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T]

며칠전, 집에서 업무를 보던 중 갑자기 인터넷 접속이 끊어졌다. 고장나던 공유기를 리셋해 보았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일로 생각했다. 아파트나 인근에서 선로공사라도 하게되면 몇 분 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시에 휴대폰 모바일 데이터도 끊어졌다. 유무선망 모두 KT망을 쓰고 있었는데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그때부터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게 나를 포함한 국지적인 장애인지 아닌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농담삼아 '전쟁이라도 났나?' 라고 생각하고 TV를 켰지만 아무런 속보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10월 25일 오전 11시 20분쯤부터 KT를 비롯한 주요통신사의 인터넷 유무선망이 먹통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전국 곳곳의 가입자들이 인터넷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이 때문에 회사 업무는 물론이고 카드 결제를 하는 식당, 주식거래, 비대면 수업 등 네트워크를 사용해야 하는 모든 분야에서는 1시간 이상 일상이 마비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가입자는 일반 전화통화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선통신망에서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무선망에서도 3대 이통사인 KT의 통신장애는 우리 생활에 심각한 피해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후 KT측의 대응자세다. 우선 KT측은 이후 사고 원인을 KT 네트워크에 펼쳐진 대규모 디도스 공격이라 밝혔다. 

 

몇년전부터 흔하게 보던 패턴이다. 대규모 장애나 해킹이 발생하면 무조건 외부의 악의적인 공격 때문이라 발표하고 보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가상 범인은 거의 ‘북한’이다. 북한해커가 공격했다고 하면 납득도 쉽게 되고 자사에 돌아갈 비난도 줄일 수 있고 보상책임도 회피하기 쉽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적국인 북한이 한 짓이니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태라는 핑계다. 

 

실제로 야놀자 해킹 등 개인정보 유출 등에서 이런 해명이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일을 했다고 인정하지도 않았고 실제 아이피 주소는 중국이며 그것도 우회해서 들어왔기에 범인은 전세계 누구든 될 수 있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그냥 무조건 북한이라고 하는 거 아니냐?’라는 의심섞인 목소리도 나온 적이 있다. 

 

경찰 조사결과 범죄 혐의점은 없었다. KT 측은 라우팅(네트워크 경로설정) 오류라고 사고원인을 정정했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외부공격이라고 했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이렇게 되자 피해보상이 중요 쟁점이 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북한 소행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그게 아니면 통신사 과실이 되니 피해보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 유무선 통신망에서 동시에 발생했기에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분명히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피해보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KT 이용약관에 연속 3시간 이상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면 불편을 겪은 시간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 주도록 돼 있는데 이번 장애는 약 1시간 25분 만에 끝났다. 또한 식당 결제 시스템이 멈추고, 주식 거래를 못하고, 중요한 업무 처리를 방해받았더라도 인과관계와 피해 정도를 이용자들이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피해보상에 힘쓰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방통위측은 “이용자 보호 주무기관으로 KT가 국민들께서 입은 불편과 다양한 피해에 대해 면밀하게 파악해 적절한 배상 등 이용자 보호대책이 검토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11월 24일에도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가 있었다. 해당 건물 지하에서 불이나면서 서울 한강 이북 서부 지역 일대의 통신이 마비된 사태다. 국지적인 사태였음에도 총 보상액은 400억원 규모였다. 그런데 또한 2년 만에 전국적인 마비사태가 터졌다. 전체피해액도 훨씬 크고 피해접수조차 한꺼번에 이뤄지기 어렵다.

 

하지만 과연 이번 피해가 제대로 보상될까? 또한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잘 될까? 늘 그렇듯 사고 후에는 자세를 낮추고 더욱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조치는 말이 해주는 게 아니다. 실제로 설비에 투자하고 피해보상 예산을 책정해서 집행해야 한다. 

 

결국은 돈이 말해준다. KT측이 앞으로 얼마나 보안과 성능 향상을 위한 장비를 구매해서 설치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또한 시간이 지나 이 사태가 잊혀질 때에도 얼마나 성실하게 피해접수를 하고 보상을 해주려 노력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런 노력이 제대로 이뤄져야만 KT는 스스로 주장하는 대로 ‘국민통신사’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