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삼성 아메리카 홈페이지]


시장의 일반 원리를 보자. 소비자가 원하면서 그 값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어떤 제품이든 나와야 한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물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제 시장상황에서 늘 그런 원리가 지켜지는 건 아니다. 때로는 개별 기업의 제품전략이나 라이벌에 대한 경쟁 심리 때문에 정작 소비자의 요청이 무시되기도 한다. 

전세계 TV업계 안에서 이런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이제까지 삼성전자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다. TV기술의 핵심인 디스플레이 부품이 브라운관, LCD, LED 백라이트를 거쳐서 OLED로 가고 있는 건 이제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업계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세계에서 충분한 생산성을 가지고 TV용 대형 OLED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아직까지 LG 디스플레이가 유일하다. 그리고 LG전자는 TV제품에서 삼성전자의 강력한 라이벌이다.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간 OLED 동맹이 맺어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늦어도 올해 하반기 중에 LG디스플레이 OLED 패널을 탑재한 삼성 TV가 출시될 것으로 관측한다. 패널 공급 협상이 큰 틀에선 마무리 된 상황에서 미세 조율만 남았다. 이제는 삼성 경영진의 최종 결단만 남은 단계다. 또한 이 동맹은 한번 맺어지면 관련 소재, 부품, 장비를 포함한 대규모 협력사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품 공급 동맹은 글로벌 시장에서는 별로 새로울 게 없다. 한때 가전왕국이었던 일본만 하더라도 전성기에는 각자 자사 부품만 쓰고 타사 부품을 기피하는 등 견제가 심했다. 하지만 그것이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파편화를 불렀다. 고립된 규격, 비효율적 생산, 무리한 가격책정으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점점 하락세를 보이자 일본 업체끼리는 경쟁력 있는 부품을 공유하고 라인업을 재정비해 타사 제품을 판매대행해 주기도 하는 등 파격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삼성이 단지 라이벌 LG의 부품을 쓰기 싫다는 이유 하나로 OLED TV를 생산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 안타까운 일이었다.

[출처: 삼성 글로벌 홈페이지]


중요한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시대에 뒤진 기술은 아무리 개선해서 쓴다고 해도 곧 제품 경쟁력 저하를 가져온다. 한때 브라운관 기술에 집착했던 소니가 LCD 도입을 계속 미루다가 세계시장 1등 자리를 삼성전자에게 내준 사실은 매우 좋은 반면교사다. 삼성은 급성장하는 OLED TV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프리미엄 라인업을 확장해야만 미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공급받은 퀀텀닷(QD) OLED 패널을 탑재한 TV의 사전 판매를 개시했다. 하지만 이 제품은 부담스러운 높은 가격과 함께 원가 경쟁력이 낮다는 분석이 많다. 또한 삼성전자 TV 라인업 최상단에 있는 마이크로 LED TV와 미니 LED TV 역시 높은 가격으로 시장 확대에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여기에 삼성디스플레이는 올 6월경이면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 완전 철수할 예정이다. 이럴 경우 삼성전자는 중국이나 대만 LCD 업체에서 부품을 구입해야 하는데 국내 협력을 배제한 상태라면 협상력까지 약화될 게 뻔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국내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전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 OLED TV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LG전자를 가진 한국 소비자가 정작 두 회사의 경쟁심리 때문에 우수하고 다양한 제품을 선택할 기회를 빼앗기고 있었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2013년 TV용 OLED 패널을 세계 최초로 양산했는데 유독 삼성전자에 공급하지 않았다. 이후 9년여 만에 TV 시장 1위이자, 전자 경쟁사인 삼성전자에 패널을 공급하게 된 셈이다. LG전자의 OLED 부품 기술력과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기술력, 세련된 마케팅 능력이 결합된 제품은 그만큼 더 만족도 높은 TV제품이 될 것이다.   부품 생산량을 늘리게 되서 규모의 경제 혜택을 받는 LG, 최상급 제품 라인업을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는 삼성전자도 이익이다. 

이런 제품이 나오게 되면 그동안 과열 경쟁 때문에 벌어졌던 OLED 번인 논쟁도 잦아들 것이다. 부품 자체의 한계점에 가까운 약점을 파헤치는 논란보다는 그런 현상을 줄이려는 기술개발 쪽에 양사가 함께 주력하게 될 게 분명하다. 여기서 분명한 혜택을 얻는 건 바로 소비자다. 더 좋은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좋은 효과를 지닌 OLED 동맹이 이제야 이뤄졌다는 게 놀랍다. 가장 중요한 건 소비자다. 앞으로 TV 업계에서 소비자의 희망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제품을 출시하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