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후 전범국인 독일 국민은 많은 질책을 받았다. 나치가 나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 히틀러 치하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냥 힘없는 국민이 무슨 죄냐? 라는 반발도 있었지만 국제사회는 단호했다.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면 어째서 저항하지 않았느냐? 국민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저항조차 하지 않은 건 동조했다는 의미다. 라는 것이다.



미국이 때로는 얄미운 것은 이런 독일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물론 옳은 행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량살상무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어떻게든 전쟁을 벌인 이라크 전쟁만 해도 그렇다. 부시는 전쟁을 하고 싶었고 국민 일부는 이에 적극찬성했다. 그렇지만 또 한편에서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그 전쟁을 반대했다. 그것도 매우 적극적으로 반전운동을 하고, 시위를 했으며, 심지어는 부시가 재선되자 미안하다고 외국에 사과까지 했다. 

이런 걸 두고 내가 아는 분은 이렇게 말한다. '결국 미국은 전쟁을 해서 이득을 취했다. 또한 격렬한 반전 여론을 통해 결코 자기들이 묵인하지 않은 좋은 나라라는 이미지도 주었다. 좋은 건 다 가지려고 해요.' 라고 말이다.

애플이 미국내의 폭스콘 관련 보도에 이어 소비자 청원운동까지 일어나자 폭스콘 실태조사에 나섰다. (출처)



애플이 폭스콘 공장 등 납품업체 근로환경에 대한 외부기관 실태조사에 착수하는 등 최근 거세지고 있는 비난여론 확산을 차단하고 나섰다. 애플은 13일(현지시간) 공정노동위원회(Fair Labor Association)가 폭스콘 공장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FLA는 지난 1999년 설립된 비영리 노동 권리 조직. 애플은 지난달 납품업체의 열악한 근로환경 논란이 거세지면서 IT업체로는 처음으로 FLA에 가입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애플이 FLA 요청,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애플은 공식자료를 통해 FLA 오렛 반 히어든 회장이 이끄는 조사팀이 이날 오전 '폭스콘'으로 유명한 중국 심천 시설에 대한 첫 조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애플 팀 쿡 CEO는 "우리는 노동자들이 어디서나 안전하고 공정한 작업환경에서 근무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 FLA에 이번 조사를 요청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FLA는 중국에 이어 대만 콴타(Quanta), 패가트론(Pegatron) 생산시설에 대해서도 같은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납품업체 생산시설의 90%가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는 게 애플 측 설명이다.

팀 쿡 CEO는 "이번 조사는 규모 등에서 전자산업에서 전례없이 대대적으로 진행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애플의 이번 조사는 최근들어 애플 납품업체의 열악한 근로환경이 공개되면서 비난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 '윤리적인 아이폰(ethical iPhone)'을 기치로 애플 공장의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한 온라인 청원운동은 보름 새 25만명이 참여했다. 여기에 애플 스토어 항의 방문이 이어지는 등 '反 애플' 분위기로 확산되는 형국이었다.

이는 오는 23일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번 주총에 관련 안건이 다뤄지지 않을 것으로 확인되면서 비난 여론도 거세졌다. 결국 애플이 전면 실태조사 착수라는 대응책을 앞세워 '反 애플' 정서의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나선 모양새다.

이 뉴스를 보면서 문득 이라크 전쟁 당시를 떠올렸다. 애플과 미국 소비자의 이런 대응도 지극히 미국적이란 생각이 든다. 좋은 건 다 가지려고 드는 것이다.



애플은 그 혁신적인 제품에도 불구하고 사실 폭스콘 문제를 제대로 털고 가지 않으면 역사적으로 하나의 오점을 남기게 되어 있다. 사실 다른 기업과 비슷한 정도일 수도 있지만, 애플이란 기업의 이미지가 워낙 좋았다는 점을 감안해보자. 작은 오점이라도 애플의 역사에서는 매우 크게 보일 게 분명하다. 또한 미국 기업의 역사에도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애플은 여전히 폭스콘을 통해 많은 이득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 소비자는 결코 자기들이 이런 착취를 방관하지 않았다는 '좋은 역할'도 하고 있다. 병주고 약준다는 비유까지는 가혹하다고 해도 미국이 어째서 미국일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상징이다. 애플 또한 이런 소비자의 요구에 대해 비교적 빠르게 반응했다. 애플 역시 미국 소비자의 여론을 무시하는 나쁜 기업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애플의 폭스콘 실태 조사, 어떤 의미일까?

그렇다. 세상에는 '나쁜 남자' 처럼 나쁜 놈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이득은 챙기고 싶어도 이미지를 일부러 나쁘게 가져가고 싶은 기업은 없다. 경제계가 무슨 '복면 악역' 이 환영받는 프로레슬링계도 아니니까 말이다. 애플 역시 악역이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폭스콘은 조사받고 아마도 곧 결과가 나와서 시정조치에 들어갈 것이다.

그럼 여기서 문제를 하나 제기해보자. 그럼 대체 누가 나쁜 것인가? 애플은 악역을 맡길 거부했다. 미국인과 미국 소비자도 이런 청원 운동을 통해 자기들이 선량함을 강조했다. 그런 남은 건 애플에게 이런 운동조차 하지 않고 그저 열광해서 제품을 사준 다른 외국 소비자인가? 아니면 말없이 애플의 요구에 응해 성실히 제품을 만들었던 폭스콘인가? 


위의 '좋은 미국'이 필연적으로 부르는 질문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전체가 나쁘지는 않았다면 대체 분노를 돌리고 책임을 지울 '악당'은 어디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전쟁이 벌어지고 무수한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지만 누구도 도덕적으로 그 책임을 다 지려고 하지 않는다. 애플의 문제도 이제 마찬가지 국면에 들어갔다. 누구도 책임을 다 지는 상황이 아니다.

애플과 미국 모두가 악당이 되길 거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계산을 통해서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미국은 나쁜 역할과 좋은 역할은 혼자서 다 하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애플의 폭스콘 실태 조사가 보여주는 의미일 것이다.

P.S : 또다시 감기몸살 중입니다. 추위에 약한 체질 덕분에 요새 감기에 자주 걸리네요. 환절기라서 그런 지도 모르고요.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