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나는 신기한 구경거리를 좋아했다. 어차피 그 시절에는 즐거운 체험을 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성적이고 모범생에 가까웠던 성격탓에 일탈을 하는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하다못해 방역차가 뿌리는 하얀 연기를 다 마시며 쫓아다니던 걸 생각하면 내 어린시절은 볼 거리에 목말라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등축제를 처음 보는 내 마음이 설레인 것은 어쩌면 이런 기억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일까. 따지고 보면 남자는 아이나 어른이나 별로 변하지 않으니까. 때마침 등축제를 만든 총감독님의 말을 듣고 구경할 기회가 왔다. 그래서 카메라 하나를 둘러메고 구경을 떠났다.


청계천 강을 따라 배치된 밝은 등이 사람을 불러모은다. 어둠이 깔리는 밤을 밝혀주는 것은 비단 차가운 전등불과 네온사인 만이 아니다. 따스한 느낌을 주는 등이란 도구가 새삼 귀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등을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 놓는 건 구경거리를 넘어 예술의 영역이다.


11월 4일부터 11월 20일까지 17일가 펼쳐지는 이번 등축제에는 세계 각국에서 만들어온 등이 전시된다. ‘등으로 보는 서울 옛이야기’라는 테마가 재미있는데 숭례문 모양으로 만든 등으로 비롯해서 전통을 상징하는 여러 모양이 있다. 


점등시간은 오후 5시에서 저녁 11시다. 적당히 어둑해지는 시간부터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등불의 모양이 그윽하고도 따스한 정겨움을 발산한다.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하나씩 등의 모양을 구경했다. 너무 잘 만들어진 등은 집 마당에 하나 놓고 싶을 정도로 탐났다.


전통적인 한국적 요소에서 시작된 등은 각국의 특색이 나타난 등으로 이어지다가 나중에는 아이들을 위한 캐릭터로 전개된다. 아이들의 대통령이라는 뽀로로 모양이 너무도 반갑다.


마지막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로봇- 로보트 태권브이로 끝난다. 태권브이 모양의 등이 한지로 만들어진 것이 인상적이다.

빛은 일상적으로 흔하다. 그러기에 보통은 그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는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등불의 모양으로 만들어지면 다시 한없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 불꽃놀이부터 시작해서 사람이 빛을 통해 무엇인가 마음에 감동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빛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불교의 연등은 거기에 종교적인 숭고함까지 더해준다.


서울 등축제에서 전시된 등을 다 보고난 뒤, 돌아오는 길에 어렸을 때를 회상했다. 그때는 볼거리가 없었지만 꿈은 정말 많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풍성한 볼거리와 즐거움을 위한 기회가 있지만 꿈이 옅어지고 있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게 이런 것일까. 내 마음속에 오늘 하나의 등을 매달아본다. 그 등이 희미해져가는 나의 꿈을 조금이라도 더 비춰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