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보다 잘난 상대와 비교당하는 게 기분좋은 사람은 없다. 적어도 우리 모두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달갑지 않은 비유를 들어가며 자랐다. 오죽하면 뭐든지 잘하는 엄마친구아들인 '엄친아'라는 말이 나왔을까.

한때 세계 최고의 가전, IT기업이었던 일본의 소니는 어떨까. 지금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 서서히 퇴조해가는 이 기업에 있어서도 비교는 그다지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그야말로 현재의 엄친아 기업인 애플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야말로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처럼 나는 소니에게 또 잔소리 섞인 비교를 해야겠다. 애정이 없으면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때 플레이스테이션1과 스마트폰의 할아버지뻘인 PDA 클리에 같이 내 가슴을 뛰게 한 매력적인 기기를 만들어낸 소니에 대해 나는 아직도 애정이 남았나보다.

소니에게 그나마 지금 최후로 남은 자기 영역이라면 디지털 카메라와 게임기다. 이 가운데 게임기는 아직도 PS3가 최고의 성능을 지닌 게임기로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나름 소니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플레이스테이션 3를 둘러싼 소니의 최근 행보가 너무도 안타깝다. 뉴스를 보자. (출처)

소니는 PS3 해커들인 George "Geohot" Hotz와 해킹 그룹 fail0verflow (Hector Cantero, Sven Peter, "Bushing," "Segher")에 대해 금지명령을 신청했다.
소니는 더 구체적으로 디지털 밀레니엄 카피라이트 액트, 컴퓨터 사기 및 오용 액트, 다양한 판권 침해들, 바이너리 블법 액트 등을 인용해 이들을 제소했다. 소니는 이들이 해킹에 사용하는 모든 "우회 툴들"에 대한 잠정적 금지명령을 신청했다.



전문용어가 많은데 쉽게 설명하겠다.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3를 불법복사로부터 보호해주는 장치가 해커들에 의해 뚫렸다. 덕분에 앞으로 불법복사 타이틀을 실행시킬 수 있게되자 소니가 해당 지역 법원에 대고 소송을 낸 것이다.

이 조치 자체는 올바른 행동이다. 소니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 해커들은 나름 자기들이 법을 어기지 않았으며, 단지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해커들의 변명이야 어쨌든 이 기술은 불법복사 타이틀의 범람으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그럼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소니가 단지 이런 소송만 냈을 뿐, 그 후 플레이스테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애플의 아이폰 역시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었다. 본래 아이폰은 운영체제의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타사나 사용자가 만든 앱이 실행되는 구조가 아니었다. 애플에서는 철저히 기능을 제한했다. 그런데 해커들이 아이폰의 보호장치를 깨뜨리고는 자기들이 만든 앱을 쓸 수 있도록 개조했다. 이에 대해 애플이 과연 어떤 후속조치를 내렸을까.

애플은 단순히 고소해서 누군가를 협박하거나 혼내는 것만을 주력하지 않았다. 애플은 아예 앱 개발도구인 SDK를 공개하고 아이폰의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전면적으로 사용자들이 만든 앱을 실행할 수 있게끔 바꿨다. 동시에 앱스토어란 가게를 열어 개발자가 소비자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 사이에서 애플도 관리비 명목으로 수익을 챙겼다.



그러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엄청난 양과 기발한 아이디어의 앱이 개발되었고, 앱스토어에서 많은 판매실적을 올렸다. 그런 활성화가 다시 아이폰의 판매와 평판을 끌어올리며 애플에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올리는 엄청난 상승효과가 만들어졌다.

소니는 어째서 애플처럼 성공하지 못할까?

내가 지금 소니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고 하려는 잔소리가 바로 이것이다. 애플이 했던 것처럼 소니 역시 조금만 발상을 전환하면 되지 않을까. 플레이스테이션 3의 개인용 개발툴을 공개하고, 아예 개인이 개발한 작은 게임과 앱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게 하면 안될까? 나아가서 애플보다 더 앞선 개념과 좋은 수익모델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은가? PS3라는 플랫폼을 쥐고 있는 이상 그걸 여러 가지로 활용할 여지가 많다.

그러나 소니의 대응은 딱 여기까지만이었다. 그저 법적으로 금지하고는, 자기는 기존의 서비스만 계속한다. 팔리든 안팔리든 소니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해커들이 왜 저런 시도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무성의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뉴스에 대한 결과를 나타내주는 다른 뉴스를 보자.(출처)

새로운 소식에 이미 소개된 것처럼, 소니는 Geohot과 다른 해커들이 PS3 jailbreak 펌웨어를 배포하는 것에 대해 제소했고, 이에 대한 임시금지명령 (TRO)을 요청했지만, 판사는 이를 기각해 Goehot은 소니의 제소 1 라운드에서 승리했다. 따라서 Geohot은 소스를 다시 온라인에 올렸다.
판사가 소니의 임시금지명령 요청을 기각한 것은 Geohot이 뉴 저지에서 PS3를 해킹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북부 지원에서 이 사건을 판결하기에 적합한 관할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관할조차 잘못 선택해서 재판도 받기 전에 기각부터 당하고 있다. 길고 지루한 재판이 될 수도 있는데 소니는 아무런 전향적인 움직임도 없다. 이러니 기민한 애플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행동이 다르니 당연히 소니가 애플처럼 크게 성공할 리가 없는 것이다.

소니는 좀더 소비자의 심리를 잘 읽어야 한다. 소비자는 돈을 지불하는 대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기업이 들어주길 바란다. 소니는 자기가 만든 게임기를 소비자의 의사가 아닌 자기 의사대로만 활용하고 있다. 애플이나 삼성과의 차이가 확 난다.



소니는 좀더 개방적이고 스마트한 사고방식으로 기술발전에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남아있는 상위분야인 게임기나 디지털 카메라마저 우위를 빼앗길 수 있다. 애플과 똑같을 정도로 잘나갈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소니가 옛날 내가 열광했던 그 소니의 잔상이라도 한번 보여줬으면 한다.



P.S : 오늘자 보안뉴스에 제가 기고하는 스마트폰 컬럼인 플랫폼의 변화가 소프트웨어 권력을 교체한다 가 실렸습니다. 제목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애독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