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평론가로서 나는 중립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특정회사인 애플이나 삼성, 구글이나 MS편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추상적인 의미의 소비자편이다. 소비자의 편에 서서 생각하며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려고 한다. 때문에 정치인이 국민을 욕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소비자를 욕하지 않는다.

물론 하늘 아래 잘못이 없는 존재가 어디 있을까. 때로는 소비자도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잘못은 잘못이 아니다. 그들을 그렇게 잘못 이끈 기업이나 사회가 잘못을 책임져야 할 뿐이다.

오래전부터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뜨거운 화두가 되어온 논의가 있다. 바로 망중립성이다. 이것은 기술에 의해 기존 업계의 비즈니스 모델과 이익이 파괴되면서 고정된 질서가 흐트러지기에 튀어나온 개념이다.



망중립성이란 간단히 비유해서 말하면 수도물을 제공하는 사업자는 단지 그 수도물에 대한 일정한 비용만 받아갈 뿐 그 수도물의 용도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 물을 마시든, 손을 씻는데 쓰든, 그걸 가지고 고급 제품을 만들어 다시 팔든 아무 상관이 없다. 수도 사업자는 정해진 비용을 내는 사람에게 공급을 거부할 수도 없고, 수도요금에 차별을 둘 수도 없다.

가장 가까운 예로 현실에서 우리가 쓰는 정액제 인터넷을 들 수 있다. 우리는 각 가정에 공급되는 인터넷망에 대한 요금을 내는데 우리가 이 망의 제한된 회선폭만큼만 잘 쓰면 그 뿐이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개인 서버를 운영하든, 인터넷 전화를 하든, 게임을 하든 인터넷 사업자가 간섭할 아무 권한은 없다. 요금만 잘 받아가면 된다.



그런데 이런 망중립성의 개념을 기존의 이동통신 전화망에는 적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지금 전세계적인 이슈로 터져 나오고 있다. 얼마전 미국에서 이통사가 스카이프를 3G망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았다가 망중립성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다시 풀어준 바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곧 아이폰을 들여온 KT에도 옮겨붙었다. 외국의 스카이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수다폰 등 인터넷 무료전화 어플이 나오자 KT가 이를 일정한 요금제 자격에 따라 심사하여 차단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아이폰 무료통화 앱 차단, 무엇이 문제인가?

이 문제는 스마트폰이 보급된 나라마다 한번은 터져나와야 할 통과점이다.
어째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가? 추상적인 종합 데이터 이용 자체를 목표로 깔았던 유선 인터넷 망과 달리 이동통신사의 무선망이란 최초에 단지 휴대전화의 음성통화를 목적으로 깔았던 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수익구조나 각종 시스템이 완전히 음성통화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사용시간에 따른 과금제를 비롯해 엄격한 제한을 둔 시스템이었다. 대신 이동통신사는 음성통화 가능한 범위의 향상과 통화품질의 향상을 책임졌다. 원래 전세와 달리 월세를 살면 주인이 집관리는 잘해주기 마련이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이런 음성망이 무선인터넷망으로 변했다. 그러자 데이터를 주고 받는 사람들이 생겼고 데이터를 위해 음성보다 저렴한 요금제가 책정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음성통화도 뜯어보면 그 본질은 단지 데이터였다. 그러니 마치 역수입 제품처럼 허용해준 데이터 이용이 다시 음성통화로 돌아와서 이통사의 수익을 훼손시키고 있다. 그 가운데 새로운 사업자가 돈을 벌고 있다. 그것을 막고 데이터로서 음성통화를 하는 앱을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것이 이런 조치의 근본취지다.



과연 누가 옳은 걸까? 양쪽의 논리를 하나씩 들어보자. 먼저 이동통신사의 논리다.

1) 본래 음성통화를 위해 설치한 무선통신망은 이동통신사의 비용과 노하우의 결정체다. 안정적이고 좋은 품질의 음성통화를 위한 이 망 하나를 가지고 이동통신사는 관련 산업을 이끌며 수익을 창출하고 다시 망의 확산과 업그레이드에 투자한다.

그런데 소비자와 일부 업체는 단지 부가적인 서비스로서 저렴하게 이용하라고 준 데이터 용량을 가지고 싼 음성통화를 시도한다. 더구나 그 사이에 오가는 돈으로 수익창출까지 한다. 이것은 남의 노하우와 기반을 가지고 무임승차해서 돈을 버는 행위이며, 서비스 기반 사업자를 죽이는 행위다. 이렇게 되면 이동통신사는 노력만 많이 들고 이익은 점점 줄어들어 재투자로 못하는 가운데 음성통화사업까지도 죽어갈 것이다. 따라서 이동통신사의 고유한 음성망에 대해서 데이터를 이용한 무료음성통화 앱은 임의로 규제하고 차별해야 한다.

제법 그럴 듯 하다. 이번에는 무료통화 앱 업체와 다수 소비자들의 논리다.

2) 시대의 발전에 따라서 각 업종의 영업방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항상 파괴적인 기술은 기존의 모든 질서와 방식을 뒤집어 엎었고 그 과정에서 모든 혁신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이동통신사는 바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고 한다.




과거에는 비록 음성통화를 위해서만 망을 깔고 관리했을 지라도, 이제는 스마트폰 시대다. 모든 것이 단지 데이터 하나로 집약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음성뿐만 아니라 영상통화, 그래픽이나 동영상 교환 등도 망 하나로 이뤄지는 것이 기술의 진보다. 이런 가운데 이동통신사가 망과 음성통화를 하나로 결합시켜 생각하는 방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젠 이동통신사는 단지 망사업을 하는 사업자일 뿐이다. 망을 통해서 많은 데이터가 흐르면서 상승효과를 만들어내는 변화의 시대에 망사업자는 그 안의 데이터에 대해서 어떤 차별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음성통화 수익이 탐난다면 그것도 데이터의 하나로서 새로 업체를 만들어 공정히 경쟁해서 가져가라.

양쪽의 주장은 모두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 국지적으로는 망중립성 쪽이 이기고 있다고 하지만 꼭 어느 한쪽이 다 이길거란 보장은 없다. 아마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날 것이다. 국가체제라든가 산업구조에 따라 필요한 정책이 다르며 무엇보다 소비자인 국민의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KT측 홈페이지에 올라온 해명이다(출처).


아이폰, 혹은 다른 스마트폰에서의 무료통화 앱을 제한하고 차단한 KT의 이번 사건은 그래서 단지 욕하거나 고개를 돌릴 게 아니다. 이것을 계기로 우리도 어서 국민적 합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 망중립성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일정부분 포기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어서 관련 법령이 정비되어서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소비자가 가장 이익을 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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