 아이폰·아이패드의 제품경쟁력을 높인 것처럼 소니 역시 자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게임 콘텐츠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한 편 히라이 CEO는 올해 연말에 선보일 휴대용 게임기 신제품도 선보였다. 이 제품은 2004년 말 출시해 전 세계적으로 6000만대 이상 팔린 PSP의 후속제품으로 `NGP`(Next Generation Portable·가칭)라는 휴대용 게임기다. 5인치 OLED(유기형 발광다이오드) 화면을 갖추고 앞면과 뒷면에 터치 기능과 카메라를 각각 탑재했다. 3G와 와이파이를 모두 지원하며 지인들과 게임 관련 정보를 주고 받는 소셜미디어 기능도 갖췄다.



나는 이전 포스팅을 통해 소니가 PS3 해킹이나 PSP 해킹 펌웨어를 단지 고소하고 막는 것만이 아니라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마침내 소니가 그런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한 것이다.

자, 그럼 단지 기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IT평론가로서 이런 소니의 승부수가 업계에 이후 어떤 영향을 가져올 지에 대해 하나씩 분석해 보자. 그리고 단지 한 수가 아니라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예측을 해보자.

소니, 스마트폰 게임의 지배자가 될 승부수는?

1) 이번 조치는 소니의 차세대 게임기가 살아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탑재해야 하는 운영체제를 안드로이드로 정한 것에서 시작됐다. 향후 모든 모바일 기기가 애플의 iOS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MS의 모바일7으로 갈 예정인데 이후 고립된 소니 독자적 운영체제로는 미래가 없다. 그래서 PSP2도 안드로이드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안드로이드를 탑재하게 되면 과연 기존의 안드로이드 기기와 어느정도 동질감을 가질 수 있는가이다. 소니의 기존정책대로라면 안드로이드 앱은 PSP2에서 실행되어도, PSP용 게임은 안드로이드에서 실행될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과연 이게 안드로이드 기기가 맞느냐는 말과 함께 동질감과 동류의식을 전혀 가질 수 없다. 그런 정책을 펼쳐놓고는 앱을 구입하기 위해 구글에게 안드로이드 인증을 달라거나 공식마켓을 이용하게 해달라고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이번 정책으로 소니의 차세대 PSP는 안드로이드의 일원으로서 게임을 개방하는 대신 안드로이드의 앱마켓에 당당하게 발언권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게되었다. 원래는 너무도 늦게 들어온 소니를 그다지 환영해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고품질의 게임 1만여개를 가지고 오겠다는 회사를 환영하지 않을 진영은 없다.

2. 소니 입장에서도 상당히 절박한 분위기가 있다. PSP2는 그동안 써오던 디스크 미디어를 포기하고 온라인으로 바꾸게 되었다. 이는 기존 게임의 유통구조에 영향을 주어 소매점과 각 게임개발사들의 수익이 떨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게임을 개발하고자 하는 의욕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런 써드파티를 유혹하고 달래는 수단으로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판매고를 올려줘야 한다.

소니는 개발사에게 게임 '앵그리버드'의 예를 보듯 안드로이드에서도 잘 만든 게임은 광고든 직접 판매든 돈이 된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소니 스스로도 이를 계기로 앱스토어 형식의 수익모델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다.



3. 이 정책은 폐쇄 정책을 계속하고 있는 1위 업체 닌텐도에 대한 선제공격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콘솔 게임 업체는 한번도 다른 회사의 운영체제와 플랫폼을 위해 게임을 만든 적이 없다. 닌텐도 역시 주주회의에서 아이폰 용으로 게임을 내놓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그런데 소니가 이렇게 나오면 닌텐도의 입지가 매우 약해진다. 아직 스마트폰은 커녕 그냥 휴대폰조차 전혀 내놓은 적이 없는 닌텐도는 할 수 없이 결단을 해야 한다.

MS 역시 마찬가지다. 소니와의 경쟁을 위해서 MS는 자사의 모바일7용으로 XBOX 게임을 내놓을 가능성이 커진다. 닌텐도는 아마도 최후까지 자사콘솔로 버티려 하겠지만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성격이 비슷한 애플로 가긴 어렵고 이제와서 구글 안드로이드로 가기도 어렵다. 닌텐도는 도리어 MS와 손잡을 가능성이 높다.


4. 이 결정은 만일 제대로만 이행된다면 애플의 앱에 밀리고 있는 안드로이드 앱 시장에 엄청난 기회다. 적어도 게임에서 애플쪽은 아직 블록버스터급이 부족하다. 또한 동양에서 선호하는 롤플레잉 등의 게임도 부족하다. 일본의 축적된 대작, 애니메이션과 결합한 게임 등은 매우 질좋고 오래 즐길 수 있는 타이틀이다. 캐주얼 게임에 편중된 지금의 스마트폰, 모바일 게임 시장을 일거에 바꿀 수도 있는 신호탄이다.

소니의 이번 결정은 그야말로 승부수다. 안드로이드 진영에 가장 늦게 합류하면서도 가장 대우받는 최고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잘 된다면 향후 안드로이드를 포함한 스마트폰, 모바일 게임 전부를 소니가 지배할 수도 있다. 또한 안드로이드가 아이폰을 앞서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좀 더 비약해 말하면 소니가 스마트폰 게임의 지배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잘 만든 정책과 비즈니스 모델 하나는 순식간에 업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 과연 소니의 이번 발표가 제대로 이행될 것인지 잘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