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적인 정책이라는 걸 세우는 사람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작은 어선의 키를 돌리는 건 그다지 큰 생각없이 해도 되지만, 커다란 컨테이너선이나 상선의 진로를 변경하는 일은 상당한 생각이 있어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한국의 통신시장은 대부분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인터넷이 전성기를 맞던 때의 유선인터넷 사업 시장도 그랬다. 또한 휴대폰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둘러싼 시장이 거대한 규모로 성장하며 돈을 벌어주고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생겨나고 없어지는 많은 정책들 가운데 깊은 생각이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출처) 


SK텔레콤에 이어 KT 마저 4세대(4G)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에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폐지했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 가입자 2000만명 돌파에 기폭제가 됐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는 4G LTE 시대 들어 완전히 종적을 감추게 됐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는 KT에 아이폰 도입 선수를 빼앗긴 SK텔레콤이 3G 이동통신 서비스에 도입하면서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무엇보다 월 5만4000원의 정액 요금만 내면 무선인터넷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카카오톡과 같은 토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성장할 수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마트폰 이용자의 50% 이상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사용할 만큼 이에 대한 선호도는 높다.


이석채 KT 회장은 “유한한 자원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는 경제논리에 맞지 않다”며 “소수의 몇 사람이 과도한 트래픽을 발생시켜 나머지 가입자가 느린 인터넷을 사용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앞으로도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도입할 뜻이 없다는 점을 못박은 셈이다.


한편, KT는 4G LTE 가입자가 또 다른 KT 가입자에게 전화를 거는 ‘망내 음성통화’ 가격을 크게 낮췄다. 요금제별로 최다 1만분까지 추가로 쓸 수 있어 사실상 무제한 통화가 가능해졌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는 도입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 요금제에 얽힌 문제점이 심각하게 논의될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초기 도입할 때 수요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장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마치 책임지지 못할 채권을 발행하는 식으로 나중에 뒷감당을 할 수 없는 사태를 맞이한다.


한국의 이통사는 이 가운데 선택을 했다. 초기에 사용자들이 데이터를 알뜰하게 쓰려고 해서 소비가 위축되는 걸 보느니 차라리 활성화를 위해 나중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세상 일이 그렇듯이 당장의 달콤함이 나중의 쓰디쓴 맛보다 더 실감나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비싼 이자율의 사채를 끌어쓰면서 당장 쉽게 돈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스마트폰등으로 인한 각종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이통사와 단말기 제조사 모두가 돈을 벌었다. 사용자들은 안심하고 데이터를 썼고 서비스 업체와 관련 업체 모두가 늘어나는 수익에 기뻐했다. 하지만 막상 그에 따른 폭발적인 트래픽의 증가 앞에서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이통사의 책임이다. 애당초 트래픽을 감당할 설비투자에 자신이 없었다면 무제한 요금제를 도입해선 안된다. 반대로 일단 도입하기로 결심했다면 적자가 나지 않는 한도에선 이윤을 설비에 쏟아넣어서라도 고객과의 계약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이통사는 매우 쉽고도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무제한 요금제로 인해 불어난 고객으로부터 이익은 기쁘게 취하지만 그에 따른 설비투자는 별로 늘리지 않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질낮은 통신망을 쓰게 되었고 이제와서 이통사는 그 잘못을 무제한 요금제 사용자 탓으로 돌리며 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이통사 무제한 요금제 폐지, 보완책은 있는가? 




문제는 단지 이제와서 요금제를 폐지했다는 것에 있지 않다. LTE망으로 급증하는 이용자에게 무제한 트래픽을 허용할 능력이 안된다면 폐지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진짜 문제는 그래서 예전에 무제한 요금제 도입으로 누렸던 관련 산업 활성화나 이용자 증가, 각종 인프라 발전이란 부분에 대한 보완책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솔직히 지금 LTE는 수도권 이외에는 잘 연결도 되지 않는다. 또한 빠르기는 해도 막상 광고대로 영화 한편 다운로드 받으면 용량을 엄청나게 소모하게 된다. 활성화가 되기가 매우 어렵다. 이래서야 새로운 서비스라고 딱히 더 요금을 받기도 어렵다. 아이폰은 아직 LTE를 지원하지 않는다.

 


보완책이 필요하다. 무제한 요금제를 굳이 부활시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무제한 요금제가 가져왔던 그런 좋은 효과를 보여줄 다른 유인책은 필요하다. 거시적으로 이통사와 단말기 업체가 이익을 보는 길을 생각하기를 바란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길이 진정으로 좋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