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이론을 이어서 말해보자.

앞서 나는 컴퓨터 개척기의 역사에서 MS의 빌게이츠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겪은 상이한 경험 하나가 이후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 MS와 애플, 한 가지 경험이 역사를 움직였다. )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취한 비즈니스 전략의 결정적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소프트웨어를 대하는 자세였다. 하드웨어에 약한 대신 소프트웨어를 직접 설계하고 코딩하는 능력까지 있던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와 분리된 하나의 상품으로 보았다.

이건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생각이었다.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알테어에서 소프트웨어란 그저 하드웨어에 따른 부속물 같은 것이었다. 빌 게이츠는 여기에 직접 만든 프로그램 언어인 베이직을 납품하면서 이것을 독립된 상품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당시의 사용자와 업체들은 거의 모두가 소프트웨어를 상품으로 보지 않았다. 또한 하드웨어에 대한 저작권 의식 같은 것도 희박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애플 컴퓨터를 베낀 코모도어의 컴퓨터를 보고는 매우 실망했었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자면 저작권과 특허권이 송두리채 부정되는 이런 상황은 컴퓨터란 자체가 처음 나오면서 관련된 인식과 법령이 정비되기 전이기에 생긴 현상이었다. 마치 미국 서부 개척시대와 같은 혼란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었다. 이런 초기단계의 기술에서는 누군가의 저작권을 강하게 보호하는 것은 도리어 폐쇄적인 구조로 발전의 정체를 가져온다. 서로가 기술을 참고하며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려 노력하는 동안 혁신적인 개념과 기술이 속속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빌게이츠는 알테어를 만든 회사에서 그냥 무료로 공개한 컴퓨터 구조를 이용해 언어를 개발했고, IBM의 공개된 아키텍처 덕분에 운영체제를 제대로 납품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세운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당시 자유롭게 공개된 컴퓨터 구조와 내부 칩 사양, 라이센스 제한없는 기술 덕분에 혁신적인 애플 컴퓨터를 만들수 있었다. 이들 역시 공개의 혜택 덕분에 지식을 얻고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빌게이츠는 소프트웨어를 상품이라 선언하고는 MS-DOS를 비롯해 베이직과 오피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가격을 붙여 팔았다. 또한 소스코드를 공개하지도 않았고, 기술을 교류하지도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특별히 소프트웨어를 상품이라고 강하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대신 애플컴퓨터란 하드웨어에 종속시켜 버렸다. 그러니까 어차피 애플 컴퓨터를 사면 그 가격에 소프트웨어 가격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별히 따로 팔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이렇게 된 상황에 반기를 든 세력이 있었다. 바로 리처드 스톨만이란 해커가 이끄는 일단의 개발자들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컴퓨터 개척기의 선구자들이었고, 남다른 기술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기술집단이었다. 이들은 컴퓨터를 단순한 업무도구나 상품을 넘어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수단으로 보았다.

소프트웨어는 상품이 아니다. 컴퓨터란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필수요소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 혼자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그 역시 앞선 누군가가 개발해서 자유롭게 공개해놓은 기술과 아이디어의 도움을 받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일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 소프트가 주장하는 대로 상품이 되어 공개를 거부하고 각자의 권리만 요구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소프트웨어는 더이상 크게 진보하지 못한다. 모두가 각자의 권리를 일정부분 포기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희생할 때, 비로소 소프트웨어는 활력을 얻으며 진보할 것이다.

이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나름 종교와도 비슷한 열정과 금전적 이익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이들은 자유소프트웨어 연합이라는 것을 만들고는 이미 상용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가 넘쳐나는 세상에 도전했다. 이들은 먼저 완전히 공개된 운영체제를 만들려고 했는데 그 근간이 되는 커널을 만드는 데 애를 먹었다. 리처드 스톨만은 MIT의 교수에다가 뛰어난 실력을 가진 전설적 해커였다. 하지만 다수의 뛰어난 공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음에도 쓸만한 커널을 만드는 데는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던 가운데 핀란드의 리누스 토발스가 마침내 X86용으로 유닉스의 커널을 축소해서 포팅한 커널을 개발했다. 성공적으로 동작하는 이 커널을 통신에 올리자 여기에 자유소프트웨어 연합이 가세했다. 본래는 거대한 회사가 수년 동안 엄청난 인력과 돈을 퍼부어야만 되는 본격적인 운영체제 개발이 순식간에 진행됐다. 쓸만한 커널을 얻은 이들은 리누스 토발스를 중심으로 만든 이 운영체제를 <리눅스>란 이름으로 세상에 무료에다가 오픈 소스로 공개했다.

이것 역시 중대한 혁신이었다.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종래의 IT업계는 소프트웨어를 단지 하드웨어에 부속된 것으로 보았다. 거기에 대한 반발로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가 그 자체로 하드웨어로부터 독립해서 사는 상품이라고 주장하며 그렇게 사업을 전개했다. 그런데 특정한 회사도 아니고 잘 결합된 집단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느슨한 연합체 하나가 소프트웨어는 물이나 공기와 같은 공공재라며 제대로 된 독립적 운영체제를 만들어 내놓은 것이다. 


제대로 된 커널은 정말로 만들기 어렵다. 더구나 그 가운데 연구목적을 벗어나 상용화되거나 실제 제품에 적용되어 널리 팔릴만한 것은 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오늘날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커널 가운데 상품에 대중적으로 쓰이는 커널은 DEC의 커널을 참고한 MS의 <윈도우2000 커널>과 유닉스에서 파생된 마하를 개량한 애플의 <다윈 커널>, 유닉스를 축약해서 만든 <리눅스 커널> 밖에 없다. 나머지는 파생형이거나 점유율이 미미하거나 기능이 너무 부족하다.

빌 게이츠의 결단이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다?

지금 승승장구하며 엄청난 기세를 보이는 애플의 iOS는 매킨토시에도 쓰이는 다윈 커널을 기반으로 한 OSX의 축약판이다. 이에 맞설 정도로 강력한 기능을 갖추었으면서 안정성과 유연성까지 가진 건 안드로이드 뿐이다. 그런데 안드로이드는 바로 리눅스 커널에 기초하고 있다.

개발시간이 촉박했던 구글은 이 안드로이드에 리눅스 커널을 쓰는 대신, 자유소프트웨어 연합과 리누스 토발스의 정신을 계승했다. 안드로이드를 돈을 받지 않고 배포했으며 오픈소스로 공개한 것이다. 바로 빌 게이츠의 노선에 반발해서 나온 해커들의 꿈이 현실화되었다.
 

소프트웨어를 상품으로 보고 소비자보다는 기업체를 상대로 비즈니스 모델을 세웠던 빌 게이츠의 결단은 나름 훌륭했다. 또한 오늘날 소프트웨어 산업의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코딩을 했던 해커를 자극시켜 리눅스를 낳았고, 그 리눅스가 바로 안드로이드로 변했다.
 
즉 빌 게이츠의 결단이 오늘날의 안드로이드를 만든 셈이다.

본질적으로 빌 게이츠와 그 반대쪽 리처드 스톨만, 리누스 토발스의 꿈은 같았다. 전세계 모든 사람의 컴퓨터에 자기가 만든 좋은 소프트웨어를 쓰게 하고 싶었다. 다만 그 방법으로 빌 게이츠는 유료화를, 해커진영은 완전한 공개와 무료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얼핏 최근까지는 압도적인 윈도우의 점유율과 애플 매킨토시에도 훨씬 못미치는 낮은 점유율의 리눅스로 인해 빌 게이츠가 이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시 변화가 왔다. MS가 뒤로 물러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일체화와 그에 따른 유료화를 가져온 애플과 운영체제 소프트웨어의 공개와 무료화를 주장하는 리눅스 진영이 구글이란 대기업을 등에 업고 대치하고 있다. 아직 승자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상황은 모두가 빌 게이츠의 결단이 바꾼 역사이기에 너무도 흥미롭다.


한편 여전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을 가졌고, 지금도 그런 개념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이들 해커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이 역시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권위를 싫어하고 대기업에 저항하는 이미지의 잡스는 이들 리눅스 진영과 자유소프트웨어 연합을 나름 친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둘은 역시 근본적 생각의 차이로 인해 미묘한 행보를 보이게 된다. 그것은 이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쓰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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