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당연한 말이지만 정치인은 사람이다. 평상시에 TV나 선거유세 현장에서 볼 때 정치인은 다소 딱딱해 보인다. 사실 그때의 정치인은 평범한 자연인이라기 보다는 당을 대표해서 나가는 선수이며 정책을 말하는 홍보기계와 같은 면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여야나 남녀를 막론하고 공통된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때 정치인에게 인간적인 면을 거의 보지 못한다.



그러나 사석으로 나오면 다르다. 정치인이라고 해도 숨쉬고, 밥먹고, 희노애락이 있으며 농담도 할 줄 아는 인간의 면모를 보여준다. 정책이나 당론이라는 압박에서 풀려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인간적인 면모는 유권자로서는 그다지 알 필요없다. 유권자는 정치인의 성격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정치인의 정책과 추진력을 기대하고 뽑니다. 다만 성격을 보는 것은 그 가운데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 정책이며,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지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 문재인. 그 이름이 앞에 걸린 블로거 간담회에 나가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순간에 보아야 할 것이 과연 정치인 문재인이어야 할지, 자연인 문재인이어야 할지 망설였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간담회에 가는데 무슨 자연인?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블로거 간담회라는 게 기자들을 모아놓고 하는 딱딱한 기자회견이나 무슨 출마선언 자리는 아니다. 블로거는 법적으로는 언론인이 아니며 사실상 아무런 지위도 없다. 그냥 시민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블로거는 정치성향을 강하게 보이지 않는다. 만일 문재인 의원이 그냥 정견발표를 하겠다며 간담회를 열었다면 대부분은 참가신청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문재인 후보의 이미지를 정리해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현 친노세력의 대표주자, 차기 대권주자, 얼마전 당선된 부산지역 국회의원 등 여러 모습이 있다. 강한 인상의 신사라는 이미지도 있다. 하지만 쉽게 이미지가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간담회 자리에는 많은 블로거들이 있었다. 정치와 시사에서 IT, 비즈니스와 방송, 연예까지 다루는 분야도 다양하다. 이들 각자에게 문재인의 모습은 어떻게 비칠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래도 굳이 문재인을 감싸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감성'일 것이다. 애초에 그는 정치를 할 의지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만료와 함께 본래라면 그냥 시민으로 살아갔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몰아닥친 친노세력에 대한 탄압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그를 정치판으로 다시 끌어당겼다.    



문재인은 그것은 조용히 '운명'이라고만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거부할 수 있는 운명이었다. 운명이라는 수동적인 표현을 썼지만 실은 '분노' 에 가깝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된다는 분노이다.    

블로거 들은 문재인을 둘러싼 많은 호칭 가운데 국회의원을 뜻하는 '의원'을 골랐다. 문재인 의원은 질문자가 단점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가장 큰 단점은 원칙주의자 고지식, 융통성 없고 재미도 없다. 좀더 여유있고 유머있으면 좋겠는데..  잘 웃기는 사람으로 대선후보를 정하면 좋을 듯 싶다. 캠프에 재밌는 분이 있다.

원칙주의자이기에 그는 삐뚤어진 현실을 그냥 체념하고 묻혀 살지 못했다. 스스로가 현실을 타파하는 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그걸 왜 하지 않고 있느냐는 주위의 질책도 견디지 못한다. 그는 정말로 정치가 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성격이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정치인 문재인을 만들어버렸다.



이런 다소 비장한(?) 결심을 하고 나왔지만 묘하게도 블로거 간담회 자체는 너무도 화기애애했다. 문재인 의원에게 곧 결혼할 커플이 장래를 축복해달라는 부탁을 하자 모두가 환하게 웃었다. 또한 길고 어려운 질문을 마친 블로거가 대답을 기다리는 데 '뭐라고요? 질문이 뭐였죠?' 라는 대답으로 다시 웃음보가 터졌다.



이 날 문재인 의원에게 집중된 블로거의 질문은 주로 정치적인 행보에 대해서였다. 권력의지가 아직도 다소 약한 그가 어떻게 욕심을 부려 대권주자 자리를 획득할 것인가, 당내의 복잡한 세력을 어떻게 조정하면서 야권을 단합시킬 것인가 하는 어려운 질문이었다. 가장 뜨거운 이슈인 야권 단일화- 특히 안철수 교수와의 단일화에 대한 의견을 보자.



나는 정치색이 다른 세력과는 연대할 생각이 없다. 우리끼리 연합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안철수 원장은 나와 정치색이 같다고 생각한다.

표 차이는 중요한 부분인데 실제로 복지, 경제민주화 .남북관계 등을 과단성 있게 추진해 나가려면 보다 더 크게 안정적으로 이길 필요가 있다. 근소한 차이로 이기면 계획을 힘있게 추진하기 힘들다.

물론 새누리당보다 지지도가 낮기 때문에 힘들긴 하다. 하지만 저쪽은 특정 후보에게 힘을 밀어주고 있고 우리는 지지율이 나눠져 있다. 민주통합당도 단일후보가 정해지고 안철수 원장도 함께 한다면 여러가지 시너지 효과로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많이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다.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가 강하게 드러난다.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고 이기고야 말겠다는 그런 의지는 여전히 없다. 따라서 지지자들은 문재인에게 도덕성과 페어플레이를 보장받았지만 승리를 보장받지는 못할 듯 싶다. 승리는 지지자들이 배를 밀어올리는 물처럼 만들어줘야 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에게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부정부패에 대한 질문에서도 문재인은 단호했다.

내가 부정부패하게 생겼나?(웃음)
나는 누구보다 떳떳하다고 생각한다. 다들 가난할 때 가난했다. 국민들이 힘들 때 힘들었다. 민주화 투쟁과 개인적 희생도 치뤘다.

군대도 다녀왔다. 사법시험도 합격, 혼자 잘 살려고 하지 않고 인권변호사를 하면서 본인의 능력을 나누려 했다. 참여 정부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도 했다. 어느 누구보다 떳떳한 삶을 살아왔다.

국민들의 고통을 없애고, 서민들을 잘살게 하겠다고 다들 말하지만 체험없이 그걸 할 수 없다. 나는 그 부분에 있어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서두에서 농담으로 시작했듯 이 부분에서는 특별히 힘을 주어서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이 강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믿어달라는 말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어차피 스스로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보면 다 알 거란 뜻이다. 하긴 문재인 의원 개인에게 있어서는 어떤 도덕적 흠결이 없다. 그 흔한 위장전입 한 번이 없으니 자신만만할 자격이 있다.

문재인 의원, 블로거와 즐거운 소통을 나누다.

그렇다면 문재인 의원은 어째서 이렇게 블로거들과 소통하는 자리에 나왔을까? 그 시간에 기자회견을 한번 더하든가 연설과 강연 한번을 더할 수 있으면 정치적으로는 더 유익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보통 낡은 정치인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문재인 의원은 인터넷과 소통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언론 환경이 열악하다. 기울어진 경기장 같다. 경기장에서 우리는 아래 쪽에 있음. 불공평한 경기이지만 극복해야 한다. 요즘은 과거보다 그런 불리함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오프라인 상의 언론 장악력이 과거보다 낮아지고  인터넷 매체들의 영향력이나 개별 블로거들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구도를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 바로 잡는다면 콘텐츠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다. 문재인 의원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메이저 언론을 상대하려면 유권자 개인과 좀더 소통해야 한다. 그런 징검다리로서 풀뿌리 매체에 가까운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가 적격이기 때문이다.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자본이나 권력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매체이다. 



물론 이제 다가올 대통령 선거를 맞아서 치열한 홍보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블로그를 포함해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망라한 모든 공간에서 각 후보자들이 정책을 홍보하고 인간적 면모를 호소할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의원과의 간담회를 마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치열한 경쟁이 단지 홍보가 아닌 소통의 경쟁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단지 자기 정책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정책에 반영하며 끝까지 지키려는 신뢰구축 경쟁으로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문재인 의원과의 즐거운 간담회를 마칠 때까지 나는 준비했던 질문을 하지 못했다. IT 평론가로서 카카오톡을 망중립성에 대한 견해를 묻고, 너무 비싼 한국의 통신요금을 어떻게 하면 인하할 지 정책대안을 질문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구체적인 정책제시가 보다 많은 표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거와 즐거운 소통을 해준 문재인 의원의 말과 행동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대통령 후보가 되고, 혹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지금의 마음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는 훌륭한 정치인이자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후에도 문재인 의원이 많은 사람과 즐거운 소통을 나누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