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잡스이론>을 이어서 이야기해보자.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가운데 <나비효과>라는 작품이 있다.

영어로 <버터플라이 이펙트>라고도 하는 이것은 북경에서 나비 한마리가 날개짓을 하면 뉴욕에는 토네이도가 올 수도 있다는 비유로 유명하다. 초기치의 미묘한 차이가 크게 증폭되어 엉뚱한 결과를 나타낸다는 뜻인데 인문학에서는 보다 여러가지 의미로 쓰인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은 과거에 한 몇 가지 선택으로 이후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포함해 주인공의 인생을 모두 바꿔놓기도 한다. 마치 일본의 비주얼노벨 게임의 선택지와도 비슷하게 한가지 중요한 경험을 맞게 되고 여기서 선택에 따라 이후의 역사를 모두 바꿔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IT업계에서 전통적인 강자라고 꼽는 두 회사가 있다.
바로 마이크로 소프트(MS)와 애플이다. 두 회사는 개인용 컴퓨터의 개척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전략으로 세계 시장의 판도를 만들고 혁신을 이룩해왔다. 한때 빌 게이츠는 세계 제일의 갑부였고 모든 IT업계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 스티브 잡스는 최고의 CEO이자 혁신을 개척하는 리더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두 회사의 전략과 혁신은 그 방향이 판이하게 다르다. 운영체제부터 하드웨어까지 두 회사는 시종일관 다른 길을 걸었다. 사업영역이 겹치는 약간의 분야- 오피스나 베이직 언어 등을 제외하면 두 회사는 협력보다는 항상 대립했으며, 상이한 특질을 가지고 IT시장을 대했다.

굳이 말하자면 그 차이는 간단히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1. 애플은 언제나 잘 꾸며진 하드웨어와 그 안에 담긴 소프트웨어를 판다. 약간의 예외는 있었지만 애플은 대체로 정식 호환기종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직접 소비자를 상대한다.

2. MS는 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해서 생각한다. MS는 소프트웨어의 핵심인 운영체제와 업무용 오피스를 가장 중요시 했는데 둘 다 표준이 되는 것을 중시한다.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기도 하지만 기업체와의 파트너 관계에 주력한다.

이러한 상이한 차이 때문인지 이 둘은 어느 회사가 성공하든 항상 반대편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들어야했다.


그런데 이 차이는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그냥 두 회사의 리더인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발상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이런 전략을 세우게 된 계기가 있을 것이다. 그 전략을 세우고 선택한 그 동기가 궁금했다.

애플과 MS, 한 가지 경험이 역사를 움직였다.

나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뽑아든 <미래를 지배한 빌게이츠>(자음과 모음)에서 흥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빌게이츠가 MS를 세우고 초창기 개인용 컴퓨터인 알테어 컴퓨터용 베이직 프로그램을 팔고 있을 때였다. 베이직은 MS의 최초 상품인데 빌게이츠는 이것은 알테어 컴퓨터 제작사인 MITS사에 팔았고, MITS사는 다시 그것을 일반 소비자에게 팔았다.

그런데 빌게이츠에게 베이직을 사용해보았다는 편지는 수백통이 왔는데 정작 2년이 넘도록 팔린 숫자는 40개밖에 되지 않았다. 750달러라는 고가도 문제였지만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와 달리 소프트웨어는 복사해서 사용해도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빌게이츠는 <컴퓨터 노트>라는 잡지에 직접 편지를 썼다. '컴퓨터 애호가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이란 제목이었다.

저희 회사 베이직 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말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받은 회신은 모두 긍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첫째는 대부분의 베이직 사용자들이 돈을 주고 베이직을 구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베이직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 사람들은 베이직 전체 이용자의 10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현재 우리가 고객들에게 프로그램을 판매하여 받는 로열티의 총액을 알테어 베이직을 만드는 데 소요된 시간으로 계산해 보았더니 시간당 2달러도 안되는 임금으로 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여러분 중 대다수가 소프트웨어를 훔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짓은 좋은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가로막는 일입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꼬박 한 해 동안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버그를 찾아내면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제가 이 글을 여러분께 띄우는 이유는 언젠가 열 명의 프로그래머들을 고용해서 더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그것이 시장에 넘치기를 바라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이 호소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생각끝에 빌게이츠는 MITS를 불성실한 판매로 계약을 위반했다고 고소해서 3천달러와 로열티를 받아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오늘날 MS는 직원이 수만 명에 프로그래머는 수천명에 이른다. 그런 MS의 초창기 꿈은 단 열 명의 프로그래머을 고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고객에 대한 호소는 먹히지 않았고 비웃음을 샀다. 결국 MS를 살려준 것은 기업이 낸 벌금이었다.


이것이 빌 게이츠의 비즈니스 모델이 기업쪽으로 전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닐까.

소프트웨어를 상품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는 하드웨어와 분리된 소프트웨어를 팔아 회사를 유지할 수 없다. 하지만 MS는 하드웨어를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소프트웨어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기업고객을 잡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애플을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MS의 독점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MS가 윈도우를 각 컴퓨터 제조사를 통해 끼워서 소비자에게 파는 방법을 못마땅해한다. 그것을 비꼬는 말로 <MS세금>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보면 비록 초창기 미국인에 불과하지만 빌 게이츠에게 그럴 이유를 제공했던 사람 역시 소비자였다. MS가 무조건 소비자를 무시하고 기업만 상대하는 전략을 세운 게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를 만들 기 전 스티브 잡스는 비디오 게임기 아타리 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그는 사장이 보여준 비디오 게임에 의견과 개선점을 지적해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블록깨기 비디오 게임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비디오 게임기는 원래부터 기업에게 파는 물건이 아니다. 소비자에게, 그것도 주로 어린 아이들에게 주로 팔게 된다. 게다가 비디오 게임기에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분리란 있을 수 없다. 둘은 항상 같이 가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게임기는 소프트웨어를 팔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초창기 게임기 업계를 보고 들은 스티브 잡스가 이후 애플의 방향을 그와 똑같이 정해나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묶여 있는 게임기 같은 구조에서는 불법복사가 문제되기 어렵다. 오로지 사람들이 보다 재미있고 쉽게 즐기는 것만이 목표가 된다. 그것만 만족시키면 둘다 저절로 팔려나간다.

즉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와 같은 경험을 할 이유가 없었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잡스에게 있어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소프트웨어 하나만을 고집하며 단독 상품으로 열심히 팔려고 하는 행위를 어리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MS와 애플, 한 가지 경험이 역사를 움직였다.

정리하자면 결국 빌 게이츠는 베이직을 만들던 때의 쓰라린 경험으로 인해 기업용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했고, 스티브 잡스는 게임기 회사에 근무하던 때의 경험으로 인해 쉬운 사용법으로 소비자를 직접 상대한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했다. 결국 두 사람이 겪은 단 한순간의 경험이 세계 컴퓨터계의 역사를 만든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애플과 MS라는 양대 기업의 최고 전략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후 치열했던 두 사람과 양 회사의 이야기들은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서 말해보겠다.

더 좋은 글을 원하시면 아래쪽 추천 버튼을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