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밑이 어둡다> 라는 말이 있다. 바로 옆에 있는 것을 못 본다는 말인데 오늘날 IT업계에서는 이와 비슷하게도 너무도 당연한 것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한다.

근래에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 가운데 한 가지가 있다.
영국의 한 중학생이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이 내노라하는 대기업의 CEO들을 감탄시켰다는 이야기였다.

대체 무슨 내용이었을까? 그 중학생이 아이큐 2백을 넘는 천재소년이기라도 했던 걸까? 호기심을 가지고 봤지만 의외로 그 내용은 간단했다.
현대의 젊은 소비자들은 결코 대기업이 생각하는 것처럼 온라인 음악을 사서 듣고 주어지는 것을 소비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검색해서 알아내며 인터넷에 퍼진 짧은 스트리밍이나 공짜버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이게 뭐가 신기해서? 당연한 게 아닌가? 그런데 그걸 바로 대기업의 똑똑한 회장님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이미 나이가 들어서 틴에이저가 아니라고 해도 집에 십대 청소년 아들 하나 없었단 말인가?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지도 않나?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이게 의외로 인간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는 사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야심차게 내놓은 상품들이 정작 그 제품을 사야할 소비자에게 어떤 눈으로 비치는지 모르는 것이다. 수십억 이상을 마케팅과 홍보, 고객심리 파악에 퍼부으면서도 말이다.


애플에서 내놓은 아이패드를 둘러싸고 그동안 과연 넷북 시장을 잠식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많은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대략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았다.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기업일수록, 또한 권위를 자랑하는 전문가일수록 더욱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들이 내가 위에서 든 중학생의 프레젠테이션에 놀라는 대기업 회장님 같은 상황은 아닐까?

5월 26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온라인 시장조사업체인 리트레보의 설문조사를 인용해 넷북을 구입하려던 미국 소비자의 30%가 넷북 대신 아이패드를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리트레보는 1천명 이상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0%가 "넷북 대신 아이패드를 샀다"고 응답했다. 나머지 30%는 "원하는 대로 넷북을 샀다"고 응답했고, 40% 가량은 "넷북 구입을 보류했으나 결국 넷북을 샀다"고"답했다.




위의 기사는 아이패드가 실제로 넷북의 수요자를 잠식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어째서일까? 전문가들이 그렇게도 여러가지 이유를 들며 넷북이 아이패드보다 앞서 있다고 말했음에도. 그들의 의견은 대체로 몇 가지 사실로 집약된다.

1. 아이패드는 제한된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다. 터치스크린만 지원할 뿐, 가상 키보드는 너무 불편하다. 외장키보드로는 휴대성에 문제가 있으며 마우스를 지원하지 않는다.

2. 아이패드는 완벽한 웹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 것을 포함해 사파리 만을 제대고 지원할 뿐 아직은 다양한 웹 브라우저의 기능들을 지원하지 않는다.


3. 아이패드는 폐쇄적이며 사양이 너무 낮다. 내부  저장공간은 최대가 64GB일 뿐이며, USB를 지원하지도 않는다. 또한 외부영상 출력이나 각종 하드웨어적 지원이 미비하다.


4. 아이패드에는 넷북에서 돌아가는 킬러 소프트웨어가 없다. MS오피스를 비롯해 포토샵 등 필수적인 소프트웨어가 없다.


위의 사항들은 얼핏 들으면 누구라도 아, 그래서 결국 아이패드로 넷북을 대체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깊숙히 핵심을 생각해보면 전혀 이유가 될 수 없다.




우리가 넷북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더 나아가 PC를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건 단지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손에 쥐며 쾌감을 느끼고자하는 목적이 아니다. 화려하고 넓은 LED디스플레이를 보거나, 케이스 안의 최신 CPU가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이건 모두가 수단이다.

우리가 PC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 감상이든, 문서작성이든, 웹검색이든지 말이다. 넷북이든 PC든 단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른바 전문가들의 분석은 목적을 지향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놓치고 있다. 그들은 단지 넷북에만 있는 사양이나 하드웨어만으로 소비자가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원할 것이라 간주한다.

넷북이든 아이패드든 결국 중심은 그 안에 있는 소프트웨어다.  그 안의 하드웨어가 무엇이든 원하는 프로그램이 있기만 하면 된다.
인텔 CPU가 들었든 ARM CPU가 들었든 그게 대체 무슨 문제인가? 소비자들은 내가 지금 바로 하고 싶은 웹서핑이 얼마나 쾌적하게 이루어지는가, 문서작성은 얼마나 편리하게 되는가 그것만이 문제이다.
더구나 넷북이나 아이패드는 공통적으로 <휴대용>이란 컨셉이다. 들고 다니면서 간편하게 쓸 수 있으냐 없느냐도 결정적이다.




지금의 넷북 소비자는 넷북 자체를 사랑해서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들고 다니면서 가볍게 목적에 맞는 프로그램을 쓰려는 사용자들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이익마진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기존의 노트북 업계가 그런 제품을 오랫동안 내놓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것이 나오지 않자 이들은 그냥 기존 체제에 체념하고 만족했을 뿐이다. 그나마 싼 가격에 그럭저럭 성능을 제공해준 것이 넷북이다.
그런데 이런 넷북이란 껍데기를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문가와 언론이다.

아이패드는 넷북시장을 잠식하는 정도가 아니라 통째로 먹어치울 수도 있다.

다만 아이패드 역시 어플이 어디까지 나와주느냐가 문제다. 그 수준에 따라 아이패드는 넷북을 완전히 대체할 수도 있고, 그냥 언저리에서 머무를 수도 있다.

마우스? 그딴 거 없어도 된다.  가상 키보드의 불편함? 무선으로 연결되는 기기의 발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앱스토어가 사용자들의 욕구를 어디까지 만족시킬 것이냐이다.




터치로 가볍게 몇 번을 두드려 쉽게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사진 가공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포토샵이란 특정 회사의 제품은 필요없다. 가상키보드와 외부 키보드를 포함해 보다 편리하고도 빠르게 업무를 볼 수 있는 통합 업무프로그램만 나와준다면 굳이 <오피스>란 이름의 MS 소프트웨어는 필요없다.

인터넷 뱅킹이나 플래시 미지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앱이 그 모든 것을 촘촘히 커버해준다면 굳이 특정한 이름의 기능은 필요없다. 사용자들은 <목적>이 중요하지 <수단>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 아이패드를 넷북 대신 구입하는 이유는?

아이패드가 넷북으로 하고 싶어했던 <사용자의 목적>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이란 이런 면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사실만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넷북이란 하드웨어와 시장이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용자의 목적지향은 그들의 판단을 뛰어넘는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넷북의 원래 기원은 무엇일까? 저개발국을 위해 네그로폰테 교수가 적당히 저렴한 하드웨어와 무료 운영체제로 만들려는 교육용 PC계획이 시초다. 최초에는 이 넷북이 폭발적인 수요를 일으킬 거라 전문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너무도 시대에 뒤떨어지고 단지 싸기만 한 노트북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넷북은 그정도 사양으로도 족한 목적을 가진 수요자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사용자의 목적만 충족된다면 그 수단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증거다.

아이패드 안에 있는 앱이 이런 사용자의 목적지향을 이어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사용자들은 넷북을 통해 하고 싶어 했던 일이 아이패드로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아이패드를 넷북 대신 구입하고 있다.

목적을 충족시키며 전자책 이외의 영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아이패드와 이에 밀려날 지도 모를 넷북의 발전방향을 유심히 지켜보자.






이 글이 6월 첫날인 오늘자 다음뷰 메인에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