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만화적 상상력이라고 하는 재미있는 상상 가운데 이런 게 있다. 돈과 시간이 넘쳐나는 나머지 지나치게 럭셔리하게 모든 것을 꾸미는 것이다. 금으로 만든 의자라든가, 은으로 만든 탁자 같은 건 애교다. 1대에 20억짜리 자동차를 이용해서 택시영업을 한다든가,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해 유럽에서 달팽이 요리를 배달해서 먹는다는 그런 것 말이다.



이런 모든 행위의 뒤에는 엄청난 자원의 낭비와 더불어서 그런 낭비를 하고도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재화가 많다는 과시욕이 압축되어 있다. 그러니까 실제적인 효율과는 별 상관이 없다. 금으로 만든 밥그릇으로 밥을 담아 먹는다고 해서 영양가가 올라가거나 무병장수하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근래에 들어서 과열된 경쟁 가운데 스마트폰 경쟁이 있다. 워낙 치열한 경쟁속에서 다른 회사보다 조금이라도 나아보이려 하다보니 효율이나 제반 환경에 대한 고려는 점차 희미해진다. 그런 가운데 이런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한가지 뉴스가 나왔다.(출처)



노키아와 광학기술 업체 칼자이스와 현지시각으로 5월2일, 독점 계약을 맺었다. 칼자이스는 노키아에 칼자이스 광학 렌즈와 고품질 이미지 센서를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2005년부터 칼자이스와 불연속적인 협력을 이어 왔던 노키아가 이번 계약을 통해 지속적인 협력을 이어가는 쪽으로 계약 내용을 확장한 셈이다. 앞으로 노키아가 만드는 스마트폰에 고성능 카메라가 적용돼 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노키아가 앞으로 출시할 윈도우폰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제품에서도 칼자이스의 렌즈와 이미지센서를 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조 할로우 노키아 스마트디바이스부문 수석 부사장은 “‘퓨어뷰 808′의 카메라 기술을 윈도우폰에 적용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키아가 칼자이스의 기술을 독점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 점은 노키아 제품의 매력을 높일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이번 협력이 노키아의 시장 확장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 생긴다. 카메라 성능이 스마트폰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고성능 카메라폰을 만들려는 노키아를 보면, 90년대 전자 손목시계 업계가 벌인 방수기술 경쟁이 떠오른다. 200m, 혹은 400m 깊이의 물 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방수기술은 대부분 사용자에게 필요 없는 기능이다. 제품 가격만 올린 꼴이다. 차별화 전략을 잘못 짚은 업계의 실수였다.

디지털 카메라는 간략히 말해서 렌즈와 촬상센서, 이미지 프로세서의 세 가지 요소로 이뤄진다. 렌즈는 최초로 빛을 외부에서 받아모아서 효과적으로 집약시킨다. 촬상센서는 그 빛을 받아 가장 손실없는 형태의 전기신호로 바꾼다. 이미지 프로세서는 그 전기신호를 바탕으로 현실과 가장 가까운 색감, 형태의 그래픽으로 구성한다.

이 가운데 가장 기술력이 극한으로 필요하면서도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분야는 바로 렌즈다. 유일하게 아날로그 분야이기도 한 이 분야는 독일과 일본의 독무대다. 최고가 브랜드는 독일의 칼 자이스, 라이카, 슈나이더 가 차지하고, 중가 이하 브랜드는 일본의 캐논, 니콘, 시그마 등의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칼 자이스는 그 성능과 품질에서 가장 정평이 난 브랜드로서 왜곡이 적고 극도로 선명한 특징을 자랑하고 있다. 현재 DSLR에서는 소니가 칼자이스와 제휴를 맺고 있는데 스마트폰에서는 노키아가 잽싸게 독점기술 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분명 칼자이스라면 그 렌즈 성능에서는 탁월할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이것이 전체적인 스마트폰에서 의미가 있을까?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경쟁이 의미있을까?

스마트폰 속에 들어가는 카메라모듈은 너무도 제한된 환경을 가진다. 얇고 가벼워야 하는 스마트폰 특성상 크기가 작아야 하니 빛을 받을 렌즈와 촬상센서도 작아야 한다. 그런데 작아서 빛을 적게 받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렌즈라도 성능이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빛 자체가 적게 들어오면 어떤 뛰어난 촬상센서도 좋은 품질의 사진을 만들지 못한다. 더구나 초점거리도 짧아야 하고 렌즈 매수도 제한된다.



이런 조건에서 아무리 칼 자이스라고 할 지라도 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칼 자이스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카메라 모듈이 타사보다 고작 몇 퍼센트 정도의 성능우위만 보일 수도 있다. 렌즈란 것은 기본적으로 광학기술이다. 광학이란 그 뒤에 받쳐주는 디지털 센서의 성능이 받쳐줘야 의미가 있다. 

위의 기사에서는 방수시계 유행을 예로 들어 쓸데없는 방향의 성능개선이라고 했지만 사실 핵심이 약간 빗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향도 쓸데없지만 실질적으로 칼자이스가 만든다고 해도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현 상황에서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은 더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센서와 초점거리, 모듈 크기가 렌즈를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키아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칼 자이스의 렌즈라는 건 기껏해야 브랜드가 가져다 주는 명품 이미지 외에 실질적 성능이 따라주기 힘들다. 예전에 소니에서 컴팩트 카메라에 칼자이스 렌즈를 장착해서 내놓았을 때도 그다지 좋은 반응은 없었다.



스마트폰 카메라에서 지나친 렌즈경쟁은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런 렌즈 경쟁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향하려면 이제까지의 작고 가벼워야 했던 카메라 모듈 부품 자체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폰과 별도로 외부 옵션으로 장착할 수 있는 카메라라든가, 미러리스 기술을 이용해서 극단적으로 초점거리를 줄이면서 동시에 큰 면적의 센서를 장착하는 기술 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칼자이스의 명품 렌즈도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저 처음에 들었던 예시대로 칼자이스와 노키아의 결합은 지나친 럭셔리함을 상징하는 비효율성만 보일 것이다.실질적인 성능향상도 거의 없는 가운데 가격만 비싸진 스마트폰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걸 원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