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각각 따로 흘려듣기 쉬운 정보가 하나로 합쳐지며 전혀 다른 정보로 변하기도 한다. 흔히 이것을 정보의 통합적 판단이라 부른다. 요 며칠동안 애플에 관한 뉴스 몇 가지는 나에게 재미있는 판단을 하게 만들었다.

  첫번째로 한 가지 뉴스를 보자.

애플이 마침내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테크 기업 지존(至尊)의 자리에 올랐다. 5월 26일 뉴욕증시에서 애플의 시가총액은 2221억2000만달러로 MS의 2191억8000만달러를 눌렀다. 애플은 테크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1위, 전체 기업 가운데는 엑손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10년 전인 2000년, 빌 게이츠가 이끄는 MS의 시가총액이 5860억달러를 달릴 때, 불과 170억달러에 불과했던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30 대 1의 절대 격차를 따라잡았다.




이것은 굉장히 극적인 사건이다. 한때 누가 보기에도 미래가 없어 보였던 애플이 명실공히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선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두 회사의 입장은 정반대가 된 것일까? 이제부터 애플은 쭉 앞으로 달려서 모두를 따돌리며 사상 최고의 성공을 이루고, 반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점점 하강해서 몰락의 내리막길로 떨어질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직도 전세계 PC 운영체제의 90프로에 가까운 압도적 점유율을 가진 거대기업이다. 미래전망의 불투명함이 좀 걸리지만 이제부터라도 착실히 힘을 키우면 그 저력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두번째로 이 시점에서 바로 터져나온 루머를 보자.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CEO가 다음 달 7일 개최되는 애플의 개발자 행사인 WWDC 2010 행사에 참석한다.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중 스티브 발머가 등장하는 시간이 배정됐다. 그 내용은 아마도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는 MS 비주얼 스튜디오 2010의 등장이나 아이폰의 기본검색 엔진이 빙(Bing)으로 바뀐다는 발표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한낮 루머로 끝났다. 하지만 이것은 마이크로 소프트와 애플이 앞으로 점점 밀접하게 가까워질 거란 조짐으로 해석된다.

시가총액에서도 밀리고 명석한 리더였던 빌게이츠가 은퇴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입장이야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애플은 지금 연예계로 비유하자면 최고의 <핫 섹시걸>이다. 모든 남자가 그녀에게 말 한번 걸어보길 원하고, 데이트 한 번을 꿈꾼다.




그런데 애플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스티브 잡스 입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연합이 대체 어떤 매력이 있을까? 아무런 매력도 이익도 없다면 비록 루머라도 저런 이야기가 나돌 리가 없다. 현재 인기 최고인 섹시 아이돌이 부도나기 직전의 재벌 2세에게 아무런 매력도 느낄 리 없듯이 말이다.

누군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옛날 애플이 사망직전의 상태에 있을 무렵, 당시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사장은 "애플은 문을 닫고 돈을 주주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6년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MS로부터 1억50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 맥용 오피스를 다년간 공급해주기로 약속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좋은 사이로 유명한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손을 잡은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하물며 돈까지 투자하며 적극적으로 후원해준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넷스케이프 등 경쟁기업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망하게 만들던 MS답지 않은 따뜻한(?) 행동이었다.

하여간 덕분에 애플은 기사회생했다. 한편 스티브잡스는 열렬한 맥 사용자들 앞에서 이젠 무의미한 대립을 끝내고 협력해서 미래를 열어나가자고 말한다. 커다란 뒤편 스크린에 비쳐진 빌게이츠의 웃는 영상 아래서 말이다.





애플과 MS의 협력이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합리적이고도 신빙성이 가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무렵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전성기를 맞이한 MS는 바로 그 점으로 인해 미국 정부의 반독점법 표적이 되어 있었다.
웹브라우저에서 불공정 경쟁으로 패배한 넷스케이프의 고소와 리눅스를 전파하려는 자유소프트웨어 연합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MS는 이때 IT업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원흉이 되어 버렸다.

잘못하면 재판정에서 그대로 회사가 강제로 분할되어버리는 최악의 선택을 막기위해 빌게이츠는 어려운 처지에 있던 스티브 잡스를 도리어 살려주는 결단을 한 것이다.

이건 옛날 이야기고 그럼 지금의 상황은? 애플이 독점업체도 아닌데? 아이폰조차 스마트폰 시장의 30프로 정도 점유율인데다가 휴대폰 전체로 보면 5프로도 안된다. 전혀 독점기업이 될 수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짧았다. 애플은 이미 하나의 분야에서 거의 독점기업이었던 것이다.

세번째로 또 한가지의 뉴스를 보자.

뉴욕 타임즈에 의하면, 미 법무성은 뮤직 업계에서 애플의 역할에 대한 조사를 착수했다. 법무성 담당자들은 애플이 지배적인 시장 지위를 이용해 음반사들이 새로 출시되는 뮤직들을 다른 온라인 매장인 아마존에 독점적으로 액세스 하는 것을 거부하도록 종용한 최근의 탄원에 대해 질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NPD에 의하면, 애플은 미국 온라인 뮤직 판매에 있어서 69%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고, 아마존은 8%인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음악시장에서 애플은 현재만 해도 70프로에 육박한다. 향후 애플이 더 성장한다고 볼때 머지 않아 마치 운영체제 시장에서의 MS와도 비슷한 90프로에 달할 수도 있다. 그때쯤 되면 멜론이니 소리바다니 하는 국내 음악업체들도 다 망했겠지만 말이다.

애플이 바로 지금 반독점법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이미 플래시 문제로 인해 어도비가 소송을 제기했고, 프로그램 언어까지 규정한 약관이 불공정 약관이라는 목소리도 많다. 애플 역시 지금 최고 전성기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반독점법을 피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된다.
설령 미래에 경쟁업체가 될 곳일지라도 손을 잡고 힘을 키워줘야 한다. 애플로서는 그렇다고 구글을 키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구글과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그렇다면 모바일에서는 입지가 형편없이 약해져 버린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만만한 상대다.


위기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손을 잡을까? 답은 <분명히 그럴 것이다.> 이다. 하지만 이건 엄밀히 말해서 위기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을까? 라고 바꾸어도 좋다. 저승사자처럼 들이닥칠 미국 반독점법을 피하기 위해서 애플로서는 어떤 선택이라도 해야하기 때문이다. 옛날 전성기의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전성기를 맞은 애플도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인간은 어리석고,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만간 애플은 구글과 결별하고 검색엔진을 곧 빙으로 바꿀 것이다.
우리는 곧 애플이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의 모바일 세븐을 후원하는 모습을 보게 될 지 모르겠다. 더불어 X박스360과 아이폰이 연동되는 아주 이색적인 광경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이폰의 좋은 형제, 모바일세븐과 준HD? 참으로 어색하지만 정겨운 광경이 연출될 것 같다.  


열성적인 애플 매니아 혹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내키지 않는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협력만이 이 두 회사가 서로 윈윈 하는 길이다. 앞으로 마이크로 소프트와 애플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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