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국 심사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를 버리는 정부 정책?
산업계의 흐름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정부가 산업활성화를 위해 기업인을 면담한다. 그 자리에서 요청사항을 물어보면 대체로 산업계는 과도한 규제를 풀어달라고 한다. 그래서 정부는 과감한 규제완화를 실행한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규제완화 때문에 생긴 심각한 피해사례가 나타난다.
몇 년전 필자가 과기부(혹은 미래창조부)에 출입하던 때 IT 업계에서 제기된 핵심요청은 빅데이터 이용에 대한 규제완화였다. 당시 국내 개인정보 보호법이 과도해서 생체정보, 지리정보, 얼굴 정보 등을 분석하고 새로운 산업기술을 만드는 데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정부는 새로운 법안을 마련해서 빅데이터 이용을 위해 정보이용법을 개정했다.
한동안은 순조롭게 빅데이터 이용이 이뤄지는 듯 했다. 공공데이터와 API 공개 등을 통해 정부는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 사태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마스크 앱, 잔여 백신 앱 등을 개발하도록 민간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게 좋은 사례다. 하지만 이런 장점 뒤에서 개인정보보호 침해의 위험에 점점 둔감해지는 단점이 나타나고 있다.
10월 21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출입국 심사에 쓸 인공지능(AI)을 개발하겠다는 명분으로 약 1억 7천만건의 내외국인 얼굴 사진을 민간 업체에 넘겼다고 한다. 생체정보 가운데서도 개인의 얼굴에 관련된 이미지는 처리 규정이 까다로운 민감 정보인데 이걸 당사자 동의 없이 민간에 제공한 것이다.
또한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카메라 수백대를 설치해 생체정보를 추가로 축적하고 있다고 한다. 민간 업체로 넘어가는 안면 이미지 정보량이 계속 증가한다는 의미다. 사업목적은 022년까지 추진하는 인공지능 식별추적시스템 구축 사업이다. 여권 스캔 등 없는 출입국자 신원 식별과 위험 상황 사전 탐지 등 출입국심사를 고도화하겠다는 설명이다.
목적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수단이 문제다. 안면 이미지 같은 민감한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처리하기 위해서는 정보 주체에게 별도로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부처인 법무부와 과기부가 이 정보를 주인 동의 없이 사용했다. 법무부는 정당한 출입국 정보축적 방법이라는 입장이지만 시민단체에서는 심각한 정보인권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어쩌면 이런 논란은 필연적인지도 모른다. 산업계나 정부의 목소리처럼 경쟁국이 앞서서 보호를 허물고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규제를 고집하다 뒤쳐질 수도 있다. 중국 등에서는 인권을 덜 존중하기에 오히려 빅데이터 선진국이 되고 있다는 농담 같은 말도 상당한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빅데이터를 발전시켜 우리가 기술에서 앞서 나가고, 기업이 돈을 벌고, 삶이 좀 편해진다고 해도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기술이든 돈이든 삶이든 우리 개개인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수단이다.
내 개인정보가 어디서 누군가에게 악용될 수 있고, 사적인 영역까지 정부가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공포가 사회에 퍼져나간다면? 그런 사회 속에서 돈을 얼마 더 벌고 약간 더 편한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행복할까?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는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최소한 개인이 자기의 민감한 정보 정도는 누가 어떻게 이용할 지 알고 동의하에 사용할 수 있는 결정권을 줘야 한다. 인공지능보다는 인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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