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4S를 둘러싸고 스티브 잡스의 유작이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있다. 그때문일까. 발표초기의 실망스러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아이폰4S는 다시 한번 기록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 또 한번 성공한 것이다. 그것이 아이폰4S 자체가 본래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젠 그 정도의 혁신조차도 자칫 애플에서 볼 수 없을 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인지는 모른다. 단지 교체주기를 맞은 많은 아이폰3GS이전 사용자들의 수요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또 하나 스티브 잡스의 유작이 있다. 바로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다. 작년 연말부터 세계 서점가를 강타한 이 전기는 한국에도 바로 들어왔다. 그래서 한때는 나꼼수 김어준 총수의 닥치고 정치를 밀치고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만큼 단기간에 많이 팔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제품이 판매될 때마다 후속적인 문화현상과 화제를 일으켰던 애플제품과는 달리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둘러싸고는 반응이 별로 없다. 산 사람은 분명 많다. 아마도 샀으니 대부분 읽기는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읽은 뒤에 별로 적극적인 의견이나 화제가 공유되지 않는 것이다.

설마 책이 재미없어서일까? 그럴 리는 없다. 스티브 잡스란 사람의 생애는 매우 재미있는 일화로 가득 차 있으며 실리콘 밸리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미없는 따분한 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전문적인 컴퓨터 부분에서 내용이해가 조금 어려워서일까? 이건 좀 가능성이 있다. 컴퓨터나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누구나 잘 아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전기 내용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내용은 없다. 부분적으로는 있다고 해도 그냥 건너뛰고 읽으면 이해가 갈 내용이다.



본래 번역문제로 인해 교정쇄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더이상 참지 못한 나는 느지막하게 전기를 구입했다. 사실 재작년에 경제경영서 '애플을 벗기다'를 집필하느라 나는 스티브 잡스에 관한 많은 자료를 읽고 분석한 바 있다. 따라서 잡스의 직접 협력을 받은 데다가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의 전기를 쓴 아이작슨의 실력이 합쳐지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궁금했다.

전반적인 전기의 흐름은 시간순으로 하나씩 사건을 짚어가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이전에 나온 대표적인 잡스의 전기 '아이콘'과 비슷하다. 내용 역시 아이콘에 비해 그다지 많은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다. 대표적인 등장인물이나 사건에 있어서 동일했다. 



차이는 바로 시각이었다. 각 사건에 대한 다른 인물들의 시각과 함께 아이작슨이 직접 물었던 스티브 잡스의 심정, 의견들이 삽입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바로 이번 전기는 다른 책과 달랐다. 어릴 때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점에 대한 상처, 양부모에게 선택되었다는 점에 대한 자부심 이 두가지가 잡스 성격의 기저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전반적으로 이번 잡스 전기는 잘 쓰여진 책이다. 특히 아이작슨의 글솜씨는 나무랄 데가 거의 없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보면서도 주인공인 잡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돋보였다. 냉정하게 지켜 보다가도 결국 잡스의 손을 잡아주는 듯한 문장과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기계적인 중립이 아닌 진정한 전기작가의 관점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전기에서 나는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그것은 아이작슨의 글솜씨나 책의 구성과는 관계없는 단 하나의 사실에서 근거한다.

스티브 잡스 전기,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이번 전기는 스티브 잡스가 암 판정을 받은 뒤 자기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는 아이작슨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쓴 책이다. 그러기에 기분나쁘거나 직시하고 싶지 않은 점도 다뤘다. 또한 책이 완성되기 까지는 잡스 스스로가 내용을 보지도 않았을 정도이다.

부분적으로 잡스는 솔직했다. 첫번째 애인 사이에서 낳은 딸 리사를 외면한 사실에 대해서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또한 애플이 내놓은 컴퓨터 리사가 바로 딸의 이름을 따온 것이란 점을 공식인정하기도 했다. 이런 점은 그 점에 내놓은 아이콘 같은 책보다 훨씬 검증된 신뢰성을 이 책에 부여해 준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조차 잡스는 완전히 솔직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보자. 이제는 누구나 대충 아는 사실이 있다. 잡스가 아타리사에서 일할 때 친구인 워즈니악을 속였다는 사실이다. 그때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브레이크아웃이란 벽돌깨기 게임을 만들게 하면서 성공보수를 속이고 적은 돈만 주었다. 

사실 금액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둘은 정말로 친한 사이였고 신뢰를 가진 사이였다. 그럼에도 잡스가 이때 워즈니악을 속였다는 건 이미 당시 인물들간의 교차검증으로 인해 확실시된 사실이다. 하지만 잡스는 여전히 전기 안에서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이 일에 대해 묻자 그는 평소와 다르게 입을 다물고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얘기가 대체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잡스의 말이다. "늘 제가 받은 돈의 절반을 워즈에게 주었거든요. 그것이 제가 워즈와 관련해서 지금까지도 지켜오는 방식이거든요."

그러나 아이작슨은 다시 워즈니악에게 확인했고 워즈니악은 분명 적게 받은 것이라 확인시켜주었다. 워즈니악은 평소 지나칠 만큼 사람이 좋은 호인이었다. 늘 현실왜곡장을 펼치는 잡스와 비교해볼때 이렇게 의견이 엇갈리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 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아이작슨은 두 사람의 말을 교차해주는 것 이상의 평가는 넣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했다.

나는 여기서 굳이 잡스의 인간성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충분한 장점과 충분한 단점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다. 다만 내가 아쉬워하는 것은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서의 진솔한 기록인 전기라는 점이다. 그래서 의뢰하면서도 끝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잡스는 잡스고 그건 모두가 인정한다. 하지만 훗날 이 전기로만 그를 접할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것도 수십년이나 지난 일인데 말이다.

 

전세계적으로 혹은 한국에서 잡스의 전기가 많이 팔리고 읽혔지만 정작 그만큼 화제가 되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잡스는 끝까지도 자기 내면의 백퍼센트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치 잡스가 자신만만해하는 발표회장 키노트를 보듯 전기라는 마지막 키노트를 본 것이 아닐까. 상대적으로 가장 솔직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준 키노트 말이다.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잡스 전기에서 느끼는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