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엔저 현상으로 일본 기업이 살아나고 있다. 달러당 100엔을 돌파한 환율 덕분에 일본 제품의 가격이 많이 싸진 덕분이다. 일본 가전제품과 자동차의 경쟁력이 살아나고 동시에 이와 경쟁하는 한국제품은 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하다못해 동네 이마트에만 가봐도 갑자기 일제 과자와 생필품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품질은 좋지만 그동안 가격 경쟁력이 안되어 들여오지 못했던 품목이 엔저를 맞아 수입되고 있는 것이다.



산요해체


하지만 이런 좋은 현상을 맞아도 이미 기울어진 기업은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게도 상당히 익숙했던 일본의 전자 브랜드 산요가 해체될 전망이다. 산요를 인수한 일본회사 파나소닉이 산요 해체를 결정했다. (출처) 


파나소닉이 산요 해체를 선언했다. 전성기에는 매출 20조원을 웃돌던 일본의 대표 전자 기업 중 하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9일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향후 3년 내에 현재 2500명 수준인 자회사 산요의 인원을 90% 정도 줄이기로 결정했다. 올해 내에 산요 본사 직원 1000여명을 전환배치와 조기퇴직으로 줄인다. 돗토리 현에 있는 자회사 산요테크노솔루션은 매각하고 북미 TV사업은 계열 분리할 방침이다.


산요해체


니혼게이자이는 1950년 설립한 산요가 63년 만에 없어지는 수순을 밟는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8년 결정한 파나소닉의 산요 인수는 결과적으로 실패라고 바라봤다. 산요의 핵심 자산이던 리튬이온전지 등 에너지 사업은 파나소닉이 인수한 후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7000억엔(약 7조7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산요 인수 발표회장에서 오쓰보 후미오 파나소닉 사장은 “미래 성장 엔진을 위해 산요와 손잡는다”고 말했다. 당시 산요는 세계 리튬이온전지 시장 4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1위를 달렸다.


인수 발표 직전에 터진 리먼 사태로 양사의 실적은 악화됐다. 한국 기업의 맹추격에 엔고 현상이 겹치면서 리튬이온전지 시장의 강세도 꺾였다. 파나소닉이 산요 인수에 쓴 돈은 8000억엔(약 8조8000억원) 수준이다. 산요 기업 가치 하락으로 5000억엔(약 5조5000억원)이 없어졌다. 여기에 이번 인력 구조조정 비용까지 더해지면 산요 인수 자금이 전부 날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요해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 만화 '시마 사장' 에도 파나소닉의 산요인수가 표현되어 있다. 하츠시바가 고요전기를 인수하는 것으로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찾겠가는 내용으로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묘사했다. 만화 안에서는 일말의 불안속에서도 주인공의 전망과 함께 두 회사가 장점을 나누며 함께 가는 매우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산요해체


하지만 결국 만화와 현실은 달랐다. 현실속에서 결국 이익이 나지 못하는 회사는 기울어진다. 그리고 인수된 회사 역시 성과가 나지 않으면 없어진다. 일본 특유의 화합정신조차도 현실의 경영난에서는 이렇듯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하다못해 자동차 브랜드처럼 상표 만이라도 남길 수 있지만 그럴 가치도 없다고 본 모양이다. 대표적인 산요 브랜드인 에네루프 전지 조차도 앞으로는 파나소닉 에네루프로 나올 것 같다. 공식적으로 파나소닉은 산요해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해체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산요해체


산요 해체가 보여주는 일본기업의 약점은?


극심한 변화의 기로에 설 때 일본 기업은 대체로 점진적인 개선을 선택한다. 기존의 구조를 최대한 유지한 채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만 어떻게든 바꾸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것은 정체성을 유지한 좋은 개선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아날로그 기술 영역에서는 상당히 좋은 방법이다. 회사의 정체성과 제품의 개성을 유지한 상태로 최신 유행에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의 바람이 불고 패러다임이 변해버렸을 때, 이런 일본기업의 성향은 돌이킬 수 없는 판단착오를 불러온다. 커다란 약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비슷한 계열 산업에 상당히 많은 브랜드가 있다.


산요해체


예를 들어 겨우 1억 2천만 인구의 일본시장인데 자동차를 만드는 브랜드는 도요타, 닛산 같은 대기업 뿐만 아니라 혼다, 마즈다를 비롯해서 바이크 업체도 경차를 만들 정도이다. 이들 모두가 나름의 이유와 개성이 있긴 하다. 하지만 만일 앞으로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 IT기술이 전면 결합되는 자동차 시대로 전환된다면 전부 생존할 수 있을까?


일찌기 소니 워크맨이 유행하던 시대에 디지털 액정 디스플레이를 도입한 좋은 워크맨 제품을 만들었던 아이와라는 브랜드가 있다. 하지만 아이와는 소니에 인수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니가 나쁜게 아니다. 워크맨의 전성 시대가 지나자 별다른 대비가 없던 아이와의 잘못이다.


산요해체


산요 역시 마찬가지이다. 회사의 개성과 창립이념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결국 이익을 내고 생존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산요 해체는 극심한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한 일본기업의 약점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