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는 수많은 전설을 낳았다. 스타크래프트의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그 전략성에 있다. 테란과 프로토스, 저그가 마치 가위바위보처럼 물고 물리는 종족  특성을 지닌다. 그 위에 상대 종족을 상대하는 전략과 전술이 개인의 실력과 얽혀들어가면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는 경기가 펼쳐진다.



내가 삼성을 인정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은 전략적인 수준에서 아주 당연하고도 평이한데도 그것을 상대가 막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최대 승부수인 반도체 시장을 보자. 상대인 일본의 전자회사들은 삼성의 반도체 시장 참전과 추격에 대해서 매우 고전적인 방법으로 대응했다. 상대 개발품에 대한 가격 떨어뜨리기와 기술보호를 이유로 한 까다로운 기술 장벽설치였다. 그것은 상대에 대해 일체의 교류를 거부하면 저절로 나가떨어질 거라는 적대전략일 뿐이다.

삼성 역시 그런 상대의 전략에 대해서 무슨 기발한 전략을 구사한 것이 아니다. 삼성의 최대 강점인 신속한 의사결정과 전사적인 집중력으로 응수했다. 일본 반도체 업체의 공식적인 패인분석에 의하면 일본이 경기불황에 겁을 먹고는 설비증설을 주저하고 있을 때 삼성은 도박과도 같이 엄청난 설비투자를 했다. 그것이 호황으로 이어졌을 때 삼성을 저절로 추격자에서 1인자로 만들어서 현재의 우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저 신속한 의사결정과 집중력 있는 자금 투자일 뿐이다.

시대에 따라 경쟁상대는 바뀐다. 그리고 지금 스마트폰에서 최고의 이익을 내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쟁상대는 일본이 아닌 미국의 애플이란 회사이다. 때와 장소는 바뀌었지만 삼성의 전략은 한결같다. 그룹 리더의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스마트폰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후 전사적인 지원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삼성은 갤럭시 시리즈로 전세계에서 그나마 아이폰에 대항해서 큰 수익을 내는 유일한 경쟁상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 외에는 모두 카피캣이라고 생각하는 애플과 법정소송에 이르렀다. 오늘은 이 가운데 내가 이 재판에서 삼성에 대해 느낀 안타까움을 말해보겠다.(출처, 번역 클리앙 최완기님)

애플-삼성 재판에서 삼성은 오늘 애플 특허들의 무효를 입증하기 위해 제프 한의 2006년 멀티터치 시연을 법장에서 공개했다.
 
오늘 삼성 측 마지막 전문가 증인으로 나온 스티픈 그레이는 애플의 2 유틸리티 특허들이 -- 탭-투-줌과 멀티터치 기능을 커버하는 -- 이미 존재했던 소프트웨어와 특허들 (선행기술) 때문에 무효라고 증언했다. 
 
애플의 멀티터치 특허는 다른 종류의 터치 입력 -- 스크롤링을 위한 한 손가락과 주밍과 스케일링을 위한 두 손가락 사용 -- 사이에 차별화 하는 시스템 방식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레이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COBOL을 포함한 수개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들에 능통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 Xerox 직원이었고, TGI 프라이데이 같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온라인 인터랙티브 바 트리비어 게임을 개발한 NTN 커뮤니케이션스의 CTO였다. 
 
그레이는 애플 특허들과 비슷한 시스템을 설명해 주는 1998년 "노무라" 일본 특허를 보여주었고, 두 손가락 제스처로 이미지들을 확대하는 DiamondTouch Fractal 줌 어플리케이션들 예로 들었다.

삼성 변호사는 iPhone 이전에 존재했던 멀티터칭 컴퓨팅의 다른 예인 2006년 TED 이벤트에서 제프 한이 행했던 멀티터치 시연을 재생해 보여주었다.
 
 


전후사정을 포함해서 이 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여러 개의 손가락을 이용해 화면을 확대하고 축소하는 등의 기술에 대해 애플은 그것이 자기 고유의 특허라고 주장한다. 

2. 하지만 삼성은 이것이 이미 이전부터 있었던 아이디어이며 실제로 구현되고 있기에 애플만의 특허로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갤럭시폰이 이것을 사용해도 애플이 문제삼을 수 없다는 논리다.

이 부분에서는 애플이 그다지 유리할 것이 없다. 삼성의 증거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고 아마도 애플의 이 특허는 이번 재판에서 그다지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지엽적인 것에 있지 않다.

삼성은 추격전략으로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삼성은 결코 시대의 흐름을 모르지 않았다. 이미 휴대폰 시장에서는 애플보다 선배이다. 또한 옴니아 시리즈를 통해 초기 스마트폰도 내놓고 있었다. 멀티터치의 존재도 전부 알고 있었으며 시대의 흐름이 결국 휴대폰 하나로 모든 컴퓨터의 기능을 대신하게 될 거란 사실도 내부 프로세스를 통해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삼성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기술만을 적당히 버무린 정도의 제품만 내놓고 요란한 광고에 주력했을 뿐이다. 뻔히 스스로가 아는 멀티터치 기술과 시대의 트렌드, 그 위에 뻔히 아는 미래전망을 결합해서 무엇인가 업계를 리드할 만한 제품을 기획하지 않았다. 그렇다. 못한 게 아니라 안한 것이다. 그 증거로 이건희 회장이 위기를 느끼고 돌아와서는 일갈하면서 사업부를 독촉하자 최단 시간 내에  안드로이드 진영 최고의 성능을 가진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나는 삼성이 최소한 시대의 흐름 가운데 일부- 멀티터치 등을 비롯한 일련의 흐름을 몰라서 아이폰에게 기회를 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닌 듯 하다. 삼성은 본능적으로 추격전략 밖에 하지 않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알면서도 무엇인가 혁신적인 것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경우의 위험을 싫어하는 것이다. 설령 그 위험을 감수해서 성공하면 엄청난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삼성은 아직까지는 최고의 추격자일 뿐이다. 누군가 실패하고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검증된 시장이 형성되기만 기다리는 것이 삼성의 추격전략이다. 막상 스스로가 전사적으로 앞장서는 혁신의 리더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리더가 된다는 것은 앞장서서 실패하면서 모든 손실과 비웃음을 맞을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쉽게 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삼성이 여간한 실패 정도로 망할 기업도 아니다. 추격전략만으로는 절대로 리더로 인정받을 수 없는 분야에서조차 삼성은 최고의 추격자로만 만족한다. 카레이스에서도 일부러 뒤를 따라가며 공기저항을 덜 받는 전략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앞으로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1등이 되기 위한 수단이다.



삼성의 추격자 전략에는 1등이 되어서 존경받는 리더가 되기 위한 어떤 것이 없다. 그것이 나는 너무도 안타깝다. 세월이 지나도 삼성이 결국 '잘 따라오는 추격기업' 으로만 세계사람에게 기억된다면 과연 그것이 좋은 결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