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다지 회사를 오래 다녀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오래해본 사람들 대부분에게 만일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면 어떨까?

회사에서 당신이 편하게 일하면서 가장 빠르게 승진하는 방법은?

여기서 만일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다.> 라든가, <창의력을 발휘해 회사에 보탬이 된다.> 같은 내용을 대답한다면 그 회사는 참으로 훌륭한 회사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솔직하게 적어내는 대답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직장상사의 마음에 쏙 들게 행동한다.>

뭐, 다 좋다. 노골적으로 무슨 아부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상사의 취향이나 비젼, 목표를 파악하고 그것에 맞춰나간다면 어떤 회사에서든 당신은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구축한 수많은 유료 앱 사용자를 노리며 그 생태계에서 대박을 노리는 많은 개발자가 있다. 그들은 이 시간에도 어떤 앱을 내놓으면 성공할 것인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굳이 엔지니어도 아니고, 프로그래머도 아닌 내가 어떤 비결을 소개한다는 게 우습긴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이폰을 만들고 앱이란 생태계를 만든 스티브 잡스 역시 엔지니어도 아니며 프로그램이라고는 단 한 줄도 짜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잡스의 생각에 대해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주제넘은 행동은 아닐 것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앱을 만들면서 당신이 가장 의식해야 할 사람은? 바로 애플의 최정상에 군림하고 있는 직장상사 스티브 잡스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폰을 만들고 그 유저 인터페이스를 구축한 잡스의 비젼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미래를 보며 보다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는 걸 모두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런 잡스의 취향에 맞추며, 감탄할 만한 앱을 만든다면, 그것이 곧 그 앱의 성공확률을 높여주지 않을까?




스티브 잡스가 어떤 앱을 좋아할 지 내가 개인적으로 전화나 메일을 통해서 물어본 바는 없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잡스와 스스럼없이 대화할 만큼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 또한 잡스 역시 극동의 작은 반도에 사는 이름없는 나 같은 IT블로거에게 일일히 대답해줄 만큼 한가한 몸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잡스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고 있다. 그가 리사부터 매킨토시, NEXT와 아이맥,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추구하는 지 스스로 명확히 밝혔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모든 소프트웨어가 객체지향형 기술로 만들어질것이다! 당신같은 기자나 전문가들은 몇년이 걸릴 것이고 누가 승자가 될 것이며란 이야기를 할것이다. 하지만 제정신 박힌 사람들이라면 객체지향형 프로그램이 세상을 지배할 것에 의문달지 않는다.

내가 세탁 전문가라고하자. 그럼 당신은 나에게 더러운 옷을 주면서 세탁하라고 할것이다.
나는 샌프란시스코 어느 곳에 가장 뛰어난 세탁소가 있는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당신처럼 영어도 할 줄 알고 주머니에 돈도있다. 부탁을 받는 순간 나는 당신의 세탁물을 집어들고 택시를 타고 내가 아는 베스트 세탁소로 향해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당신 곁으로 돌아와 깨끗한 빨래를 내줄것이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수가없다. 세탁에 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프랑스어를 구사한다치자. 택시도 잡지 못하고 돈도없고 세탁비도 지불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탁에 관해 모든 열쇠를 쥐고 있다. 당신이 이 모든것을 알아야할 필요는 없다. 세탁 관련한 복잡다단한 정보는 내게 숨겨져있다. 바로 이런 상태에서 나는 당신과 교류한다. 그게 바로 객체지향형이다.




이것은 스티브 잡스가 무려 16년전인 1994년에 어떤 잡지 기자와 나눈 대화식 인터뷰의 일부다. 훨씬 긴 장문의 이 인터뷰는 잡스의 번뜩이는 예측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나중에 전문을 전부 소개하도록 하겠다.

잡스는 객체지향형 앱을 원한다. 그가 말하는 객체지향형이란 지난 세월 동안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숱한 화두가 되었던 주제다. 하지만 여태까지도 완벽히 구현된 경우가 별로 없다.
 
굳이 말하자면 아이폰의 운영체제나 매킨토시의 유저 인터페이스 자체가 바로 잡스가 말하는 객체지향형에 가깝다.

즉 실제로 하드웨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소프트웨어 안쪽에서 무슨 언어가 어떻게 실행되는지를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어야 한다. 사용자는 단지 그가 접하는 가장 간단하고도 효율적인 인터페이스를 통해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말로 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구현하려고 하면 매우 어렵다. 앱을 설계하는 사람이나, 코딩하는 엔지니어에게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 <너무 쉽게 하면 유치하다고 보지 않을까?> 라든가 <더 많은 선택스위치와 옵션기능을 넣어야만 활용도가 높고 좋은 앱이라고 평가받지 않을까?> 같은 고민 말이다. 그러나 잡스의 말에 담긴 의미를 잘 해석해보면 어떤 것이 그가 원하는 방향인지는 명확하다.

스티브 잡스가 감탄할 앱을 만드는 비결은? 바로 철저한 목적지향에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앱의 궁극적인 목적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쉽게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거기에 다루는 즐거움까지 첨가하면 금상첨화다.

예를 들어서 워드 프로세서라면 면 복잡한 서식이나 틀 같은 건 필요가 없다. 맞춤법 검사 기능 같은 것도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용량을 많이 차지하고 앱을 쓸데 없이 무겁게 만들 뿐이다. 워드 프로세서의 본래 기능인 글을 쓰고, 폰트를 바꾸며 그림과 간단한 도표를 삽입하는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불필요한 전자출판용 기능을 다 빼는 대신에 이런 기본기능을 가능한 한 쉽고 재미있게 다룰 수 있도록 하라.




기업체가 아닌 개인 사용자는 바로 그것을 원한다. 절제된 전문성 대신 간편함과 사용 목적, 즐거움에 충실하라. 그것이 잡스가 위에서 말한 객체지향이다.

고객이 세탁을 맡기면 가장 빠르고 훌륭하게 세탁을 해오는 게 중요하다. 괜히 드라이클리닝으로 할까요? 물세탁으로 할까요? 라든가 이 옷은 다림질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어떤 다림질이 좋을까요? 세탁비는 카드로 주시겠어요? 현금으로? 이런 걸 신경쓰게 만들면 실패라는 이야기다.
 
잡스가 감탄할 앱을 만드는 건 이렇듯 아이폰이란 제품과 그 인터페이스가 지향하는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비결이다. 어떻게 보면 비결이랄 것도 없는 것이 누구든 알고 있는 사실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 중요하다. 알면서도 실제로 이 점을 못지키는 앱들이 상당히 많다.

최종적인 목적을 지향하라. 중간에 있는 수단에 집착하지 마라. 무엇을 하든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쉽고 편함과 쓰는 즐거움 이다. 이 두 가지를 구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라.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도 감탄할 앱을 만들 비결이다.
 



부디 내 주제넘은(?) 충고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스티브 잡스를 감탄시킬 앱이 많이 나와주기 바란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잡스의 1994년 인터뷰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은 잠시만 기다려주기 바란다. 잡스의 미래비전을 분석하기 위해 그 전문을 천천히 분석한 포스팅을 조만간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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