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왔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유명 게임 스타크래프트2 의 오프닝 무비에 나오는 대사다. 그런데 어쩐지 이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와 닿는다.

그동안 스마트폰을 포함한 국내 휴대폰 사용자는 외국산 휴대폰의 AS정책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외국회사는 국내회사처럼 고객감동을 위해 규정을 느슨하게 하거나 무시하면서 편의를 봐주지 않기 때문이고 그 다음으로 국내의 AS 와 아예 개념 자체가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개별적으로 해당 회사에 항의도 해보고, 소비자보호원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외국회사들은 휴대폰 AS정책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이런 외국회사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일까. 정보통신부가 해체된 지금, 정부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섰다. ( 출처: 이티뉴스 )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스마트폰 등 휴대폰 단말기 사용자 보호를 위한 권고안을 마련한다. AS 체계가 다른 외국산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급속히 늘고 있는 소비자 불만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KT와 SK텔레콤,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소비자보호 단체를 참여시킨 연구반을 구성, 본격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검토에 착수한다고 4일 밝혔다.

그런데 이 뉴스를 접한 대부분의 스마트폰 사용자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뿌리깊은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 소비자를 위해주겠다는 방통위의 예고를 또다른 규제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많다. 어째서일까?


애플의 아이폰을 포함해 국내에 진출한 외국 휴대폰 업체인 모토롤라, 노키아 등을 봐도 AS에 대해 국내 소비자가 만족하거나 칭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 회사는 외국회사의 특성상 우선 AS기간을 정확히 지킨다. 단 하루가 지났느냐 지나지 않았으냐에 따라서 어제 무상으로 받을 수 있던 서비스가 오늘은 비싼 수리비를 물어가며 받아야 서비스로 바뀐다. 예외는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애플 같은 경우는 글로벌 규정이 있기에 한국에만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고장난 부분을 고치는 게 아닌, 제품 자체를 리퍼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서비스 정책은 논란이 많다. 그나마 무상으로 교체되었을 때는 괜찮은데, 사소한 고장에도 유상으로 큰 돈을 내가며 리퍼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면 도저히 이런 정책을 좋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설 수리점이 번성하는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외국제품은 또한 소비자 과실을 판정하는 기준도 엄격하다. 국내제품은 막말로 땅에 고의적으로 내던진 후, 들고가도 AS기간이면 무상 서비스가 되는 경우가 있다. 빗물 등에 침수됐을 경우도 그렇다. 하지만 외국제품은 그렇지 않다. 침수라벨을 적극 활용하는 애플은 종종 몇몇 사용자에게 가혹한 판정기준이라며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문제는 이렇게 한국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않는 AS정책과 해당제품을 써볼 기회 가운데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아주 쉬운 말로 예를 들어보자. 방통위가 애플에게 지나친 소비자 과실 판정을 삼가고, 리퍼 정책에 대해 한국에서만큼은 부분적인 수리 서비스도 도입해줄 것을 지침으로 요구한다고 치자. 애플이 이에 대해 <그런 지침 강요하면 앞으로 한국에 아이폰 안 팔겠다.> 라고 대답하면 어쩔 것인가?


예전에 위피의 문제도 그렇지만 외국 업체가 이런 지침을 부담스러워 할 가능성은 많다. 때문에 이런 방통위의 지침이 결과적으로 국내에 진출한 외국 휴대폰 업체가 AS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은 지침이었다는 평을 듣겠지만, 반대로 외국업체의 철수나 신제품 발매기피로 이어지면 모 대기업의 로비를 받았냐는 의혹과 함께 또다른 규제로 한국을 갈라파고스로 만들려 한다는 비난으로 이어질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근본적으로 한국의 시장규모가 작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구글이 중국의 인권탄압을 비판하지만 막상 홀가분하게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제품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애플이 중국출시 아이폰에서 와이파이 기능을 제거했다. 중국시장을 놓치고 싶지는 않기에 규제가 불합리해도 회사들이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인구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외국 휴대폰과 어느정도 경쟁할 수 있는 제조업체들이 나름 시장을 분할해 가지고 있다. 여기에 굳이 힘들게 들어와 얼마되지도 않는 파이를 나눠먹기 위해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AS취향>을 만족시킬 필요성을 어느 외국업체도 느끼지 못한다. 노키아든, 모토롤라든, 애플이든 마찬가지다.

유럽은 다르다.
자본주의의 천국 미국보다는 사회주의와 공익의 성격이 강한 유럽은 모든 걸 단지 소비자의 선택에만 맡기는게 아니라 정부들이 일정부분 개입한다. 얼마전 MS의 윈도우에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미디어플레이어만 기본으로 내장된 것이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고 본 유럽은 MS에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물렸다. 결국 MS는 손을 들고 이 두가지를 분리한 제품을 내놓았는데 유럽은 한술 더 떠서 대표적인 경쟁 브라우저나 동영상 플레이어를 인스톨 시에 선택해서 깔 수 있도록 옵션을 넣어야 한다고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유럽연합인 EU전체의 이런 판단에 대해 <안 팔고 만다.>라고 말하기에는 그 시장이 너무 크다. 인구도 많고 구매력도 좋은 유럽을 포기하는 건 아무리 큰 미국회사라도 가능하지 않다.

애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유럽 연합은 전자기기의 배터리와 관련된 새 규정을 만들려 하고 있다. ( 출처:
기즈모도 )

유럽에서 쓰이는 전자기기의 배터리는 언제든지 바로 제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들어갈 예정이다. 일단은 아이팟을 겨냥했지만 결국 아이폰이나 맥북, 아이팟같이 고정된 내장배터리 제품은 전부 유럽에서는 판매 불가가 된다. 애플은 현재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버티는 중이지만 판결이 나오게 되면 배터리 분리형 제품을 출시할 수 밖에 없을 걸로 보인다. 잡스가 아무리 독선적이라고 해도 유럽시장을 버리겠다는 결단을 할 리가 없다.


방통위 휴대폰 AS 지침마련, 또다른 규제인가?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방통위와 한국정부는 소비자에게 충분히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어떻게 됐든 애플 제품을 써보고 싶어하는 사용자가 많다. AS불가를 각오하고 해외에서 애플 제품을 들여오는 사용자도 많은 만큼 이런 휴대폰 AS지침 마련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유럽 소비자 대부분은 저런 지침을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위한 행동으로 볼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지침은 아이폰을 안들여올 핑계를 찾기 위한 또다른 규제로 볼 가능성이 높다. 방통위는 나름 선의로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중요한 건 그 혜택을 받을 대다수가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연 앞으로 방통위는 어떤 내용의 휴대폰 AS 지침을 마련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결국 국내 소비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까? 아니면 또다른 규제라며 비난을 받을까?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진다.

끝으로 모 사이트에서 이 내용과는 다른 방통위 관련 기사 아래에 붙은 재미있는 농담 리플을 하나 소개하며 끝내겠다.

<소고기를 이렇게 수입해봐라!>

상당한 호응을 얻은 이 농담만 봐도 정부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불신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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