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경제, 사회, 정치 등 굉장히 많지만 특별히 가장 아쉬운 것을 꼽자면 건전한 놀이문화를 들 수 있다. 가족단위의 작은 파티부터, 신나는 축제가 자주 벌어지는 미국이나 유럽을 보고 있자면 일도 중요하지만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흔히 놀이라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녀교육이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다. 작게는 컴퓨터 게임부터 크게는 카니발이나 테마파크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유럽의 부활절 축제에는 성경에서 나오는 고귀한 가르침이 있으며, 미국의 디즈니랜드는 아이들에게 꿈과 모험심을 길러준다. 일본의 만화영화 아톰과 건담 시리즈는 로봇공학에까지 그 성과가 이어졌다. 이처럼 역사와 문화, 꿈이 담겨있는 놀이문화는 오히려 참고서 백권보다 가치있는 미래를 준다.


연천 전곡리라고 하면 보통 거기가 어디지? 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디선가 들어본 곳인데 처음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구석기 축제' 라는 말을 듣자 바로 떠올랐다. 이곳은 한국에서 구석기 문화 유물이 대거 출토된 곳이다. 옛날 국사책에서 읽은 곳이다.

그때는 단지 입시를 위한 역사지식의 한토막이었는데, 이제는 다르다. 연천에서는 이 곳을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로 만들어 축제를 열고 있다. 5월 4일부터 5월 8일까지 열릴 구석기 축제장인 이곳을 미리 가보았다.



구석기시대란 인류가 처음 도구를 만들기 위해 돌을 거칠게 깨뜨려서 사용하던 시기를 말한다. 아직 제대로 된 기술이 없었기에 돌을 연마한다든가 다듬어 쓰지도 못했다. 그저 깨뜨려서 그 날카로운 부분을 날로 써서 사냥을 하고 채집을 하며 먹고 살았다.

이런 구석기시대는 그래서 원시적이라는 인상 외에도 어쩐지 순박한 느낌을 준다. 옛날 헐리우드 영화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같은 걸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전곡리 선사유적지에 들어서면서 느낀 것도 바로 이런 순박하고 따스한 느낌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재미있는 캐릭터 동상이 맞아준다.


사실 유적지라는 건 그 자체로 놓고 보면 전혀 즐길 것이 없다. 특히 구석기유적이라면 동물뼈나 석기, 토기 정도가 고작인데 그걸로는 학술적 이용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상상력을 자극하면 유적지는 마법처럼 환상적인 테마파크로 변할 수 있다. 고롱이 미롱이 라는 캐릭터는 그런 면에서 유적지를 친숙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주었다.


곳곳에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이 동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단지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만이 아니다. 그냥 모습을 본뜨는 것이라면 어디든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바로 이곳에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보자. 몇 천년 , 몇 만년전의 시간으로 가면 바로 이것과 똑같은 광경으로 이 자리에 한민족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간여행의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구석기시대는 아직 농경이 시작되기 전이다. 사람들은 멧돼지 등의 짐승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고 나무열매를 따먹으며 살았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이 바로 도구인데 돌을 깨서 만든 주먹도끼가 쓰였다.


선사체험마을로 들어가보자. 안쪽의 전곡리 토층 전시관에서는 실제로 발굴된 석기와 그 유적 모습을 당시 모습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유적이다. 1978년에 발견되어 국가사적 제 268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렇게만 말하니 굉장히 딱딱한데 아이들에게는 이런 것보다는 더 재미있는 것이 있다.


상영관에서 볼 수 있는 3D 애니메이션에서는 디즈니 만화와도 같은 신나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연천'이란 이름을 가진 소년이 '주먹도끼' 캐릭터와 함께 벌이는 모험활극이다. 10분정도의 짧은 분량이지만 나름 액션과 스릴, 감동까지 두루 넣고 있는 게 흥미롭다. 그리고 그곳을 나온 뒤에는 바로 그 주인공인 주먹도끼군도 볼 수 있다. 3D영상이라 그냥 맨눈으로 보면 흔들린다.


구석기시대의 동물인 커다란 매머드와 각종 짐승, 움막집과 도구들이 넓은 곳에 퍼져있다. 사냥을 하는 모습, 고기를 자르는 모습 등이 입체적으로 전시되어 관객을 기다린다. 인류의 진화과정을 다룬 시리즈 조각이 눈길을 끈다.


볼거리는 이것만이 아니다. 야외에 있는 동상들이 주로 아이들을 위한 흥미거리 위주라면 진지하게 학술적인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공간도 있다. 바로 옆에 위치한 전곡 선사박물관이다. 미래에서 온 듯한 메탈 재질에다가 이무기 모양을 한 명품 디자인을 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곳을 포함한 이 시설 전체에 약 480억원이 투입되었다고 들었다.



안내해주시는 분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외계인의 UFO같은 미래적인 공간에는 실물과 완전히 닮은 각종 모형이 잘 배치되어 있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부터 네안데르탈인, 베이징원인으로 연결되는 각종 인류의 조상들이 늘어서서 나를 맞이한다.





전곡리 유적에서는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

프랑스 쌩따슐 유적에서 처음 확인되어 이름붙은 것이 아슐리안 형 주먹도끼다.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형식이다. 끝이 뾰족하거나 전체적으로 둥그스름한 타원형으로 석재 양쪽면을 떼어내 날을 세운 석기다. 사냥, 가죽이나 나무 손질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도구로서 당시 가장 발전된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세계적인 발견이었는데 그때까지 정설로 믿어진 세계 구석기 2원론을 무너뜨렸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한반도 같은 곳에서는 발전된 구석기문화가 발생된 것이 아니라 훨씬 나중에야 전해졌을 거란 학설을 뒤집었다. 한반도에 살던 한민족이 매우 오래되고 발전된 구석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동굴을 본뜬 곳에서는 원시인들이 벽에 그린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원시인들이라고 그림까지 원시적인 건 아니다. 놀랍도록 색채감각이 좋고 예술성이 풍부한 것에 놀랐다. 죽어서 매장하는 문화를 가져다는 건 내세를 생각했다는 것이니 종교도 있다고 하겠다.



유전자 분석적으로 보면 한민족은 남방 농경민족과 북방 기마민족이 6대 4 정도로 섞였다고 한다. 물론 다른 연구 결과도 있긴 한데 어쨌든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것도 사실이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전부 섞인 것이 우리의 핏줄이니까 말이다. 심지어 인도라든가 아랍의 피도 섞였을 지 모른다.


이렇듯 선사박물관에선는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다. 편하게 즐기고 놀 수 있는 요소와 함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요소를 함께
조화시켰다는 점에서 훌륭했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을 위해 많은 배려를 한 것이 곳곳에 보였다.

때때로 가족단위로 색다른 것을 보며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에게는 재미를 주고, 어른 들도 뭔가를 얻어갈 수 있는 곳으로 연천 구석기 축제는 우수한 볼거리와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귀여운 동물 인형들이 벌이는 재롱을 보며 아이들의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