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의 화두는 '통신비 절감'이다. 한 가구마다 1회선 인터넷 요금, 가족 숫자마다 스마트폰 요금을 내는 것이 기본인데 여기에 IPTV라든가 몇 가지 서비스만 써도 통신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이통사의 결합요금을 잘 이용한다고 해도 4인 가족 기준으로 20만원 정도의 통신요금은 나오게 된다. 물가와 공공요금 등 월급만 빼고  전부 오르는 상황에서 통신비 만이라도 아껴보려는 가계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닿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이동통신 업계가 해마다 엄청난 매출과 기록적인 이익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요금 인하 요구에는 여력이 없다고 응수하면서 통신비 인하 방법을 둘러싸고 제도와 현실의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이통사들은 남아도는 이익금과 판매촉진비를 쌓아두고는 한정된 기간에 한정된 소비자를 상대로 단말기 구입시 최대의 보조금을 푸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렇게 해서 높은 요금제의 장기 계약을 유도하는 것이 지속적인 이익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인터넷 게시판을 밤새 클릭하다가 새벽에 직접 대리점에서 줄을 서야만 겨우 파격적 가격에 단말기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나머지 사용자는 거품이 잔뜩 낀 가격에 단말기를 구입하고 비싼 통신비를 부담하는 수 밖에 없다.


2014년 10월부터 시행된 단말기유통법은 이런 상황을 바꿔서 모든 사용자에게 공평하게 보조금을 집행하고 비싼 요금제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시행 후 이통사들이 가입비를 폐지하고 장기 이용고객에 대한 혜택을 강화하며, 위약금이 없는 요금제를 출시하는 등 소정의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폰6 대란'을 비롯한 위법행위가 벌어졌으며 '페이백' 같은 음성적 보조금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실질적으로 통신요금이 과연 내려갔는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이에 더 강력한 법적 규제를 통해 통신요금을 내리고 시장질서를 바로잡겠다는 목적을 지닌 법안이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2015년 1월 26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전병헌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정책토론회를 통해 단말기 완전자급제 초안을 공개했다. 조만간 발의 절차를 밟아 시행될 수도 있는 '단말기 완전 자급제'에 대해 알아보자.

   


완전 자급제 - 통신서비스와 단말기 판매를 완전히 분리


지금은 통신사 대리점에서 단말기를 판매하면서 요금제 가입도 함께 해주고 있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이 두 행위를 분리시켜 궁극적으로 단말기를 일반 가전제품처럼 판매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현재 노트북을 구입하는 경우를 보자. 노트북은 유무선 인터넷을 통해 접속해서 업무를 보거나 온라인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노트북을 구입할 때 통신사 대리점에서 구입하지 않는다. 대형 전자마트, 온라인 쇼핑몰, 컴퓨터 판매점 등 다양한 판매처에서 구입한다. 여기에는 보조금 같은 개념이 조금도 끼어들지 못한다. 정가는 있지만 할인판매도 하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가격이 떨어진다. 노트북 제조사들은 더욱 싸고 질 좋은 제품으로 경쟁할 뿐 통신 서비스와 결합해서 팔지 않는다.



인터넷 서비스 역시 별도로 공급자를 골라 가입한다. 단말기와 결합해서 팔지 않으니 인터넷 공급자는 통신사 보조금이나 할부납부 같은 개념을 끼워넣을 수 없다. 그저 몇 개월 계약에 얼마의 요금을 내야 한다는 단순한 요금표만 남는다. 따라서 경쟁을 위해 요금 그 자체를 할인해야 한다. 시중에 있는 유선 인터넷 요금제는 사업자에 따라 다르며 상시 할인 행사를 해서 요금을 깎아준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가 추구하는 것은 이렇게 별도로 판매하는 두 분야 사업자가 사용자도 알 수 있는 투명한 가격 결정과정을 취하면서 경쟁하는 것이다. 둘을 결합해서 그 사이에서 거품가격을 만들거나 투명하지 못한 가격결정을 통해 소비자를 속일 수 있는 여지를 없애려는 의도이다.



문제점 - 기존 유통체제 붕괴 우려, 형식적인 분리에 그칠 수도



그렇지만 단말기 완전 자급제가 기대하는 이런 좋은 효과는 어디까지나 이론적이다. 아예 이통시장 초기부터 강력하게 시행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기존 유통방식이 굳어져서 많은 중소기업과 영세 상인들의 생계가 걸린 유통시장이 되어 있다. 따라서 순수하게 사용자의 이익만 쫓을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또한 기존 방식의 이익구조에 익숙해진 통신업체로서는 어떤 방법이든 완전자급제의 허점을 찾아 유명무실하게 만들려 할 것이다.


우선 제조사와 대리점이 단말기를 판매하지 못하게 만들면 궁극적으로 판로의 다양성이 막힌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제조사와 통신사 이외의 대형 가전제품 회사들이 풍부한 자본력으로 단말기 시장을 석권하면 영세 상인의 생계가 위험해진다. 현재 각 이통사대리점은 단말기 판매 및 요금제 가입을 유도해서 그에 따른 리베이트를 받아 이득을 취하고 있다. 단말기 유통 자급제가 통과되면 이 가운데 단말기 판매 리베이트를 받을 길이 없어지고 순수하게 요금제 판매만으로 이익을 봐야 한다. 이익이 줄어들 우려가 있는 만큼 거센 항의와 행동에 나설 것이 명확하다.


형식적인 분리로 제도의 구색만 맞추려 할 수도 있다. 병원 건물 바로 아래 약국이 있는 것처럼 인접 공간에서 단말기 판매점과 이동통신 대리점이 동시에 운영되면서 제휴할인 등의 변형된 형태로 보조금 효과를 줄 수도 있다. 본래 완전자급제의 목적은 통신사가 단말기를 못 팔면 과다한 보조금을 주지 못하고 그 비용이 요금 인하와 서비스 확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보조금을 크게 줄인 이통사가 통신비 요금 인하를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데 만일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체감상 통신비가 높아지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전망 - 중요한 것은 통신요금 인하



단말기 완전자급제 법안을 준비 중인 전병헌 의원은 2월 중에 상정할 계획이다. 단말기유통법이 시행된지 6개월도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빠르다. 물론 상정한다고 바로 통과되는 것도 아니며 통과된다고 해도 시행까지 여유를 둘 수도 있다. 


전병헌 의원은 "25년동안 고착화돼 있는 시장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매점, 영세점, 자영업자들의 충격과 그로부터 나오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보완을 암시했다. 또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통사와 제조사로부터 의견을 제출받아 충분히 검토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작용 우려를 익히 알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법안이든 그것이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통신요금 인하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는 "단말기완전자급제가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위해서는 법안 시행 시에 관련업계가 쓸 수 있는 편법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철저히 예측해야 한다"며 "모든 편법을 미연에 막을 수는 없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포착하고 징벌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갖춘다면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효과를 보기위해서는 시일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준비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경쟁에 의해 통신요금도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