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혹은 역사소설을 쓰는 소설가 사이에서 종종 결론을 내지 못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아니면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하는 질문이다.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것이라면, 반대로 영웅이 출현해서 시대의 흐름을 거꾸로 혹은 제대로 돌려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영웅은 시대에 저항할 수는 있어도 시대를 막지 못했다. 반대로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 뿐이라면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사람은 영웅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종종 영웅은  흐름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태어나고 활약한다.



애플을 만든 창업자는 세 명이지만 그 시작은 두 명이고 그 가운데 진정한 영웅은 스티브 잡스 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잡스는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는 스스로 그것을 선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애플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고, 매킨토시를 통해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보급했다. 또한 아이팟을 통해 온라인 음악시장을 만들었고, 아이폰으로 스마트폰을 완성했다. 또한 아이패드를 통해 태블릿이란 장르는 안정화시켰다.

스티브 잡스는 영웅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나오기 힘든 타입이다. 세계 제일의 컴퓨터를 만들겠다. 또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겠다. 이런 정도의 야심을 뒷받침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투자자와 인재를 쉽게 끌어들여 거침없이 일할 수 있는 곳은 미국 외에 없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비슷한 곳으로 일본이 있지만 그곳은 스케일이 작다. 일본에는 미니 애플이라고 볼 수 있는 닌텐도 정도의 회사 밖에는 나오지 못했다.



지금 서점가에 깔린 애플 관련 책과 인터넷에 올라오는 애플 찬양글만 보면 애플이 완전히 무적의 기업처럼 보인다. 80년대 내 동심을 사로잡았던 초인 슈퍼맨을 능가할 정도다. 애플이 취하는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미래의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궁극의 길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애플과 스티브 잡스가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를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찬찬히 알아보자.

어떤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은 당연하게도 그 나라의 장점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때문에 유럽 기업은 유럽의 문화적 우위와 합리주의를 물려받고, 일본 기업은 일본의 장인정신, 상명하복의 문화를 물려받는다. 한국의 삼성이나 현대 역시 한국인이 가지고 있던 유연함이나 패기, 도전정신, 유교문화를 물려받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미국 기업인 애플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양키정신을 물려받은 것이 애플이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미국의 약점 역시 물려받을 수 밖에 없다. 지금 미국 산업의 치명적 약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답이 나온다.



미국은 과연 선진공업국인가? 얼핏 이건 매우 우둔한 질문처럼 보인다. 미국이라면 당연히 선진공업국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겠지만 잠시 생각해보면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우선 미국의 주요 수출품을 보자. 밀이나 쌀, 쇠고기, 옥수수, 석유 등이다. 이건 농축산물과 광물이다. 아이폰이나 자동차, 윈도우 같은 것이 있긴 하지만 그 비중이 적다. 군사무기도 있긴 하지만 이걸 공업이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다.

우리가 보통 공업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주요 제조품인 전자제품, 철강제품, 기계, 선박, 각종 중간 부품, 자동차 등을 보자. 지금 미국은 그 어떤 곳에서도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상품을 갖고 있지 못하다. 헐리우드 영화, 디즈니 만화, 월가의 금융기업, 윈도우와 오피스 등은 공업이라기 보다 서비스산업, 컨텐츠 산업에 가깝다. 설탕물인 코카콜라를 공업제품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확실히 말해보자. 미국은 분명 ‘선진국’이지만 ‘공업국’이 아니다. 하다못해 스위스처럼 정밀시계나 맥가이버칼 하나 만들어 팔지 못하는 곳이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가 가지지 못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금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을 턱밑까지 쫓아간 애플도, 스스로 컴퓨터업계를 개척했던 스티브 잡스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쇠락한 미국의 공업생산력이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의 공업력은 어느 정도 세계적이었다. 미국 자동차가 세계에 수출되고 미제가 고급품의 대명사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까지의 미국은 선진공업국이었다. 따라서 초기의 애플2와 매킨토시 초기제품까지는 미국의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애플은 직접 공장도 가지고 고용창출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흥공업국 일본과 독일에게 점차 공업 경쟁력에서 뒤진 미국은 점차 공장으로 대표되는 굴뚝산업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일본업체에게 전자를 내주고, 독일에게 자동차를 내준 미국은 이어서 가전제품과 반도체를 한국에게 내주면서 공장 문을 하나씩 닫았다. 미국 컴퓨터 업체는 점점 디자인과 설계 회사로 변해갔다. 직접 공장을 운영할 수 없었기에 기술개발과 디자인만 하고는 실질적인 생산은 아시아의 임금 싸고 불량률 적은 공장에 맡겨야 했다. 애플의 중기 매킨토시는 한국에서도 조립생산을 맡았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이 없었던 게 아니다.



대통령 선거에도 나왔던 로스 페로는 미국 공업을 살리겠다는 야심이 있는 자본가였다. 또한 애플에서 나온 스티브 잡스는 그런 로스 페로를 부추겼다. 일본업체를 물리치고 미국공업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투자를 받은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 컴퓨터를 만들면서 미국 내에 공장을 세웠고 로봇이 거의 모든 공정을 책임지는 최신식 공장을 만들었다. 그것으로 일본과 경쟁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넥스트는 영업에 실패했고, 공장가동율은 형편없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런 자동화 공정과 함께 다른 곳보다 훨씬 많은 임금과 좋은 작업조건에도 불구하고 미국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이 공장의 불량률이 아시아 공장에 비해 훨씬 높았다는 사실이다. 즉, 스티브 잡스조차도 기울어져가는 미국의 공업생산력을 살리지는 못했다. 사실을 알게 된 로스 페로는 공장을 아시아로 옮기자고 했지만 잡스는 거부했다. 곧 로스 페로는 투자를 끊었고 넥스트사는 하드웨어 사업을 접어야 했다.(더 자세한 것은 출간된 책 ‘애플을 벗기다’ 127P 참조.)


지금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내놓고 승승장구하는 애플을 보자. 겉으로는 우아하게 ‘우리는 캘리포니아에서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합니다. 성가시게 직접 생산은 하지 않지요. 그건 중국이 알아서 해줄 겁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직접 하고 싶어도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설령 뉴멕시코의 값싼 땅에 공장을 짓고 멕시코 사람을 대량 고용해서 저임금에 일하게 하고, 일본 기계를 들여와 공장을 90프로 이상 자동화하더라도 소용없다. 그런 건 이미 넥스트때 잡스가 시도했다가 처절히 실패한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나 현재의 IBM처럼, 아예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철저히 소프트웨어만 파는 곳이라면 공업생산력은 사실 상관없다. 하지만 애플처럼 하드웨어에 집착하고,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와 묶어서 팔려는 회사가 공장 하나 가지지 못하고 모든 제품을 하청줘야 한다는 건 매우 불안한 점이다. 중국 폭스콘의 여러 상황이 자꾸 민감하게 애플을 자극하지만 별 대책을 못세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자체 공장을 가지고 운영할 능력이 전혀 없다. 그리고 이것은 굳이 애플이 아닌 현재 미국 전체가 가진 약점이다. 
 
그러면 과연 이것이 애플의 약점이 될 것인가? 지금 굳이 공장 하나 없어도 최고의 이윤을 창출하는 애플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약점이 안될 수도 있다. 애플이 삼성과 대립하지 않는다는 상태에서는 말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이자 공장기업인 삼성과 정면충돌하는 상황에서 이 점은 커다란 약점이 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런 공업생산력의 차이가 삼성과 애플의 대립구도에서 어떤 변수가 될 지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