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말한다. 열정을 가지고 해왔던 일이 잘못되어 낙심했을때, 혹은 성공했기에 닥쳐온 많은 변화가 너무도 거셀 때 흔히 초심을 잃었다고 한다. 블로거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지금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기에 더욱더 내가 초심을 잃지는 않았을까 염려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비보이는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젊은이를 일컫는 말이다. 사실 이것은 미국 슬럼가에서 생겨난 독특한 문화현상의 하나다. 우아한 발레 같은 고급춤도 아니고, 스포츠 댄스같은 화려한 커플댄스도 아니다. 스튜디오나 댄스홀도 아닌 길바닥에서 커다란 구식 카세트데크 하나만 놓고 자유롭게 몸을 흔들며 몸속에 흘러넘는 에너지를 분출한다. 그것이 바로 비보이다.


사실 이들은 예술가도 아니고 댄서도 아니다. 그저 현실을 고달프게 살아가는 일반인이다. 80년대의 빅히트 그룹 '잭슨 파이브'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뚝서서 90년대를 평정한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은 이런 분위기를 가장 잘 반영한다. 마이클 잭슨이 선보였던 '문워크' 댄스- 뒤로 가는 그 발걸음속에 비보이의 향기가 묻어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본고장인 미국을 떠나서 전세계에 보급된 비보이 문화는 재미있게도 한국에 와서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자리를 안겨주었다. 국제적으로 열리는 비보이 대회마다 한국은 독특한 스타일과 무시무시한 파워무브로 우승을 휩쓸고 있다. 머나먼 아시아에서도 변방으로 생각되는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문화적 감성과 스타일이 부족하다는 편견을 받았음에도 압도적인 실력과 박력을 보여주는 한국 비보이는 연신 찬사를 받았다. 마치 피겨여건도 안되는 한국에서 돌연 나타난 김연아와도 같은 느낌이다.


불행히도 비보이는 상업적인 춤이 아니다. 예술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것으로 세계 최고가 된다고 한들 그 자체로는 돈도 명예도 얻지 못한다는 말이다. 밖에서 춤을 출때는 찬사와 박수를 받아도 막상 돌아와보면 낡은 집에 연습실조차 변변치 못하다. 가진 건 없고 춤은 힘들어 부상과 편견에 시달린다.



물론 방법은 있다. 이런 춤을 공연예술로 승화시키거나 대중예술계로 나가서 백댄서가 되는 길 등이다. 그러나 온전히 비보이로서의 초심을 지키면서 이런 것을 하기란 쉽지 않다. 순수한 열정은 돈에 이용당하고, 성공을 위해 동료를 배신한 사람은 크게 성공한다. 그 와중에 닥쳐오는 부상과 좌절은 팀웍을 부숴버리기도 한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란 공연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크게 성공한 그 공연은 비보이의 존재를 잘 알려주었지만 동시에 성공의 뒷면에 얽힌 돈문제로 인해 순수함을 잃어 버렸다. 그저 뒷골목에서 춤을 추었던 비보이도 초심을 잃기 쉬운 것이다.


그런 비보이들이 다시 초심을 찾아 거리로 돌아온다. 다시 한번 열정적으로 춤추며 박력있는 춤으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것이 바로 1998년 창단한 비보이팀 고릴라크루의 ''리턴 투스트릿'이다.

이들은 공연 예술을 하는데 이상적인 경력을 갖추고 있다. 13년의 전통이 있고 공연 무대 경험은 최근 6년간 다져진 무대를 통해 춤과 연기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하나의 크루 안에서 깊은 유대감과 결속력을 통해 모든 스트릿 안무를 모두 다 소화하고 이 것도 부족해 최근엔 전미 익스트림 마샬아트 챔피언까지 영입해서 명실 공히 최고 최대의 스트릿 댄스 공연 팀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거리로 돌아온 비보이, 리턴 투 스트릿.


직접 현장에서 본 이들의 공연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사가 거의 없음에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선명한 스토리가 재미있는 스타일 퍼포먼스와 힘찬 댄스와 어우러진다. 어떤 상황에서는 일부러 관객과 호응하기 위해 무대를 벗어나 내려오는가 하면, 관객을 무대 위로 올려 함께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특히 이들은 춤추고 연기하는 내내 즐겁고 진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이 공연의 스토리 자체가 고릴라 크루 스스로의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열정이 넘침에도 돈이 없어서 겪은 설움, 분열, 그리고 고민과 화합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스토리 자체에 관객과 함께 몰입했다. 그러면서도 흥겹게 춤추고 달리는 모습은 이들이 진정한 비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단지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에너지와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춤은 일품이다. 거기에 혹시 내가 초심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느끼게 하는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그만큼 강한 인상을 준다. 시작부터 끝까지 지루함 없이 즐길 수 있는 비보이 공연으로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문득 무대에서 거침없이 춤추는 비보이들을 보며 생각해본다. 리턴 투 스트릿, 이들이 돌아온 거리에 있는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 역시 그 거리를 살아가는 주인공이다. 왜 우리는 돌아가려 하지 않는가? 왜 초심으로 돌아가 열정을 불사르려 하지 않는가? 과연 우리의 잃어버린 열정은 거리가 아닌 어디에 잠들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