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그러니까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이란 이름으로 독재체제를 구축하며 철의 장막을 친 시절이 있었다. 또한 그 아래의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체제의 이름으로 죽의 장막을 치기도 했다. 모든 정보가 통제된 사회임에도 세계 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한 두 국가의 정책과 국가전략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이때 폐쇄된 국가인 두 나라의 정책을 짐작하는 수단은 바로 인사이동이었다. 소련의 서기장이 바뀐다든가, 중국의 국가주석이 바뀌는 커다란 변화는 물론이고 그 측근들의 이동과 주요 군장성의 이동을 탐지하고 나면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치열한 분석과 논평이 있었다. 구체적이고 투명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시절에는 그것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마치 꽉 닫힌 블랙박스를 분석하기 위해서 쓰는 방법처럼 말이다.


애플이란 신비롭고 비밀주의를 지키는 회사의 전략에 대한 분석 역시 다분히 이런 방법을 쓸 수 밖에 없는 듯 싶다.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언론들이 애플의 주요 인사이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큰 이유다. 이런 가운데 애플 iOS의 책임자인 스콧 포스탈, 애플 스토어를 성공시킨 존 브로윗이란  최고경영진 2명이 애플을 떠난다는 뉴스가 나왔다. (출처: 연합뉴스) 



10월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애플은 소프트웨어 담당 스콧 포스톨 수석부사장과 지난 4월 '애플 스토어' 책임자로 영입된 존 브로윗이 회사를 떠난다고 이날 밝혔다.


특히 포스톨 수석부사장은 최고경영자(CEO) 팀 쿡을 정점으로 디자인 담당 조너선 아이브 부사장과 마케팅 담당 필립 실러 부사장 등과 함께 지난해 10월 사망한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 사후 이른바 '집단지도체제'의 한 축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그의 사임은 업계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포스톨 부사장은 내년까지 회사를 떠날 예정이며, 그때까지 쿡의 고문 역할을 맡기로 했다. 그는 맥컴퓨터 운영체제(OS)를 개발했으며 현재 스마트폰 OS인 iOS를 책임지고 있다. 포스톨 부사장은 특히 화려한 프레젠테이션(PT)과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 등으로 한때 잡스의 후임으로까지 거론됐다.


그는 지난 5년간 iOS를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OS로 성장시켰으며,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을 배열하는 방법에서부터 손가락 터치로 밀어서 스마트폰을 끄는 방법까지 애플이 보유한 50가지 특허에도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포스톨 부사장의 사임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그가 담당했던 애플 지도서비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달 iOS 업그레이드와 함께 공개된 애플 지도에서 각종 오류가 발생해 이용자들 사이에 불만이 제기됐으며, 이례적으로 쿡이 직접 나서 공식 사과한 바 있다.



이 뉴스를 통해 비밀에 싸인 애플이 취할 향후 방향을 예상해보자.


애플의 iOS 책임자 사임,  예상되는 변화는?


일단 범위를 iOS를 비롯한 운영체제로 좁혀놓고 보자. 스콧 포스탈은 얼마전 뉴스에서 애플 디자인의 핵심 리더인 조나단 아이브와 향후 디자인 철학을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스콧은 실제 아날로그적 물건의 디테일을 그대로 컴퓨터에 옮겨놓는 스큐모픽 디자인을 선호한다. 섬세한 가죽바느질의 다이어리 케이스라든가, 릴테이프 녹음기의 테이프 감기는 모습까지도 재현한다. 그런 디자인은 애플 매니아들에게 미칠 듯한 감성적 표현, 혹은 지나칠 정도의 섬세한 디테일로 칭송받아왔다. 




하지만 조나단 아이브는 기능과 관계없는 장식적 화려함을 빼고 철저히 실용성과 절제미를 강조하는  미니멀리즘을 믿는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아이맥 등의 하드웨어를 그렇게 디자인한 조나난이 운영체제 안쪽에까지 미니멀리즘을 부여하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조나단은 디자이너들이 지나치게 과시한 디자인을 내놓는 것은 자기만족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난한 바 있다.


이제까지 이런 양쪽의 극단적 갈등은 유능한 통제자인 스티브 잡스에 의해 잘 조절되었다. 그러나 이제 카리스마와 안목이 그에 훨씬 못미치는 팀 쿡이 리더가 된 이상 스콧과 조나단의 의견은 조절이 되지 않는다. 어느 한쪽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조나단이 이기고 스콧이 떠나기로 한 것이다.


물론 겉으로 내세운 이유는 새로운 운영체제의 지도 서비스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지도 서비스는 심하게 말해서 돈과 시간만 많이 들이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는 영역이다. 개인의 창의성이 결정적 품질을 좌우하는 분야가 아니다. 그런 곳의 부진을 이유로 창의성의 핵심을 담당한 인재를 문책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이후 애플은 조나단 아이브의 단일 디자인 체제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OS X와 iOS의 새로운 운영체제와 앱은 보다 간략해지고 절제된 디자인의 아이콘과 화면 장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드웨어 디자인과 잘 어울리는 일관된 철학이기에 더 좋게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현명한 리더가 백명 있는 것보다는 덜 현명한 리더 한명이 지휘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한편으로 애플은 다양성을 잃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은 훌륭한 철학이다. 그러나 단 한가지 철학이 모두를 지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이야말로 애플이 1984 에서 부수려고 하던 건조한 통일성이 아니던가? 애플 디자인이 조나단 혼자의 철학으로 흐르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조나단 아이브와 팀 쿡의 진정한 협력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스티브 잡스의 몸에 이상이 생긴 후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의 디자인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과연 팀 쿡과 손잡은 조나단 아이브가 서로 손을 잡고 또다른 거대한 디자인의 변화와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점을 유의깊게 보아야 할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애플은 또 한 명의 인재를 잃었다. 사람을 잃기는 쉬워도 얻기는 어렵다는 옛말이 문득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