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끝난 올림픽의 예를 들어보자. 육상경기에서는 흔히 스타트가 중요하다고 한다. 육상의 핵심이라는 백미터 경주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중단거리 경주는 출발을 어떻게 하느냐가 이후의 순위를 결정한다. 한번 뒤쳐지면 자기 앞에 있는 한사람을 추월하기가 그렇게 힘들다. 어떻게 해서든 출발신호와 동시에 스타트를 해서 달리기 유리한 트랙 안쪽을 점유하고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스마트폰 업계에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는 모양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제일 먼저 압도적인 스타트를 끊은 이후로 그뒤로 뒤늦게나마 스타트를 가져간 주자들이 각축전을 벌였다. 워낙 스타트에서 차이가 나기에 1등을 목표로 삼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2등 자리가 상대적으로 만만해보이기에 모두가 노리고 있다. 하지만 2등조차도 결코 쉽지 않다. 점점 체력이 떨어지며 하나씩 경쟁을 포기하면서 순위가 고정되거나 꼴찌로 밀려난다.

반도체와 첨단전자 기술이 적용되는 곳에서 일본이 이렇게도 약한 존재감을 지닌 분야가 있었던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두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공업제품에서 빛을 발했던 나라가 일본이었다. 2천년대 초반까지도 소니는 가전제품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했었다. 그런데 스마트폰과 태블릿이란 미래형 IT기기가 등장하는 시점에서 일본은 완전히 뒤로 밀려나버린 느낌이다. 관련해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하나를 우선 인용한다. (출처)


애플과 삼성전자는 기록적인 이익을 내고 있으며 일사분기 글로벌 출고량기준(스트래터지 애널리틱스)으로 도합 54%의 스마트폰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반면, 소니와 파나소닉, 샤프와 후지쯔 등 일본기업의 점유율은 모두 합쳐 8%이다.

일본 국내 3대 휴대전화제조사 샤프와 후지쯔, 파나소닉은 “피처폰” 초기시대에 후퇴하다시피한 글로벌시장에 다시 진출하려는 중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혁신을 요구하는 치열한 스마트폰산업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전면적인 글로벌시장 공략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부터 일본 휴대전화는 하드웨어혁신으로 가득한 기술의 결정체였다. 2000년 샤프는 세계 최초로 카메라를 탑재한 휴대전화를 내놓았으며 아이폰이 출시되기 1년 전인 2006년 일본 소비자들은 휴대전화에서 TV를 시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뛰어난 기술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일본기업이 국내시장을 겨냥해 대거 출시한 휴대전화는 일본에서만 사용되는 통신기준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제조사들은 노키아나 모토로라 등 외국기업과 해외에서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해외에서 휴대전화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를 외국통신망에 맞게 개조해야 했다.

각국 이동통신사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해외시장에 맞춤화된 제품을 신속하게 내놓은 삼성전자와는 달리 일본제조사들은 글로벌시장에 늦게 진출했기에 외국통신사와의 협력관계 도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보호된 국내시장에서 이익을 내고 있던 일본제조사들은 해외확장을 위험하다고 간주하기도 했다.

위와 같이 국내지향적인 태도 때문에 일본 휴대전화에는 ‘갈라파고스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섬에서 섬환경에 맞추어 진화한 종을 발견한 사실을 본딴 별명이다.



이 기사제목은 '덜떨어진 일본스마트폰' 이다. 제목부터 통렬하게 일본 스마트폰이 왜 안팔리는 지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일본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려나는 이유는?

어떤 일이 잘될 때는 보통 주위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일본업체가 잘나갈 때는 일본이 가진 거의 모든 점이 장점이 되었다. 전성기의 일본이 가진 선순환은 이렇다.

1. 일본은 튼튼하고 커다란 내수시장 때문에 많은 자국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한다. 
2. 장인정신을 가진 기술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많은 기능을 넣고 개선한다. 
3. 섬나라이고 주변에 일본을 기술적으로 위협할 나라들이 없기에 1등만이 살아남는 가혹한 환경도 아니다. 따라서 많은 업체들이 공존하며 나름의 개성을 가진다. 
4.일본 소비자는 상당히 품질에 까다롭다. 그런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제품이 외국에 나가서 우수성을 인정받아 선택된다. 
5. 그 결과가 다시 일본으로 피드백되어 경제적 이익과 신제품 개발의 계기로 작용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혁신을 맞아 스타트가 늦어버리자 이 모든 상황이 반전되어 단점으로 작용했다. 지금 일본 전자업계의 악순환은 이렇다.

1. 안정적인 내수시장 덕분에 혁신적 기술변화가 있어도 당장 체감적으로 생사의 위기를 느끼지 못한다.
2. 기술자들의 자존심 때문에 한번에 기존기술을 버리고 새 기술로 가지 못한다. 기존 기술을 개량해서 어떻게든 대응해보려고 한다. 때문에 세계의 흐름에 대한 대응이 아주 늦어버린다.
3. 주변에 일본을 위협할 나라가 없기에 위기가 와도 당장 업체별로는 매출감소가 크지 않다. 
4.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의 입맛만 살짝 맞춰도 일본 독자규격이 많은 내수시장은 최악의 경우에도 그럭저럭 지킬 수 있다.
5. 그 결과로 일본에서만 그럭저럭 연명하는 업체들이 생긴다. 세계시장의 흐름에 대응하기를 포기하면서 완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밀려난다.

정리해보자. 일본업체는 기술적으로나 마케팅적으로나 우수한 업체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 같이 기민하게 모든 기존 상식을 버리고 접근해야 하는 분야를 맞아 어쩔줄 모르고 있다. 더구나 그나마 기업의 생명을 이어주는 일본내수시장의 단맛은 업체들의 추격의지조차 없애고 있다.


'혁신? 기업체질 개선? 왜 굳이 그렇게 힘들게 까지 해서 수출을 해야하지?'란 순진한 눈망울을 한 꼬마 같은 업체들이 아직도 일본에는 널려있다. 노키아의 몰락과 모토로라의 추락을 눈앞에서도 보면서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려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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