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읽은 위인전 가운데 특별히 감명깊은 구절이 있는가 하면, 아닌 구절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와 관련된 일화 가운데 유명한 달걀 세우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콜럼버스가 돌아와서 업적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헐뜯었다.



대부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을 해놓고는 콜럼버스가 잘난척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콜롬버스는 달걀을 하나 놓고는 이것을 세울 수 있겠냐고 묻는다. 쉬워 보였지만 아무도 달걀을 있는 그대로 세우지 못했다. 그러자 콜롬버스는 달걀을 탁 쳐서 깨뜨리고는 그 단면을 이용해서 세웠다. 그게 뭐가 신기하냐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대중에게 그는 대답했다. 이렇게 알면 누구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최초에 개척하는 것이 바로 중요한 것이라고.

IT기업에 있어서 중요한 혁신을 이룩하는 데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사실 혁신을 이룩하는 기획자나 엔지니어라고 해도 신이 아니고 인간이다. 할 수 있는 발상이란 이미 누군가 해본 적 있는 상상이다. 적용하는 기술 역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조합하면 나올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이다. 그렇지만 최초에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고 끈기있게 완성시키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혁신의 공로를 차지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나눈다.

얼마전 나는 애플의 미래전략, 통합칩의 개발 방향은? 이란 주제를 논했었다.




여기서 나는 애플이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결국 운영체제를 하나로 통합하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또한 현재처럼 맥과 아이폰으로 분할된 제품군도 결국은 훨씬 단순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누군가 댓글을 통해 익명으로 이렇게 반박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글 쓴 분은 시스템이나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신듯.

OSX나 iOS 전부 freeBSD를 고쳐쓰는 변종 유닉스인데 왜 iOS는 멀티태스킹을 완전히

배제한 절름발이로 만들어놨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내야 통합OS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댓글이다. 그냥 악플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나는 대학 전공이 정보통신공학이며 꾸준히 IT지식을 쌓아왔다. 시스템이나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당연히 있으며 관련한 정보도 상당히 깊은 개론 수준을 이해하고 있다. 부족한 것이라면 현직 프로그래머는 아니니까 실무 지식이 좀 부족할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저 리플을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흔히 관련업계에 종사하면서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엔지니어, 혹은 기획자들의 ‘그릇된 자부심’ 이다.



IT기술의 혁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 만들어낼까?

내가 생각하기에 혁신을 만드는 사람에는 크게 두 가지 분류가 있다. 기술을 어느 정도 알지만 실무와는 별 관계가 없는 기획자, 혹은 직업과 관련없이 그 일을 정말로 좋아하고 꿈을 가진 엔지니어다.


1. 기획자의 예를 들어보자. 모두가 알다시피 맥과 아이폰, 아이패드를 만든 스티브 잡스는 엔지니어가 아니다. 프로그래머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문 디자이너도 아니다. 컴퓨터 기술에 관심은 있지만 각 분야만으로 따지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꿈을 가지고 끈기있게 추진하는 기획자라고 볼 수 있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그는 불가능과 싸웠다. 워크스테이션에서나 제대로 돌아가는 그래픽 운영체제를 미약한 성능의 개인용 컴퓨터에 넣기 위해 팀을 이끌고 용기를 북돋고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하드웨어 엔지니어 도 아니었고 운영체제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었지만 매킨토시 탄생이란 위대한 업적을 만들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들 때도 그런 식으로 기술적 한계를 극복했다. 그 과정에서 엔지니어가 그건 안된다고 하든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안했겠는가? 하지만 그는 끝내 추진해서 성공시켰다. 일단 성공시키고 나면 그걸 불가능하다고 비웃는 엔지니어는 아무도 없다.


2. 엔지니어의 예를 들어보자. 안드로이드폰에 쓰이는 리눅스 커널을 만든 리누스 토발스가 있다. 그는 회사에 고용되지도 않았고 직업으로 프로그래밍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재미있어서 컴퓨터를 사서 개인적 목적을 위해 즐겁게 프로그래밍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저명한 해커집단에서조차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새로운 운영체제 커널을 만들었다.



그에게 만일 누군가 당신은 운영체제의 기본도 모른다거나 헛된 짓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면? 성공하기 전에는 모두가 맞는 말일 것이다. 리누스는 그저 아마추어 프로그래머였고 독학으로 배워서 집에서 혼자 운영체제를 만들려고 시도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서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성공한 다음에는 그를 존경할 지언정 어떤 엔지니어도 비난하지 못했다.

굳이 애플의 유명한 광고카피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들 것도 없다. 세상은 본래 그렇게 꿈이나 즐거움을 위해 남들이 비웃고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에 도전하는 사람이 만든다. 또한 그런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 역시 처음에는 늘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아마도 저 댓글을 쓴 사람은 그런 깊은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단지 그는 직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꿈이 없이 그저 하루하루 긴 코딩을 공부하고 완성하는 엔지니어일 뿐이다. 그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비난하고자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다만 한가지는 확실히 말해두고 싶다. 우리가 그렇게 열광하는 IT업계의 혁신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누군가 미래를 예측하면 그저 비웃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것을 향해 꿈을 가지고 용감히 돌진하는 사람인가? 대답은 아마도 각자의 마음속에 나와 있을 것이다.


(원문참조:  한겨레 오피니언 훅 - 안병도의 IT뒤집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