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업으로 각광받는 최고의 기업 애플이 내놓은 스마트폰인 아이폰. 그 뒤를 이어 잡스가 필생의 역작이라 말하며 선보인 아이패드는 제품의 성능과 디자인에서도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요즘 가장 흥미있는 이슈를 몰고 왔으니 바로 웹 세상에서 유명한 어도비사의 <플래시>다. 웹 페이지에서 동영상, 애니메이션, 광고를 볼 때 필수적인 이 가상스크립트 언어에 대해 스티브 잡스가 단호히 거부의 뜻을 밝힌 것이다.




최근에는 어도비사가 플래시를 자동변환으로 아이폰용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변환툴을 선보이자, 아이폰 운영체제 사용약관을 고쳐서까지 철저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플래시를 보고 싶은 사용자, 플래시를 이용한 아이폰 앱을 만들고 싶은 개발자 등이 뭉쳐서 격렬하게 잡스를 비난했다. 잡스는 따로 이유를 밝힌 해명문을 내놓았지만 결국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플래시 거부를 재확인했다.

해명문에서 잡스는 플래시가 1)웹표준이 아니고, 2)배터리 소모와 성능저하를 가져오며, 3)모바일 환경에 맞지 않으며, 4)어도비사가 문제 해결에 게으르다는 큰 이유를 밝혔다.




잡스의 지적은 어도비사가 과거 애플이 어려울 때 맥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고 윈도우편에 붙었다는 배신감만 빼면 대부분은 객관적이고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다.

잡스가 어도비 플래시를 거부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자기 사업 영역 안에 별도의 비지니스 모델을 가진 제 2인자를 키우지 않기 위해서다.

좀 쉬운 말로 하자면 <내가 만든 기계 안에서 내가 지정한 방식 이외의 방법으로 돈 벌려는 놈은 다 쫓아버리겠다.> 이런 뜻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의명분과 자잘한 지적은 그저 이런 속마음을 밝히지 않고 좋은 말로 상대를 쫓아버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어째서일까? 간단하다. 잡스는 과거에 IBM이 만든 컴퓨터에 올라타서 별도의 비지니스 모델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된 MS의 빌 게이츠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원래 하드웨어를 만들고 엄청난 마케팅을 한 IBM은 몰락했고, 그 안에서 기생해서 운영체제만 팔았던 MS가 최고의 기업이 되어버렸다.


잡스는 빌 게이츠의 방식을 맹 비난하면서 그건 소비자와 기업 모두를 속이는 일이며 자기 가치관과 어긋난다고 했다. 경쟁기업을 죽이는 방식도 싫었겠지만 남에게 몰래 숨어들어가서 슬쩍 돈을 버는 이런 비지니스 모델은 비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혹시나 해서 아이폰의 개발자 관련 약관을 찾아보았다. 역시 이곳에는 내가 예상한 대로 잡스가 노린 바가 잘 드러나 있었다. 잡스는 철저히 아이폰 운영체제 안에서 딱 두 개의 신분만을 부여했다. 애플이란 지배자와 그 나머지 사람들이다. 그 중간에서 집사가 되려고 하거나 소영주가 되려는 사람은 여지없이 약관 위반이 되어버린다.

즉 아이폰에서는 일체의 애뮬레이터나 가상머신을 만들 수 없다. 별도의 동영상이나 오디오 코덱, 장치 드라이버를 개발할 수 없다. 설사 개발하더라도 앱스토어를 통한 배포는 철저히 거부당한다고 적혀있다.




플래시는 공짜가 아니다.
어도비사는 소비자가 아닌 업체에게 이 사용료를 받으며, 개발자에게 개발 프로그램을 팔아서 수익을 얻는다. 또한 플래시는 플랫폼을 가리지 않는다. 리눅스든 윈도우든 맥이든 모바일이든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돌아가는 일종의 가상머신이다. 그러니 일단 이것에 의존하게 된 모든 업체로부터 돈을 받아낼 수 있다. 즉 MS가 만든 윈도우의 비지니스 모델과 너무도 닮았다.


며칠전 국내 이통사가 만들어 올린 앱 하나가 애플에서 거부당했다.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과금체제에서 신용카드만이 아닌 이통사 소액결제 시스템이 삽입되었다는 이유였다. 얼핏 사소한 헤프닝 같지만 바로 이것이다.
 
애플이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는 단 한 푼의 돈도 직접 해당업체와 소비자에게 오고 갈 수 없게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다시 말해 <절대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이용하는 제 2의 MS와 빌게이츠가 나오도록 하지 않겠다!>

이게 바로 잡스의 진짜 본심이다. 아마 사적인 감정과 공적인 잡스 비지니스 모델 방침이 합쳐진 것이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잡스는 스스로 밝힌 수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플래시가 완전히 공짜였으면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잡스가 웹 공개기술, 웹 표준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머지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모든 앱은 이용약관으로 철저히 틀어쥘 수 있지만 웹은 유일하게 잡스가 완전 장악할 수 없는 곳이다. 웹은 넓고 다른 모든 플랫폼과 통한다. 그곳을 이용해서 누군가 아이폰 안으로 들어와 제멋대로 잡스를 배제하고 돈을 받는 수익모델을 만드는 일은 잡스가 죽어도 허락할 수 없다.

공개기술, 표준은 돈을 받을 수 없다. 역으로 특정기업이 돈을 받거나 기술을 독점한다면 더이상 공개기술이나 표준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잡스가 부르짖는 공개와 표준은 모두 돈에 관련된 문제다. 사실 잡스의 본심으로는 돈이 문제지 표준이냐 공개이냐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때로는 참으로 재미있는 나라다. 이렇듯 칼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뿐이지 전쟁터나 다름없이 살벌한 기업세계에도 유머가 있고, 대의명분이 있으며, 스토리가 있다.

끝으로 어도비 사가 이에 대응해 어제부터 만든 캠페인 광고를 보자. 제목은 <우리는 애플을 사랑합니다.> , 물론 이 광고의 진짜 내용은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사랑합니다> 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하는 지는 각자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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