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나는 주로 애플을 주인공으로 놓은 글을 썼다. 그러나 이제는 시점을 전환하기로 했다. 섹시하고 멋진 외국 미남 같은 애플은 매력적이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내가 나고 자란 한국기업은 아니다. 또한 한국 기업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한국기업이었으면 좋겠냐?' 고 기자에게 짜증을 냈다. 아마도 언젠가 한국기업이 애플을 인수하는 날이 온다면 그날 미국전역에서 반대운동이 벌어질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미우나 고우나 애플은 남의 기업이다. 한국을 끔찍히 생각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제 그나마 애플에 대항할 수 있는 한국국적의 글로벌 기업을 찾아보자. 동종업계에서는 오로지 삼성 밖에 없다. 엘지나 SK도 잠재력은 있지만 삼성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다음 주인공으로 삼성이란 검은 머리의 남자를 주인공을 놓으려 한다. 물론 이 남자는 애플보다 매력이 떨어질 수도 있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쨌든 현재의 한국으로서는 그나마 애플에 비교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아닌가. 능력이 좀 모자라면 나름 성장하는 걸 보는 즐거움도 있을 것 같다. 어차피 나는 애플이란 주인공에게도 찬양과 비판을 동시에 던졌듯, 한국이란 주인공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냉정하게 역사를 서술하면서 적절한 비판도 삽입하는 조선시대의 사관처럼 나는 삼성의 역사와 구조, 시스템과 전망을 역사적 관점에서 적어나가겠다. 적당한 농담을 섞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럼 시작하는 주제를 열어보자. 요즘 한국의 인터넷과 블로그 세상을 온통 덮고 있는 건 애플과 삼성이란 두 기업의 행보다. 아이폰으로 인해 넓어진 IT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애플의 사과마크는 이제 아이들이나 여자들도 아는 로고가 되었다. 더불어 이에 맞서 여러 제품을 출시한 삼성에 대해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적어도 이제까지 국내의 전자업계는 삼성의 아성이었기 때문이다.


애플같이 컴퓨터의 역사를 만들고 혁신을 계속하는 기업과 삼성처럼 창의력이 부족하고 남의 것을 따라하던 기업은 비교가치조차 안된다고 매몰차게 말하는 네티즌도 많다. 아예 애플을 극구 찬양하고 삼성을 극력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편에서 삼성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고 어느 쪽이 완전히 잘못했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일단 나는 두 기업의 공통점부터 알아보았다. 얼핏 보면 기업문화부터 태생까지 너무도 달라서 도무지 접점이라고는 없을 듯하는 두 기업이지만 사실은 그 성공비결에서 굉장한 공통점이 있다.

삼성과 애플, 두 회사의 공통된 성공비결은?

그것은 바로 두 회사가 기본적으로 창업자이자 오너인 개인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해 성공했다는 점이다.

애플은 스티브 워즈니악이란 천재 엔지니어가 만든 애플 컴퓨터를 스티브 잡스란 천재 마케터가 상업화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매킨토시를 거치고 이어서 아이팟과 아이폰이란 하드웨어를 거치면서 워즈니악은 평사원으로 남고, 오로지 스티브 잡스 혼자의 독재에 가까운 카리스마에 의해 운영되었다.



애플 초기의 내부 기업 역사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외부적으로는 새로운 컴퓨터를 만들던 빛나는 혁신의 역사지만 내부적으로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란 회사 전권을 쥐기 위해 끊임없이 선동하고 거짓말을 하며, 누군가를 쫓아내던 권력 암투의 역사였다. 결국 잡스는 그 암투에서 한번 패해 애플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애플을 회생시킴으로서 권력다툼의 종지부를 찍었다. 스스로 유일한 독재자가 된 것이다.

삼성 역시 마찬가지다. 초기 이병철 회장의 지도력에 의해 운영되던 삼성의 결정권은 80프로가 회장에게 비서실에 10프로가, 각 그룹 사장에서 10프로가 있었다. 이것이 이건희 회장으로 승계되면서 20프로가 회장에게, 40프로가 구조조정본부에, 40프로가 계열사 사장에게 주어졌다. 얼핏 민주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구조조정본부는 비서실과 똑같은 기능을 하므로 회장의 명령을 받든다.

삼성의 기업 문화에서 회장의 발언은 절대적이다. 이것은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까지는 거의 변화없이 내려왔다. 외국임원의 말에 따르면 삼성에서 회장의 한 마디는 마치 신의 목소리와 같아서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고 그저 듣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 이 두 회사의 공통점인 개인의 리더쉽에 의존한 경영이 왜 성공의 공통점이 되었을까?



애플에 있어 스티브 잡스의 독단적인 리더쉽은 세 가지 방면에서 이득이 되었다.

1) 스티브 잡스의 개인적 통찰력이 매우 뛰어나 소비자가 앞으로 무엇을 원하게 될 지 비교적 정확한 예측이 가능했다. 따라서 내부의 의견 충돌이나 불필요한 마찰이 없이 정돈된 방향으로 역량을 정확히 집중할 수 있었다.

2) 최고 경영자가 스티브 잡스 혼자이고 변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회사 내부의 권력다툼이나 줄서기가 없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 한 사람의 신뢰만 있으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할 수 있으므로 창의적인 사람들이 내부의 권력다툼에 희생되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3) 자칫 비대해지고 방만하게 운영되기 쉬운 조직이 긴장하게 되고, 계열별로 자기 이익만 쫓는 일이 없어졌다. 설령 사업부나 팀간의 의견이 충돌하거나 알력이 생긴다고 해도 스티브 잡스가 최종적으로 조율하고 결정을 내리면 그것으로 해소된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애플은 회사가 성장하면서 겪는 조직의 동맥경화나 비효율성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혁신회사로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애플은 자유분방하고 다소 건방지지만 창의력이 풍부한 서부 분위기의 젊은이로 이뤄졌다. 이런 직원들을 자연스럽게 긴장시키면서 회사일에 몰두시키는 데 스티브 잡스의 카리스마는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



한편 삼성은 약간 다른 방면의 1인 리더쉽이었다. 애플의 그것이 잡스의 업적과 천재성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리더쉽인데 비해 삼성은 조직 자체가 처음부터 한 사람에게 집중된 조직적 체계였다. 인텔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비유했다.

삼성은 놀랄 만큼 다이내믹하다. 최고 결정권자가 한 마디 하면 조직 전체가 한몸이 되어 돌진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군대조직이다. 상명하복과 상관에 의한 조직적 명령체계가 생명인 조직 말이다. 여기서 그 상관이 능력이 있느냐, 업적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명령권자란 사실이 중요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삼성의 전직원은 사령관의 한 마디에 기꺼이 적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용감한 병사와 장교란 뜻이다.

삼성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반도체 산업은 정확한 시기에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늘상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타기에 시기를 조금만 놓쳐도 낙오해버린다. 삼성이 처음 반도체에 뛰어들 때 주위에서 전부 비관적 전망을 했다. 그러나 오로지 최고 경영자의 의사에 따라 모든 사원이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했다. 2년 걸리는 공장 건설을 단 6개월에 하라고 하면 그렇게 했다.



또한 경쟁업체인 미국과 일본 기업이 경기침체에 설비 투자를 줄일 때 오히려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그러자 회사 전체는 그대로 결정을 이행했다. 이런 기민한 판단과 신속한 집행이 바로 삼성을 세계적 반도체 업체이자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킨 원동력이다.

삼성과 애플, 두 글로벌 기업은 이렇게 뛰어난 리더 한 사람의 절대적 명령권에 의해 성장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다. 앞으로 두 회사가 중요한 시장을 놓고 경쟁할 때, 둘 다 시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삼성과 애플 모두가 결정권자의 매우 충실하고도 기민한 손발이기 때문이다.

돌진 명령을 내리면 용감히 앞으로 달려나가는 병사와 같은 삼성과 선장이 고함치면 신나게 칼을 들고 나가는 해적 같은 애플의 대결이 앞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