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새로운 독자 운영체제(OS)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스마트폰 초창기부터 삼성은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와 비교해서 독자적인 운영체제가 없다는 점을 줄곧 지적당했다. 갤럭시S 시리즈를 통해 세계 굴지의 단말기 제조사로 자리잡았고 유일하게 애플에 경쟁하는 업체가 되었지만 개성적인 사용자경험을 가져다줄 핵심역량이 없다는 비판이었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한 움직임이 전혀 없던 건 아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바다' 운영체제를 들 수 있다. 영문표시로 'WAVE' 라고 불리던 이 운영체제는 삼성전자가 2009년 10월 10일 차세대 플랫폼으로 발표했다. 또한 두 달만인 12월 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론칭 행사에서 바다 플랫폼에 대한 세부 내용을 발표하고, 바다 SDK를 협력사들에 공개하였다. 2012년 11월 시점에서 3분기 바다 OS 탑재 505만대를 기록하며 세계 스마트폰용 OS 3%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바다는 플랫폼 경쟁이 격화되면서 앱과 기술적 우위부족으로 인해 밀려났다. 2013년 2월 24일 삼성전자 홍원표 사장이 "바다 OS가 타이젠 OS에 흡수 합병 되었다"며 공식적으로 바다 OS의 개발 종료를 선언했다.



그 뒤를 이어 등장한 타이젠 역시 제대로 된 탑재 플랫폼이 없어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2015년 1월 타이젠 탑재 스마트폰 Z1을 인도에서 초 저가폰으로 출시하며 2월에는 방글라데시로 시장을 넓혔다. 또한 프리미엄 텔레비전인 SUHD TV에도 탑재하며 타이젠을 통합 플랫폼 운영체제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삼성전자의 독자 운영체제 전략의 핵심이 될 타이젠에 대해 알아보자.



타이젠 - 개방성과 범용성이 높은 모바일 운영체제




타이젠은 2011년 9월부터 리눅스재단에 의해 발표된 모바일 운영체제이다. 주도적인 업체는 인텔과 삼성이며 형태로 보면 애플의 iOS나 구글 안드로이드와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스마트폰, 태블릿, 스마트TV나 넷북 등 다양한 기기에서 작동하는 것을 처음부터 상정한 개방형 모바일 운영체제란 점이다.


앱 개발에 필요한 모든 API는 HTML5와 자바스크립트, CSS와 같은 웹표준을 지원한다. 따라서 타이젠에서만 실행되는 네이티브 코드로 개발할 수도 있지만 범용성이 높은 HTML5로도 개발할 수 있다. 이 점은 새로운 도구를 배우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개발자를 끌어들이기 쉽고 다른 앱의 포팅을 쉽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타이젠에서 안드로이드 앱을 쓸 수도 있다. 운영체제 레벨에서 호환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솔루션 제공업체의 도움을 받으면 가상머신을 얹고 그 위에서 안드로이드 앱을 구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2014년 5월 삼성은 안드로이드 호환을 위한 솔루션 제공업체를 국내업체로 선정했다. 약간의 메모리와 처리능력을 더 쓰게 되면 실행이 가능한 능력을 갖춰 초기 타이젠 앱 부족을 해소하려는 의도이다. 실제로 2015년 1월 14일 외신들은 삼성전자 Z1에서 안드로이드 기반 메신저 앱 왓츠앱을 구동하는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타이젠의 유연함과 범용성은 커다란 매력이다. 이미 모바일 운영체제 생태계가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로 굳어져 판도가 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개발자는 쉽게 끌어들이고 소비자에게 바로 쓸 수 있는 앱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 플랫폼 - 사물인터넷 시대를 준비한다 




삼성전자의 주된 전략은 '패스트 팔로워'에 있다. 시장에서 승자가 결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승자가 취한 승리공식을 분석해서 그대로 따라간다. 그리고 이기기 위해서 더 많은 물량을 동원한다. 더 많은 홍보비와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제품이 추구하는 모든 방향이 같은 상황에서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면 당연히 더 나은 품질이 나온다. 더 많은 홍보비를 투입하면 브랜드 가치도 따라갈 수 있다. 이 방법으로 삼성은 안드로이드 시장에서는 최고의 제조사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애플이 구축한 독자 운영체제만은 따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애플은 iOS는 물론이고 매킨토시에 쓰이는 OSX도 다른 업체가 쓰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독자적인 생태계와 사용자경험을 구축한다. 하드웨어로는 애플을 따라갈 수 있지만 운영체제와 앱까지 포함한 사용자경험에서는 따라갈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구글 안드로이드는 범용성을 추구하므로 특정 하드웨어에 최적화되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어느새 스마트폰이 일으킨 모바일 혁명은 사물인터넷 시대로 흘러갔다. 이제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넘어서 시계와 목걸이, 팔목에 차는 작은 암밴드와 안경에도 운영체제와 센서가 들어간다. 이들이 클라우드와 결합해서 더 큰 편의성을 제공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삼성 기어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 삼성은 2015년 상반기에 출시예정인 애플워치와 경쟁해야 한다. 


애플의 경쟁력이 폐쇄적인 자사 제품 사이의 매끄러운 연결과 높은 사용자경험이라면 삼성도 어떻게 해서든 그와 비슷한 것을 제공해야 경쟁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성 제품에도 최적화할 수 있으면서 범용성도 높은 모바일 운영체제가 있어야 한다. 또한 삼성은 애플과 달리 백색가전부터 스마트TV까지를 아우르는 자사 가전제품 생산 라인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타이젠이란  통합플랫폼으로 묶어 사물인터넷 시대를 대비한다면 경쟁의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삼성은 바다를 포기했음에도 독자 운영체제로 타이젠을 앞세웠다는 것이 업계관측이다.



타이젠 연합 - 실질적으로는 삼성전자가 주도




현재 삼성 기어2, 기어S에 타이젠이 탑재되어 있다. 삼성 갤럭시 기어도 업데이트를 통해 타이젠을 쓸 수 있다. Z1 스마트폰은 9만 7천원이란 가격으로 인도에서 출시되어 열흘만에 5만대가 판매되는 좋은 실적을 거뒀다.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저가폰 위주로 타이젠 플랫폼을 보급하고 스마트TV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제품 위주로 기본탑재해서 플랫폼 보급을 늘리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타이젠은 형식상으로 어느 한 회사의 것이 아니다. 타이젠 연합 멤버리스트를 기준으로 보면 삼성전자와 인텔이 주도하지만 화웨이, 후지쯔가 단말기 제조사로 참여한다. 또한 통신사 파트너로 SK텔레콤, KT, LG U+, 보다폰, NTT 도코모, 오렌지 등이 참가하고 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뒷받침 해준다면 일정한 시장규모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며 성공 가능성도 높다.


그렇지만 이들 가운데 삼성과 인텔을 제외한 나머지 회사는 가입만 해 놓은 채 실질적인 제품출시나 관련 단말기 지원을 꺼리고 있다. 삼성 타이젠폰 Z1이 작년에 출시해줄 이통사가 없어 출시를 연기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을 정도이다. 나머지 기업은 상황에 따라 잘되면 가담하겠다는 정도이다.


 

전망 - 삼성의 소프트웨어 역량 확충이 관건




타이젠의 미래에 대한 두 가지 관측이 있다. 대성공은 아니더라도 애플이나 구글에 맞서 독자적인 생태계 구축이 가능하리라는 예상과 결국 양대 진영에 밀려 실패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제는 주도기업인 삼성과 인텔의 이익조차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텔은 자사의 X86기반 칩이 ARM기반이 주류인 모바일 시장 진입에 실패하면서 타이젠을 통해서 어떻게든 모바일 시장에 진입하려는 목적이다. 반대로 삼성은 ARM  엑시노스칩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든 여기에 타이젠을 최적화시켜 새로운 사용자경험을 자사 하드웨어에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타이젠이 일정수준으로 성공하게 되면 인텔은 X86칩을 기반으로 최적화시키려 할 것이며, 삼성은 ARM 기반칩에서의 최적화를 우선할 것이다. 두 주도기업조차 분열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성공했을 경우도 분열이 예정되어 있으니 실패했을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해결책은 삼성의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이다. 애플과 구글은 각각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자랑한다. 하지만 삼성은 독자운영체제를 추진하면서도 세계 수준의 역량과는 거리가 있다. 업계 전문가는 "2년 정도 의욕있게 추진하다가 눈에 보이는 금전적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금방 사업부를 축소하고 관련 사업을 포기하는 삼성의 방식으로는 타이젠 역시 성공가능성이 낮다" 면서 "우선 한 가지 플랫폼에서라도 제대로 사용자가 만족할 수 있는 사용자 경험을 갖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타이젠에 중요한 이익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오직 삼성 밖에 없다. 자체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운영체제의 질을 향상시키고 질 좋은 통합개발환경을 구축하며, 풍부한 생태계를 갖추는 것이 성공의 전제조건이다. 그것을 오로지 삼성의 자체 역량으로  할 수 있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조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