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미디어텍]



IT업계에서 삼성 계열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나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얼핏 삼성이 같은 그룹 계열사를 밀어줄 것 같다고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 노트북에 삼성 하드디스크가 반드시 들어있지 않던 시절이나 중국산 패널이 들어가는 삼성TV가 있었다. 완제품 업체가 부품을 고를 때는 철저히 성능과 이익을 보고 고르지 결코 계열사라서 선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이야기가 맞다면 원론적으로 보면 글로벌 시대와 소비자 혜택 측면에서 바람직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반대로 갈라파고스 생태계로 불리는 일본 업계를 보자. 샤프나 소니 등에서 지나치게 자사 패널이나 자사 부품 채택을 강행하다 막상 완제품 경쟁력까지 잃으면서 시장에서 외면당한 예가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 부분에서 소비자도 선택의 여지를 잃고 혜택을 박탈당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소식이 들린다.  최근 샘모바일은 삼성전자가 고성능 스마트폰에 자체개발한 엑시노스와 퀄컴 프로세서에 이어 대만 미디어텍의 프로세서도 탑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대만 업체인 미디어텍 프로세서를 내년 하반기 출시될 고성능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탑재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에서 테스트중인 해당 프로세서는 미디어텍에서 2공개한 고성능 스마트폰용 프로세서 '디멘시티9000'이다. 

일단 표면적으로 이 칩의 성능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세계 최초로 TSMC의 4나노 반도체 미세공정을 기반으로 생산되며 구동 성능과 그래픽 처리 성능에서 모두 우수한 수준이란 평가다. 샘모바일은 삼성전자 갤럭시S22에 탑재되는 최신 엑시노스 프로세서나 퀄컴 스냅드래곤 프로세서보다 미디어텍의 디멘시티9000이 더 앞선 성능을 보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일단 TSMC의 4나노 반도체공정이 그만큼 프로세서 성능과 전력효율을 높이는 데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또한 기즈차이나 보도에 따르면 미디어텍은 자사의 플래그십 프로세서 Dimensity 9000 시리즈에 대해 고성능에 따른 발열 걱정을 할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미디어텍 부사장은 퀄컴 스냅드래곤 888처럼 성능 대비 발열에서 실망스럽다고 말하며 이처럼 주장했다.  이미 시장 조사기관 보고서에 따르면 미디어텍은 지난해 퀄컴을 넘고 세계 스마트폰 프로세서 출하량 1위를 차지했다.

성능 면에서 어느 정도 보장된 상황에서 내년에 예상되는 전세계적인 반도체칩 부족현상을 생각한다면 삼성의 선택은 나쁘지 않다. 판매대수 대비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으로서는 수량이 일단 받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성능 개량이 늦어지는 자체 칩인 엑시노스, 구입조건도 까다롭고 로열티도 비싼 퀄컴 칩 외에 또다른 선택지를 고가 스마트폰에서 만드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미 삼성은 중저가 갤럭시 스마트폰에 미디어텍 프로세서 탑재비중을 늘리면서 출하량 증가 효과를 보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면에서 보면 어떨까. 삼성이 프리미엄 시장에서 경쟁자로 지목하는 애플은 핵심처리장치에 자체개발 칩 외에는 사용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아이폰은 저가모델에도 A시리즈를 꾸준히 탑재했으며 기능 때문에 부분적으로 퀄컴이나 인텔 모뎀칩을 써왔다. 그러면서도 성능을 잘 유지했기에 주어지는 브랜드 신뢰감은 매우 튼튼하다. 저가의 중국폰이나 자체 기술력이 부족해보이는 일본폰과 차별성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삼성이 그나마 애플을 기술력으로 쫓아가고 있다고 인식되는 부분이 자체칩인 엑시노스 채택이었다. 퀄컴과 엑시노스를 같은 모델에 채택하면서도 큰 편차없이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삼성만이 가진 능력이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중저가 칩 라인에 주로 채택되는 대만 미디어텍 칩을 고가 스마트폰에 채택하게 되면 이런 브랜드 이미지가 하락한다. 중국산 중가폰과 차별성이 점점 옅어지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 과연 미디어텍 칩이 안정적으로 고성능을 내줄 것인지 검증도 되지 않은 상황이다. CPU시장의 경험에서 보면 이런 처리장치는 실제로 시장에 제품이 나오고 객관적인 사용자 벤치마크가 다방면에서 실시되야 정확한 성능을 알 수 있다. 제조업체의 마케팅 발언이나 몇몇 벤치마크 회사의 측정결과만 믿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이런 삼성 고가 스마트폰에 대만칩 채용 시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테스트 단계에만 머물고 실제로는 탑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서두에 적었듯이 회사를 가리지 않는 삼성의 합리적 선택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삼성이 자체칩을 좀더 키워야 애플에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회사 칩에 고가 라인까지 맡긴 삼성 폰은 점점 중국폰과 차별성이 적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삼성폰을 굳이 왜 더 비싸게 사야 할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앞서서 뛰고 있는 애플을 따라 잡기 위해서 삼성이 보다 자체 기술력에 투자를 하고 향상된 제품성능을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