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이폰 광고전쟁, 씁쓸한 이유는?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우월한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뒤지는 것도 없는가보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벌어졌던 차이도 결국 좁혀 들어가다보면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뒤졌던 제품이 앞서버리는 일도 있다.

아이폰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지금 두 회사가 치열한 광고전쟁을 벌이고 있다. 얼마전까지 애플에서 아이폰을 독점 공급 받았던 AT&T와 이번에 새로 아이폰을 공급받게 된 버라이존 사이의 대결이다.

애플은 그동안 정책적으로 한 국가에 한 업체에만 아이폰을 독점 공급했다. 사실 아이폰을 공급하는 애플의 정책이 여러가지로 기존 이통사의 권리를 빼앗거나 제한하는 일이 많았다. 때문에 이미 충분히 돈을 벌고 힘을 가진 이통사는 애플의 제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각 나라마다 1위 업체가 아닌 2위 이하 업체에 독점공급하면서 이를 무기로 애플의 정책을 관철하곤 했다.

그런데 애플이 이제 미국에서 그 정책을 버렸다. 따라서 그동안 전파 음영지역이 많았던 AT&T를 어쩔 수 없이 써야했던 미국 아이폰 사용자들은 드디어 커버리지(통화가능지역)가 훨씬 넓은 버라이존의 통신망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새로 가입자를 확보하려는 버라이존과 기존 가입자를 유지하려는 AT&T의 격렬한 경쟁이 광고전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출처)

시작은 버라이존(Verizon)이 먼저 했다. 광고 하나로 AT & T와 애플(Apple)의 신경을 건드렸다. 일명 'map for that'이라고 불리는 이 광고는 AT & T의 빈약한 3G 커버리지를 조롱하며 아이폰(iPhone)의 가치를 끌어내렸다.

AT & T를 통해 독점 공급하는 아이폰보다는 AT & T의 3G 커버리지에 대한 의구심을 소비자에게 심어줘 결과적으로 아이폰 구매를 망설이도록 하겠다는 전략이 숨어 있다. 버라이존은 AT & T에 비해 5배나 넓은 커버리지를 가지고 있다고 끝을 내고 있다.

버라이존 광고의 법적인 대응에서도 밀린 AT & T는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광고엔 광고로 대처하는 방법이 가장 가능성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응하는 광고를 선보였다. 광고는 디쥬 시 마이 이메일?(Did you see my email?)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GSM이 CDMA 네트워크에 비해 우수한 음성과 데이터통신 동시 지원을 강조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고객과 전화 통화중에 이메일을 받았는지 물음에 전화를 끊지않고 이메일을 즉각 확인하는 내용과 통화중 레스토랑 예약이나 꽃주문 등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CDMA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버라이존을 깎아내리는 내용이다. '버라이존, 넌 이거 되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참고로 CDMA 기술(2G)에서는 음성과 데이터 통신이 동시에 제공되지 않는다. 즉 CDMA를 통해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음성통화가 불가능하고 음성통화중이면 데이터네트워크 접속이 불가능하다. 반면 GSM/GPRS는 음성과 데이터통신이 동시 가능하다.

요약하면 버라이존이 AT&T의 좁은 커버리지를 비웃자, AT&T는 버라이즌의 방식인 CDMA에서 통화와 데이터통신, 즉 인터넷이 동시에 되지 않는 결점을 비꼬는 광고를 내보냈다. 그런데 이 광고를 보면서 나는 어쩐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의 아이폰 광고전쟁, 씁쓸한 이유는?

휴대전화 초창기에, 한국은 하나의 선택으로 세계적인 기술 선진국이 되었다. 당시 유럽의 휴대폰 방식은 하나의 주파수를 시간으로 쪼개서 여러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TDMA(시분할)에 근거했다. 이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상용 휴대폰 기술이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의 퀄컴사와 손을 잡고는 하나의 주파수를 코드로 쪼개서 여러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CDMA(코드분할)방식을 도입했다.

본래 CDMA는 주로 군사용으로 쓰던 방식으로 잡음이 적고, 보안이 보다 강한 방식이었다. 또한 하나의 주파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할 수도 있는 최첨단 기술이다. 한국이 최초로 이 방식을 상용화에 성공하고 오히려 외국에 관련기술을 제공하면서 기술강국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CDMA는 유럽의 GSM방식과 경쟁해서 주류가 되지 못했다. 몇몇 나라에 보급되기도 했지만 표준에서 밀려버렸다. 장점이 많은 기술이었음에도 그 차이는 곧 GSM쪽의 기술개발로 좁혀졌고 결국 주도국인 한국조차도 이 방식만 고집하는 것을 포기하고 3G로 가면서 유럽식을 채택해 버렸다.

아이폰을 둘러싸고 벌이는 미국 이통사간의 광고전쟁은 얼핏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한때 한국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CDMA방식이 이젠 통화와 데이터통신이 동시에 되지 않는다고 비웃음 당하는 걸 보게 된다. 이런 전말을 기억해낸 나는 씁쓸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단 한번이었지만 한국이 전세계 휴대폰망을 전부 지배할 기회가 있었다. 많은 의견이 있긴 하지만 내 생각에 결국 표준을 정한 것은 국가간의 힘이었다. 한국과 퀄컴의 힘은 전세계를 모두 손에 넣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리고 그나마 남아있는 미국 버라이즌과 몇몇 국가들의 CDMA방식도 차세대 통신망인 LTE등으로 넘어가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가까운 시대안에 한국이 다시 그런 기회를 얻게 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미국 두 회사의 아이폰 광고전쟁은 나에게 대단한 아쉬움을 남긴다. 한때 한국이 여러 나라의 감탄과 찬사를 들으며 성공적으로 주도하던 CDMA가 너무도 아쉬워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차세대 통신망에서도 외국의 기술을, 단말기에서도 애플의 아이폰을 감탄하며 쓰고 있다. 과연 그저 이것으로 좋은 것일까. 한국이 세계 이통망 기술을 주도할 뻔 했던 순간은 그저 좋았던 꿈으로 넘기면 그만일까. 모두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