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막 출시된 중간 규모 업체의 자동차 하나가 있다.

<벤츠를 타도하겠습니다!>, <벤츠, 별거 있나요? 기껏해야 2차대전 전범국 독일이 만든 낡은 자동차일 뿐이죠.> 사장이 몸소 이렇게 외치며 화려하게 자사 자동차를 런칭한다.
<우리는 지구와 환경을 생각합니다.> 라는 멘트가 나오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의 이미지를 구현했습니다.> 라는 소개와 함께 유명한 스타가 잘 나와 잘생긴 얼굴과 함께 자동차를 보여준다. 과연 디자인은 꽤 스타일이 살아있는 듯 싶다.

그런데 막상 이런 멋진 선전 뒤에 본 자동차 사양에는 아무 것도 특이한 점이 없었다. 배기량과 변속기, 최고속력과 토크등 각종 성능은 벤츠보다 한참 뒤질 뿐더러 시중의 나와 있는 대부분 최신차량과 동일했다. 심지어 엔진은 다른 회사들이 대부분 쓰는 평범한 것이고 차량 내부 구조까지 특이성이 없었다. 가격 역시 그냥 평범했다. 동급 차량에 비해 더 싸지도 않고 더 비싸지도 않았다.

<대체 이 자동차의 개성은 뭔가요?> 라고 묻는 사람에게 다시 이 자동차회사는 요란한 이미지 광고영상을 반복해 틀어준다. 그게 전부였다. 당신은 이 자동차를 사고 싶은가?

사실 이것은 자동차 이야기가 아니다. 냉정하게 보라고 일부러 든 비유다. 실제로 이것은 지금 스마트폰 시장에 요란하게 뛰어든 중견 휴대폰 업체 팬택의 이야기다.


솔직히 나는 약자를 비판하기를 꺼려한다. 약한 것도 서러운데 비판까지 듣는 것도 힘들겠고, 무엇보다 힘이 없으니 알고도 못하는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에비해 강자는 당연히 비판을 들을 각오와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주저없이 비판한다. 그래서 이 회사의 런칭 쇼에도 갔고 이전 포스팅인< 아이폰 타도를 선언한 스카이 베가 런칭쇼 > 에서는 격려까지도 해주었다.

그러나 이젠 단지 그렇게 보고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도 이 회사의 행보가 어이없고 그 판매 결과 역시 안타깝다. 우선 다음 뉴스를 한번 보자. ( 출처: 지디넷 코리아 )

팬택이 사활을 건 스마트폰 ‘베가’가 3주 판매량 5만여대를 기록했다. 나름대로 준수한 성적표지만, 대대적 마케팅을 감안하면 만족하기 힘들다는 평가다.

베가는 팬택이 ‘외산 스마트폰 타도’를 위해 띄운 승부수다. 이례적으로 차승원과 정우성 등 유명 배우를 내세우면서 톱스타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지난 달 베가를 기자들에게 선보이며 “아이폰4는 무겁고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떨어지는 ‘기계’일 뿐”이라며 “비교해 만져보면 베가가 더 우수함을 느낄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이런 가운데 갤럭시S가 일 평균 판매량이 1만여대 이상을 꾸준히 기록 중이며, 아이폰4는 예약구매자만 20만명을 돌파했다. 팬택은 반격 카드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대치를 낮게 잡는다면야 베가는 전혀 실패한 스마트폰이 아니다. 상장폐지도 겪었고 한때 도산의 위기까지 겪었던 중견회사가 이 정도로 한다면 선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당초에 갤럭시S도 아니고 무려 아이폰 타도를 들고 나왔던 그 호탕함과 요란한 마케팅은 그냥 허풍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기대치를 그래도 꽤 높여 잡는다면 이런 판매실적은 참담한 실패나 다름없다. 위의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이폰4는 예약만 20만대에 없어서 못파는 실정이다. 갤럭시S는 하루에 1만대가 나간다. 3주나 걸려 가장 판매량이 많아야 할 초기에 겨우 갤럭시S 5일치 판매량 정도를 팔아놓고 성공했다고 자축한다면 팬택은 더이상 기업이 아니다. 그냥 휴대폰 가내수공업을 하는 구멍가게일 뿐이다.

그럼 그 원인이 무엇일까? 나는 단지 비웃거나 꾸짖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다른 업계와 소비자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쓴다.

나는 팬택 베가의 런칭쇼에 갔었다. 거기서 처음에 느낀 점은 나름 공들여 마케팅을 했다는 점이다. 오전에는 각 관계자와 기자, 오후에는 블로거 백여명을 초대해서 대대적인 프리젠테이션을 한 점을 비롯해 한번 팔아보겠다는 열의와 성의가 느껴졌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러나 막상 프리젠테이션과 제품 사양을 보면 그런 열의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팬택 베가는 솔직히 아무런 특색도 없는 상급 안드로이드 폰이다. 사양의 기준이 되는 APU 칩부터, 시작해 램용량, 보조 기억장치, 운영체제로 채택한 안드로이드 버전, 각종 인터페이스와 배터리 사용시간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심지어 기본 색깔도 블랙과 화이트로 아이폰4나 다른 스마트폰와 똑같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다. 운영체제를 커스터마이즈하면서 넣은 3차원 인터페이스를 비롯해 미묘한 차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 조차도 명확한 목적의식과 테마를 가지고 소비자에게 일관된 사용자경험(UX)으로 어필하는 데 실패했다.

거의 한시간에 달하는 베가 프리젠테이션을 예로 들어보자.
시작부터 디자인을 앞세운 이미지였고 중간은 뜬구름 잡는 평화 어쩌고 하는 철학 이미지였으며, 마지막조차 도전해보겠다는 이미지였다. 실제적인 성능의 차이점이나 베가가 어떤 컨셉으로 소비자에게 어떤 차별적인 기능과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명료한 주장이 없었다. 하긴 성능을 비롯한 모든 것에서 차별성이 하나도 없으니 당연하긴 하다. 그러나 최소한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능력이 있다면 미묘한 차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제대로 어필할 무엇인가를 찾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가의 마케팅 담당자는 그런 기본 개념을 전혀 몰랐다. 답답해진 나는 질문시간에 <베가의 정확한 컨셉을 가장 명료하게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이건 그나마 일개 블로거인 나를 초청해 점심이라도 먹여준 마케팅 담당자에게 주는 나의 호의였다. 지금이라도 깨닫고 만들어나가라고 말이다.
그러나 담당자는 오히려 내가 프리젠테이션 시간에 졸았거나, 아이큐가 부족해 이해하지 못했냐는 듯, <여태까지 설명했는데, 제 설명이 부족했나보네요,> 란 대답을 했다. 그리고 다시 방향없는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으며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실소를 흘렸다.

아이폰을 타도하겠다고 선언하고 그걸 벤치마킹 하겠다는 팬택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프리젠테이션 동영상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잡스는 아무리 복잡한 기능도 가장 단순화하고 인간화한다. 그리고는 한 단어로 정의하며 직관적으로 제시해서 어필한다. 그런 대단한 CEO가 만든 스마트폰을 따라잡겠다고 내놓은 베가는 정작 자기 특징을 한 단어는 커녕 한시간이나 들여서 장황하게 설명해야 할 정도였다. 개성도 없고 마케팅 담당자의 능력도 제로에 가까웠다.


팬택 베가, 이미지만으로 아이폰을 타도한다고?

팬택 베가의 치명적 문제점은 아무 것도 손에 잡히는 개성이나 차별화된 성능이 없다는 점이다. 디자인조차 뭐 그렇게 엄청나게 명품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오로지 티비에선 스타를 내세워 이미지만 광고하고, 사장은 내용도 없이 아이폰 타도만 외친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이것만으로 아이폰이 타도될 리도 없고 제품이 팔릴 리도 없다. 이런 방식으로는 같은 안드로이드 진영의 갤럭시S 에게도 훨씬 뒤질 것이며, 심지어는 뒤늦게 출발한 LG의 옵티머스 시리즈에도 밀릴 가능성이 높다.

이미지는 분명 중요하다. 잘 만든 우수한 제품이 이미지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해 실패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택 베가는 일관되지도 못하며, 성능이 받쳐주지도 못하는 가운데 오로지 이미지만으로 제품을 팔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는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막상 이 회사의 담당자는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위의 기사 마지막 부분을 소개한다.

이용준 팬택 국내마케팅본부장은 “패션과 가장 잘 어울리는 스마트폰은 역시 팬택이라는 평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금 장난하는 건가?

요즘 스마트폰을 사려는 사람들은 옛날처럼 초콜렛폰이니 김태희폰이니 하는 이미지만으로 고가 피처폰을 사서 통화만 하는 소비자가 아니다. 무엇이든 기능을 써보려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앞에서 아무 개성도 보여주지 못하는 가운데 가격도 비슷한데다 회사도 그다지 믿음직스러운 대기업도 아닌 스마트폰을 얼마나 팔 수 있겠는가? 패션? 아니, 그럼 차라리 알마니나 베르사체랑 제휴해서 디자인 폰을 내놓으면 될 일이지, 뭐하러 안드로이드를 채택하고 스마트폰을 내놓는단 말인가?

팬택 베가의 부진은 예상되었던 결과이고, 앞으로도 그다지 가망이 없다.


이제라도 팬택은 컨셉을 다시 잡고 기능을 소프트웨어적으로라도 차별화해서 제대로 어필하기 바란다. 나는 약자를 응원하지만 스스로 약자란 자각도 없이 허풍만으로 링에 올라온 도전자의 승리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런 도전자는 그저 챔피온에게 한 방에 나가떨어져 웃음이나 주게 마련이다. 웃음거리가 되기 싫다면 이미지란 허풍만이 아닌 진짜 실력을 키워 도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