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애플 홈페이지]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사람들은 흔히 그 문제 하나에만 시선을 둔다. 그리고 해당되는 문제가 고쳐지면 곧바로 모든 게 해결됐다고 생각한다. 개인 사이의 문제라면 이런 방법도 나쁘지는 않다. 그렇지만 기업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다르다. 근본원인이 고쳐지지 않으면 비슷한 문제가 자꾸만 터져 나온다.

최근 애플 아이폰에 관련된 두 가지 문제점이 돌출됐다. 우선 하나는 아이폰을 최신 운영체제로 업데이트 했더니 배터리 의 80%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사건이다. 아이폰12, 13 사용자 사이에서 운영체제 iOS 15.4 업데이트 이후 급격한 배터리 방전을 겪었다는 불만이 쏟아진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iOS 15.4에 처음 적용된 기능이다. 애플워치가 없어도 마스크를 낀 채 안면인식으로 페이스ID 잠금해제 할 수 있는 기능인데 그 자체는 유익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된 현 상황에서 애플이 사용자들의 의견을 잘 받아들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능 업데이트를 실행한 직후에 배터리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소모된다는 불만이 국내외에서 보고됐다. IT전문매체인 GSM아레나에는 기본 앱만 사용했는데 두 시간 내 80%의 배터리가 소모됐다는 불만 사례까지 실렸다. 애플은 고객지원용 트위터 계정을 통해 iOS 업데이트 이후 48시간 내 배터리 소모가 급격히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해당 기능으로 인한 오류가 아니라 업데이트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변명이다.

실제로는 기능 자체에서 발생한 오류에 가까웠다.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애플은 지난 달 31일에 새로운 업데이트 버전 iOS 15.4.1을 배포했다. 이전 버전 배포 이후 약 2주 후에 바로 업데이트를 올린 것이다. 애플은 업데이트 소식과 함께 발표한 아이폰 관련 오류 수정 메시지에서 'iOS 15.4로 업데이트한 후에 배터리가 예기치 않게 빨리 소모될 수 있는 문제'라고 명시했다. 

애플은 대체로 기능 오류가 발생했을때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재빨리 업데이트로 수정한다. 그런 면에서 이 정도로 명시한 것은 오히려 상당히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고친 편에 속한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2주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잘못을 인정했다는 건 그만큼 사용자 정책에 있어서 고집스러운 면이 남아있다는 걸 보여 준다.

또 한가지 문제점도 있었다. 카카오 모빌리티가 승객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도입한 발신번호 표시제한 기능이 최근 일부 아이폰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iOS 15.4 배포 이후에 벌어졌기에 업데이트로 인한 기능 오류로 추정된다. 카카오T 앱에서 기사에게 전화하면 자동으로 발신번호 노출이 제한되는데 그 기능을 애플이 고려하지 않고 업데이트 기능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카카오 모빌리티는 공지를 통해 애플 정책에 따라 iOS 15.4 버전 이후 고객님의 전화번호를 표시하지 않는 안심통화 기능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애플의 2주 뒤 업데이트에서도 별도 조치나 설명은 없었다.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의 지역적 문제로 그냥 넘어가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번에 터진 이 두 가지 문제는 개별적으로는 별 것 아닌 해프닝처럼 볼 수 있다. 배터리 급방전은 업데이트로 2주 뒤에  수정됐다. 개인정보 논란은 통화녹음 기능의 예처럼 주로 미국법에 따라서 움직이는 애플 정책상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제의 근본을 보자. 이 모든 문제 뒤에는 사용자를 세심하게 생각해서 의견을 듣지 않는 애플의 일관된 사용자 정책이 숨어있다.

 

[출처: 애플 키노트]


스티브 잡스 때부터 애플은 '고객은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 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가 앞장서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다. 그런 면이 산업적인 혁신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전파수신이 잘 안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 '안테나 게이트'나 구형 아이폰의 배터리 성능을 강제로 떨어뜨리고 이 문제를 숨긴 '배터리 게이트' 같은 큰 사고도 만든다. 

산업 격변기에 성공을 만든 고객 철학이 안정기에도 반드시 성공적인 건 아니다. 애플 아이폰의 이번 배터리 급방전 사건을 보면서 애플의 사용자 정책이 보다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비자의 요구를 보다 귀담아 듣고 세심하게 그것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애플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보다 더 큰 문제가 계속 터질 것이다. 애플의 사용자 정책은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