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기사 가운데 내가 가장 주목한 기사 하나가 있었다.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최근 중앙일보 경제 월간지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Q: 미국 애플엔 있고 삼성전자엔 없는 게 무엇인가.
A: 우리에겐 콘텐트와 솔루션을 만들어 내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창의력은 아무래도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시장 규모도 불리하고, 마케팅 능력도 부족하다. 하지만 애플에 비해 기술력은 만만치 않다. 40년 전 라디오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 삼성전자가 소니를 제치지 않았는가. 기술도 사람도 자본도 없는 상황에서 해냈다. (스마트폰에서) 선수를 빼앗긴 건 따라잡으면 된다.

이것은 상당히 핵심에 근접한 내용이다. 그래서 나는 삼성이 스스로의 문제를 매우 잘 파악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의외의 발언이 나왔다. 바로 애플에 비해 삼성이 모자라는 점은 <운영체제>라는 말이었다.


단순히 이것이 눈에 보이는 윈도우나 리눅스 같은 운영체제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추상적인 의미까지를 포괄한 것인지 나는 아직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다. 윤종용 고문은 외국에서도 상당한 평가를 받는 능력있는 인물이다. 그러니 설마 그저 눈에 보이는 운영체제만 말한 것은 아니라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애플에 밀리며 허둥대는 삼성이 눈에 보이는 그 <운영체제>조차도 손에 넣고 싶다는 열망은 상당히 강한 것 같다. 스마트폰 OS에서 일부러 독자 OS <바다>를 개발한 데 이어 또 하나의 결정적인 움직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삼성에스디에스는 17일 티맥스소프트의 자회사인 티맥스코어의 지분 51%와 경영권을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삼성에스디에스는 7월 초 인수 작업을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삼성은 티맥스코어 인수를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 및 전문인력을 보강할 수 있게 됐다.

티맥스소프트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들웨어 회사로서 상당한 규모를 지닌 중견기업이다. 그러나 지난 기간 동안 윈도우XP와 호환되는 한국형 운영체제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하고 티맥스코어란 자회사를 세웠다. 여기서 개발한 티맥스윈도라는 운영체제로 OS시장에서 MS를 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3년간 600명의 인력을 동원해 만든 그 한국형 운영체제 티맥스윈도는 처참한 실패작으로 드러났다. 제대로 완성되지도 않았고 동작조차 불안정한 것을 억지로 들고나와 발표할 정도였다. 아마도 그 이상 끌고가봐야 더 나아질 것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무모한 도전은 모회사까지 자금난에 빠뜨리며 총체적인 문제를 낳았다.

그런데 갑자기 삼성에서 이 회사를 인수했다. 어째서일까?
겉으로 내세운 이유는 단지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의 강화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그냥 신규와 경력직 개발인원을 대거 새로 채용하는 것에 비해 별로 나은 점이 보이지 않는다.  빚도 있고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못주고 있는 회사를 통째로 인수할 만한 메리트가 전혀 없다.

이때 나는 전혀 다르지만, 그러나 비슷한 미국 뉴스 하나를 떠올렸다. HP가 팜의 WebOS를 인수한 사건이다.
팜이 만든 운영체제 역시 PDA에 탑재되어 한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지만 조용히 사그라든 경우다. 이때 HP 역시 이전까지 운영체제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을 계기로 피닉스의 즉석 부팅용 리눅스를 사들이는 등 활기찬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삼성과 HP의 두 사례가 결국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독자적 운영체제 기술 보유다.


삼성은 애플처럼 운영체제를 가질 것인가?
대답은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라는 것이다.


결국 삼성이 노리는 바는 명확하다. 일차적으로는 비록 수준이 검증된 바는 없지만 티맥스코어가 가진 독자적 운영체제 기술력을 조금이라도 흡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삼성의 독자 운영체제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쓰고 보니 간단하다. 애플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던 삼성이 독자 운영체제를 가지고 싶어한다. 그리고 마침 그 독자 운영체제를 개발하겠다고 큰소리치다가 쓰러진 중소개발사를 사들인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말보다는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삼성이 마침내 저 위에서 윤종용 고문의 말로 표현한 대로 <애플에는 있고 삼성에게는 없는> 운영체제를 가지기 위한 행보를 내디뎠다는 뜻이다. 전반적인 기업 창의력 부족은  구조적 문제니 할 수 없지만 눈에 보이는 윈도 같은 운영체제를 못 가질 게 뭐 있냐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쉬울까?


티맥스 윈도가 처음 개발사실을 밝혔을 때 많은 IT현장 개발자들이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던 기업 IBM조차도 OS/2를 개발해 대대적으로 밀어붙이다가 크게 실패했다. 천재 스티브 잡스도 넥스트스텝에서 쓴 맛을 봤으며, 공짜인 리눅스조차도 보급률이 한자리에도 미치지 못하도록 부진하다. 엄청난 자금과 시간이 투입된 운영체제도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지 못하는데 중소기업이 겨우(?) 600명으로 3년 동안 개발한 운영체제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결론은 예상한 대로 나왔다. 어설픈 발표회장에 나온 티맥스 윈도는 공개된 리눅스를 약간 수정한 정도에다가 WINE이란 윈도우 호환 API를 붙인 수준이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불안정해서 수시로 동작이 멈추고 장담했던 윈도와의 호환성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 도저히 개발인력과 기간이 믿기지 않을 졸작이었다.


이런 운영체제를 만든 개발인력에게 삼성이 과감히 배팅을 건 것이다.
무엇인가 겉으로 보인 것보다 뛰어난 무엇인가가 그 안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한 개발회사를 통째로 인수한 결정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하다. 단지 위기에 빠진 업계 개발인력을 구제해주겠다는 의도라면 훌륭한 선택이고 박수를 받을 만 하다.

그러나 이들을 이용해서 삼성이 애플처럼 운영체제를 가질 의도라면 그다지 큰 효과는 보지 못할 것 같다. 내 예상에 이들은 결국 기존의 바다OS를 조금 더 손보거나, 안드로이드용 UI, 앱 등을 만드는 데 쓰이다가 조용히 사라질 것만 같다.

물론 나도 내 예상이 틀렸으면 좋겠다. 티맥스코어가 숨겨놓은 기술이 정말 놀라운 것이고 삼성이 이들을 후원해서는 놀랄 만큼 뛰어난 한국형 운영체제를 만들어 내놓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럴 의도는 충분해도 능력은 충분하지 못한 듯 싶다.
 

삼성은 애플처럼 운영체제를 가질 것인가?
두번째 대답은 <단기간에 쓸만한 것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라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운영체제에 관한한 삼성에게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10-20년 앞을 내다보는 과감한 투자와 혜안이 필요하다. 정말로 제대로 된 운영체제를 가지고 싶다면 말이다.

삼성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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