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이 가장 큰 무기인 IT업계에서 최고의 무기는 특허이다. 단순히 먼저 만들기만 하면 주어지는 지적재산권에 비해 특허란 보다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법적 절차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일단 획득하고 나면 대단한 위력을 지닌다.

특허는 글자 그대로 특별허가다. 일정기간을 정해서 그 권리를 얻은 자 이외에 다른 사람의 기술 사용은 금지된다. 만일 꼭 기술을 사용하고 싶다면 특허권자에게 돈이나 다른 대가를 지불하고 허락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 특허가 요즘은 워낙 많이 나오고 얻어지다 보니 상당히 모호한 경우가 있다. 심지어 내가 지금 쓰는 기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떤 기업의 특허를 침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침해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사실을 알리고 경고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일부러 특허만 얻어놓고 있다가 일정기간 침해를 방치하고, 나중에 느닷없이 해당기업을 고소하겠다고 위협해서 거액의 합의금을 챙기거나 전략적으로 우월한 위치에서 다른 대가를 얻어내기도 한다. 다른 영업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특허로만 돈을 버는 이런 기업을 흔히 특허괴물이라고도 한다.

삼성은 어떨까. 초창기 삼성은 다른 국내기업과 마찬가지로 기술적으로 열악했다. 부품을 전부 해외에서 수입해 조립만 하는 수준에서 시작했다. 이때는 특허랄 것도 없었다. 그러나 점차 티비와 VTR을 만들고 반도체까지 개발하면서 특허의 필요성이 강해졌다.

삼성에 있어서 특허에 대해 결정적으로 생각을 고치게 된 계기는 이 시기에 생겼다. 한창 기술을 배우며 신제품을 내놓던 시기에 터져나온 뼈아픈 특허소송 때문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삼성의 스타 CEO> (홍하상 지음, 비전코리아) 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1986년 2월,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사가 삼성을 특허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당시 이 회사는 삼성뿐만 아이라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제소를 했다. 이중적인 견제였던 것이다.

이 당시 일본은 자신들의 역량을 동원해 이 문제를 무리없이 매듭지었다. 크로스 라이센스, 특허상호 공유라는 카드를 내밀었던 것이다. 이것은 일본이 보유한 기술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특허 침해가 아니라 기술과 정보의 상호교환이었다는 식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아직 일본과 미국에 비해 보유한 기술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 당연히 크로스 라이센스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다. 결국 삼성은 720억원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해야 했다.

후발 업체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많은 특허소송이지만 특허기술이 거의 없는 삼성에게는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삼성은 반도체를 비롯한 업계 1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특허가 많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적극적인 특허출원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말인 지금 삼성은 외국 업체의 소송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 인가젯)



HTC와 삼성은 지난 주 안드로이드 특허 소송으로부터 자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Intellectual Ventures와 전체 특허 포트폴리오 라이센스 계약을 맺었다. Intellectual Ventures는 전 마이크로소프트 CTO였던 Nathan Myhrvold가 설립한 회사로, 30,000 개 이상의 지적 재산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HTC와 삼성은 애플이나 오라클 같은 현재 혹은 잠재적인 법적 상대들과 더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IV와의 라이센스 계약으로 말미암아 현재 애플과 HTC와의 법적 소송들의 결과가 주목된다.

현재 애플을 제외한 다른 진영인 안드로이드폰 진영은 구글이 제공한 공개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쓴다. 그런데 이 안드로이드에 쓰인 자바기술에 대한 특허를 지닌 오라클이 사용료를 요구하며 개별 휴대폰 업체를 고소하면서 긴장이 감돌고 있다. 이에 구글은 삼성과 엘지 등에 대항할 특허제공을 요청했으며 앞으로 법정에서 장기간 소송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어떻게 특허전쟁에서 강자가 되었나?



이런 가운데 삼성은 자체 특허 외에 특허전문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든든한 보호막을 구축했다. 예전에 가진 특허가 없어 일방적으로 거액의 합의금을 주어야 했던 굴욕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이처럼 삼성은 뼈아픈 소송 이후로 거액의 연구개발비와 적극적 특허출원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고, 글로벌 기업들과 대등하게 크로스 라이센스를 맺을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매년 1조원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한 끝에 지금은 손꼽히는 특허보유 업체가 되었다.


삼성은 몇 년전 소니와도 크로스 라이센스 협정을 맺기도 했다. 어쩌면 삼성이 앞으로 중국이나 대만의 업체에게 특허를 무기로 일방적으로 합의금을 얻어낼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의 경험을 잊지 않고 노력하는 것만이 강자가 되는 길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