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눈앞에 벌어진 결과와 현상만 보고 반응한다. 예를 들어 세금이나 물가가 오르면 그 자체에만 집중해서 누구가를 비난한다. 그렇지만 막상 그 결과를 만들어낸 원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거나 분석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그건 일일히 스스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유보다는 오로지 결과가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이다.



과연 그럴까. 결과만 좋게 나오면 그 이유 같은 건 이해하든 말든 상관이 없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 몫지 않게 이유를 제대로 알려는 노력을 제대로 해야만 우리가 보다 현명해질 수 있다. 이번에는 데스크탑과 노트북을 칩 시장을 거의 석권한 인텔의 CPU에 대해 알아보자. (출처)

인텔이 올초 야심적으로 공개한 샌디브릿지 기반 칩셋에 설계결함이 발생했다.

인텔은 지난 31일(현지시간) 샌디브릿지 칩셋에 설계상 결함이 발견돼 이 칩 기반의 컴퓨터출하 지연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또 약 10억달러 규모의 수리비와 함께 매출 감소를 예상했다.

월 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씨넷 등 주요 외신은 31일 일제히 인텔이 지난 1월 9일 출하한 약 800만개의 샌디브릿지 기반 칩셋에서 결함이 발생해 심각한 혼란이 예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리얼 ATA일부의 성능이 저하돼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와 광학디스크드라이드(ODD)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오류다.


새로 나온 인텔의 이 칩은 사실 회심의 작품이었다. 그동안 라이벌 AMD의 저가공세와 더 발전한 그래픽 통합기능에 밀리다가 지난 코어2듀어부터 역전한 인텔로서는 샌디브릿지란 코드명으로 오는 이 칩을 이용해 라이벌은 완전히 따돌릴 생각이었다. 소녀시대까지 나온 콘서트 형식의 광고도 그렇지만 기능 면에서도 단연 뛰어났다. 이대로는 소비자 사이에선 당연히 인텔을 선택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처리속도 때문이다.

인텔은 이전에도 한번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야심차게 발표한 펜티엄칩이 부동소수점 연산에서 오류를 낸 일이다. 소프트웨어 패치가 돌고, 이어서 인텔에서 사과문과 함께 교환해준 적이 있다. 그러나 이때 잃어버린 신뢰가 회복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이후 AMD의 애슬론 시리즈가 시장에서 상당부분 선전한 것도 이때 인텔의 오류 때문이기도 했다. 빠르고 확실한 조치는 좋지만 애초에 결함없이 출시해야지,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인텔의 새 CPU 설계결함, 원인은 무엇일까?



이번 설계결함은 사실 인간이면 당연히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선에서 넘어갈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그렇게 수습되고 넘어갈 것이다. 이미 출시된 칩의 회수와 재 출시에 드는 예상 소요비용 1억달러를 당당히 공개하고 회계에 반영까지 한 인텔의 여유를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엄밀히 말하면 CPU코어 자체의 결함은 아니다. 외부 인터페이스를 담당하는 메인보드 칩의 결함이다. 물론 그것도 인텔이 감독한 칩셋회사와의 문제일뿐 소비자에게는 인텔의 잘못으로 비칠 뿐이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오늘날 소프트웨어 뿐만이 아니라 컴퓨터 하드웨어분야는 매우 경쟁이 거세고, 기술이 빠른 속도로 개발된다. 잠시 방심하면 라이벌의 기술이 나를 추월할 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서 업계 1위자리를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런 치열한 압박감이 이번 설계결함의 원인이다. 하드웨어 조차 마지막 검사와 신뢰성 확인에 들어가는 시간이 점점 단축되어 생략되는 것이다.

인텔이 비록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다는 법은 없다. 바로 저 부동소수점 오류가 난 얼마 후 1Ghz 속도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AMD에 밀려 점유율 1위 자리를 빼앗길 뻔 한 적도 있었다. 라이벌에게는 찬란한 황금기였고 인텔에게는 암흑기였다.




어쩌면 업계와 소비자가 하드웨어 업체, 그 가운데서도 주도적 위치에 있는 CPU업체에 원하는 것이 너무 가혹한지도 모른다. 소프트웨어 업체가 신제품을 내놓았을 때 그 안에 다소의 버그나 오류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MS의 신제품 윈도우는 같은 시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다운과 블루스크린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누구 하나 그러니까 리콜하라거나 팔지 말라고 하지 못했다. 오늘날 애플도 마찬가지다. 외장 안테나 설계에 결함이 있어도 그렇게 잡지 말라고 하면 그만이었고, 나중에도 그냥 케이스를 무상으로 주겠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엄청난 버전업을 하면서 초기버전에 자잘한 오류가 있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인텔은 다르다. 인텔에게 소비자가 요구하는 건 적어도 성능을 떠난 완벽한 신뢰성이다. 인텔 입장에서는 다소 불공평하게 보이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예전에 빌게이츠가 말하길, 컴퓨터 업계의 발전처럼 자동차가 발전하면 지금쯤 소비자는 1달러에 벤츠를 몰고 다닐 거라는 뉘앙스로 말하자, 자동차 회사 관계자는 대답했다. 자동차는 컴퓨터 업계의 모 운영체제처럼 가다가 원인도 모르게 갑자기 엔진이 꺼져서 멈추지 않는다고 말이다.

우리는 인텔 등의 하드웨어 업체에게는 적어도 자동차 수준의 신뢰성을 요구하고 있다. 혁신보다 오히려 신뢰성인 셈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이미 운영체제나 각종 소프트웨어에서 혁신을 바라면서 대신에 오류나 버그를 참아줄 수 있지만 하드웨어까지 이러는 건 차마 못참겠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인텔은 대규모 리콜과 제품보강을 거쳐 다시 신형 CPU를 올 4월에 다시 내놓을 전망이다. 삼성과 LG등 이 칩을 채택해 제품을 내놓은 각 업체도 제품을 회수하고 있다. 개인사용자부터 시작해 기업의 안전적 서버, 병원과 과학 연구소 등에서 모두 일관되게 인텔에 바라는 것은 조급한 혁신이 아니다. 믿음을 주는 신뢰성이란 사실이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계열의 컴퓨터 하드웨어를 만드는 삼성을 비롯한 한국의 업체들도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조금 더 빠르고 넓은 메모리를 빠르게 만들려는 압박을 못이긴 나머지 오류가 있는 칩을 출시해서는 안된다. 소비자들이 하드웨어 업체에 기대하는 것은 일단 충실한 기본이다. 발전은 느려도 이유없이 멈추지 않는 자동차처럼 말이다.

P.S : 이 포스팅 글에 대해서 '인텔 CPU가 아닌, 칩셋의 결함인데 왜 CPU결함이라고 지적했냐?' 고 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더 공부를 하라거나 인신공격을 하는 분이 많군요. 유감입니다만 오히려 지적하시는 분들이 좀더 큰 범위에서 현재의 인텔 CPU와 정책에 대해서 이해하셔야 할 듯 합니다.

현재 인텔의 CPU는 옛날 노스브릿지, 사우스 브릿지 등의 기능을 비롯해 캐쉬메모리등을 모두 CPU 다이안으로 밀어넣고 나머지 기능도 자사 CPU 설계 안에서 전부 해결하려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외부 연결과 관련된 칩셋 설계 잘못이라고 하지만 깊숙이 들어가보면 결국 이 모든 것을 CPU로 간주하고 넣어버리려는 의도를 가진 인텔의 차세대 전략이 얽혀있습니다.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기 어렵기에 간략하게 'CPU 코어의 결함은 아니지만...' 하고 넘어갔는데 이해를 못하시는 분이 많네요.

어쨌든 칩셋도 인텔 설계고, 그 칩셋을 탑재하는 종전의 칩셋 내지 메인보드 제작사들의 협력관계야 어쨌든, 인텔이 칩셋까지 흡수하겠다며 포괄적으로 맡은 개념인 'CPU설계' 의 잘못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기에 이렇게 제목을 짓고 내용을 썼습니다. 과연 인텔 CPU개념에서 어디까지가 코어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칩셋영역인가 하는 부분은 이견은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알고 하는 제 주장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