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으로 알 수 없다.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장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장점도 된다.

애플제품의 요즘 장점을 말할 때 상당한 의미를 차지하는 것이 엄청난 양의 초기 발주량이다. 혁신적 제품이라 자부하기에 초기 생산물량만 몇 백만에 이른다. 그래도 재고부담은 커녕 없어서 못판다. 아이폰4와 아이패드는 부품 수급에 어려움이 있어 주문을 해도 늦게 받을 정도다.

바로 이 점을 이용해 애플은 제품에 들어가는 주요부품의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춘다. 워낙 엄청난 물량을 주문할 수 있으니 대우도 달라지고, 그걸 현금으로 척척 줄만큼 돈이 많으니 금리이자를 이용해 마진없는 납품을 주문할 수 도 있다. 주문하는 동시에 미리 딱 생산원가만큼 현금으로 줄 테니 이윤은 그 돈을 은행등에서 굴려 이자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폭스콘이 바로 그런 경우로 인해 이윤없는 납품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삼성의 메모리반도체나 LG의 디스플레이처럼 가장 비싼 단가의 부품도 애플이 주문하면 척척 값이 내려간다. 그러니 경쟁업체는 상상도 못할 가격과 서비스를 동시에 탑재한 제품을 높은 순이익을 붙여 팔 수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반드시 장점만 되는 것인가? 여기 두 개의 뉴스를 보며 한번 생각해보자.

디지타임즈 분석가 Mingchi Kuo는 삼성 갤럭시 탭이 iPad 급의 디스플레이를 사용했고, 추후 AMOLED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과 E-Ink의 Hydis 부문이 애플 태블릿 iPad처럼 IPS와 FFS의 같은 조합을 사용하는 7 인치 태블릿 디스플레이를 공급하고 있다. 이 조합은 iPad 성공의 한 요소로 알려진 컬러 정확도와 넓은 시야각을 제공한다.

이같은 움직임은 태블릿들에 IPS 패널들 사용을 축진시킬 것이라고 Kuo는 말했다. IPS보다 더 싼 TN 패널들은 저가형 노트북들과 데스크탑 디스플레이들에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트루 24-bit 컬러를 보여주지 못하고 좁은 시야각을 제공한다.

Kuo는 삼성이 2010년에 애플이 2달에 판매한 량보다 작은 220만 대의 갤럭시 탭을 출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삼성이 2011년에 AMOLED를 채용해 큰 디스플레이의 업그레이드를 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는 삼성이 갤럭시 탭에 IPS를 선택한 것은 AMOLED 디스플레이의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고, 내년 7월이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일렉트로니스타)

Engadget은 새 iPod 터치의 리뷰 기사에서 새 iPod 터치에 채용된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iPhone 4에 채용된 IPS가 아니라고 말했다. 새 iPod 터치 디스플레이는 iPhone 4와 같은 해상도 (960 x 640)와 픽셀 밀도 (326ppi)를 제공하지만, iPhone 4에서 채용한 IPS 디스플레이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즉 두 디스플레이들을 비교해 보면, 가시각에서 차이가 있지만, 이는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극단적인 위치에서만 차이가 나타난다고 Engadget은 평했다.

(출처: 인가젯)




그냥 독립적인 뉴스 같지만 이 두개를 종합해서 한번 결론을 도출해보자.

1. 삼성은 갤럭시탭의 디스플레이로 AMOLED를 채택하려고 했지만 물량이 부족해 아이패드급의, 그러니까 S-IPS 광시야각 디스플레이를 장착했다. 그리고 자체 생산라인에서 나오는 AMOLED의 물량이 확보되는 대로 갤럭시탭에도 채용할 계획이다.

2. 애플은 새로 나오는 아이팟 터치의 고해상도 액정에 종래의 S-IPS가 아닌 저가형 TN패널을 썼다. 상하 시야각이  차이나는 이 패널을 쓴 것은 아이폰4와의 제품군 차별이란 원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패널 공급업체의 물량부족이다. 이것은 임시적 조치도 아니고 앞으로도 새 아이팟 터치의 패널은 더 좋은 것으로 교체된다는 언급이 없다.

완제품 생산기업이자 패널 생산 업자이기도 한 삼성은 자사제품의 디스플레이에 들어갈 부품을 비교적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생산량과 수율 등을 뻔히 알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갤럭시S와 갤럭시탭이 아직 선풍적으로 주문이 몰려 많이 팔리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애플은 수백만대가 단기간에 팔리는 인기 때문에 오히려 운신의 폭이 좁다. 아이폰4와 아이패드에 대기도 힘들고 부족한 S-IPS 용 패널을 아이팟 터치에도 채택하기에는 안정적인 부품 공급과 물량확보를 자신할 수 없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품질은 떨어져도 공급선이 다양하고 쉽게 많은 양을 공급받을 수 있는 TN을 채택할 수 밖에 없었다.

애플 VS 삼성, 패널 수급량이 만든 선택은?

즉,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는 삼성재품이, 날개돋힌듯 팔리는 애플 제품에 비해 물량 딸리는 부품을 잘 수급할 수 있다. 따라서 더 좋은 패널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역설적이고도 재미있는 원인과 결과다.

S-IPS 와 TN 패널은 비교의 가치마저 없을 정도로 우열이 뚜렷하다. 시야각과 색 재현율, 휘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S-IPS는 우수한 품질을 보여준다. 단지 비싸고 생산성이 좀 떨어질 뿐이다. 이에 비해 TN패널은 상하 시야각이 안좋은 편이며 동영상을 위한 반응속도 말고는 뛰어난 장점이랄 게 없다. 하지만 애플은 세계적인 판매시장을 노리면서 물량이 원활하지 않는 부품을 쓸 수 없었다. 오히려 삼성은 그보다 한단계 이상 뛰어넘은 AMOLED를 써서 갤럭시탭을 빛내겠다는 각오다.


이처럼 패널 수급량이 애플과 삼성 두 회사의 신제품 모바일 기기의 패널 선택을 좌우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결국 상대적으로 판매량이 적고 부품을 함께 만드는 기업에 오히려 유리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처럼, 세상에는 장점이 바로 곧 단점도 만들어내고, 단점이 장점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