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어젯밤 미국에서 열린 WWDC 에 나온 애플의 새로운 발표에 경악할 만한 내용이나 제품은 없었다. 제품을 발표하기까지 지독한 비밀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깜짝 놀라는 표정을 즐기는 애플이지만 이제 더이상 집요한 언론의 추적을 따돌리기는 어려운 듯 하다. 부품공장이나 유통망을 통해서라도 정보를 뽑아내기에 대부분의 소식은 마치 보도자료 마냥 손에 쥐고 있으면서 발표를 듣는 입장이 된다.


(이후 사진출처: 시넷, 지디넷 코리아, 인가젯)

이 발표의 개별적인 내용은 이미 많은 뉴스와 IT블로그 들이 잘 요약해주고 있다. 따라서 평론가로서 나는 핵심이 되는 테마를 하나 뽑아 분석해보겠다. 우선 다음 기사를 읽어보자.(출처)


지난 1978년 세계 최초의 일반인용 컴퓨터(PC)인 '애플II'를 개발했던 스티브 잡스가 33년만에 PC 시대에 종언을 고했다. 더 이상 PC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선통신과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하면 스마트폰, 태블릿PC로 PC가 하는 복잡한 작업을 척척 해내고 값싼 넷북으로 수백만원대의 고성능 컴퓨터를 원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6월 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 세계개발자회의(WWDC)에 참석한 스티브 잡스는 팝스타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 '기분 좋아(I Feel Good)'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병세는 완연했다. 눈에 띄게 수척한 모습.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지난 1978년 만들어 낸 PC 시대의 막을 내리고 클라우드컴퓨팅 시대를 열어젖혔다. 이날 잡스는 맥 PC의 새 운영체제(OS)인 OSX 라이언과 아이폰용 OS 'iOS5'의 발표는 다른 임원에게 맡기고 아이클라우드만 직접 소개했다.

스티브 잡스가 소개한 아이클라우드는 아이폰, 아이패드, 맥PC 사용자들이 갖고 있는 파일을 온라인상에 위치한 저장공간에 넣어 두고 애플의 어떤 기기를 이용하더라도 간편하게 꺼내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애플 제품을 쓰는 사람에게 5기가바이트(GB)의 용량이 무료로 제공된다.

스티브 잡스는 "클라우드를 단순히 하늘에 떠 있는 하드디스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우리가 만든 아이클라우드는 수많은 앱(App)과 자연스럽게 통합돼 모든 것이 자동으로 해결된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재미있는 점은 막상 제목은 스티브 잡스가 PC시대의 종언을 고했다고 하면서 내용에서는 구체적으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가 소개한 내용은 단지 클라우드 서비스인데 어째서 PC시대의 끝을 알렸다는 걸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기사를 다시 읽어보자.(출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사면 맨 먼저 하는 일이 '피시(PC)와 연결하기'였다. 계정 활성화를 비롯해 음악·사진 등을 넣으려면 피시에 다양한 모바일 기기를 연결해 '동기화' 단계를 밟아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잡스의 입에선 "우리는 피시를 (더이상 중심기기가 아닌) 그저그런 기기로 강등시킬 것"이라며 "디지털 삶의 중심인 디지털 허브를 클라우드로 옮기려 한다"는 얘기가 튀어나왔다. 애플이 올 가을 선보일 아이폰 운영체제(iOS5)는 더이상 피시와 연결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준다. 애플의 다양한 모바일 기기에서 계정에 로그인하면 무선랜(WiFi)을 통해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와 곧장 동기화되는 구조다. 그동안 애플이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를 무기로 피시의 역할을 점차 축소시키는'포스트 피시'전략을 펼쳐왔다면,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피시에 의존하지 않고도 애플의 모바일 기기만으로 다양한 기능을 쓸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애플의 특징으로 꼽히는 직관적 사용환경은 더욱 강화됐다. 잡스는 "다양한 기기를 동기화시키는 일은 짜증나는 일이었다"며"이제 모든 것은 자동으로 이뤄지고, 사용자는 새로운 사용법을 전혀 익힐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아이클라우드에서는 사용자가 무선랜 환경에 있기만 하면 음원 뿐 아니라 사진·문서 등 모든 데이터가 클라우드 서비스에 자동적으로 동기화된다.


이제는 좀더 잘 알게 된다. 결국 잡스의 말이 뜻하는 핵심은 아주 간단했다.

스티브 잡스, PC시대의 끝을 선언한 의미는?

스티브 잡스는 두 시대를 상징한다.
하나는 그가 워즈니악과 함께 만든 개인용 컴퓨터다. 애플2에서 매킨토시, 아이맥으로 이어지는 그 줄기의 커다란 흐름은 '보다 빠르고, 보다 용량이 크고, 보다 쉬운' 컴퓨터를 개인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계속해서 개인에게는 과분하다고 여겨졌던 엄청난 고성능을 개인용 컴퓨터(PC)에 탑재하도록 하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다른 하나는 잡스가 아이팟에서 시작해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이어온 스마트 모바일 기기다. 스마트 기기의 흐름은 '보다 가볍고, 보다 편리하며, 보다 잘 연결된' 휴대용 기기가 보급되어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기 자체의 스펙상 성능보다 오히려 그것이 제공하는 실질적 가치를 우선하는 흐름이다.


개인용 컴퓨터(PC)와 스마트 기기 두가지가 모두 잡스의 자식이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속에서 잡스는 하나를 도태시켜야했다. 그것이 바로 개인용컴퓨터였다. 스스로 위의 말을 통해서 잡스는 미래의 애플이 컴퓨터보다는 스마트 기기에 더 주력할 거란 비전을 제시했다.
그 의미는 너무도 명확하다. 더이상 낡은 PC개념을 고집하면 더 큰 목적인 미래의 혁신에 지장이 되기 때문이다. 미래를 얻기위해서는 과거의 영광조차 일정부분 포기해야 한다.

솔직히 클라우드 서비스 자체는 아직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개념이다. 또한 잡스가 저 말을 했다고 해서 당장 PC가 내일부터 지구에서 사라지거나 덜 팔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걸음씩 변화가 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가 쌓이는 순간 우리의 삶과 기기의 운명이 극적으로 갈리게 된다.


아이패드가 더이상 컴퓨터(맥)가 필요없이 스스로 완벽한 태블릿 컴퓨터가 되고, 아이폰이 컴퓨터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진을 관리하고 음악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는 건 그만큼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건 자칫하면 아직도 애플의 수익 가운데 30프로를 차지하는 맥을 포기한다는 의미로도 비쳐질 수 있다.


그럼에도 스티브 잡스는 PC시대의 끝을 말했고 포스트PC의 시대를 알렸다. 한 시대를 열었던 거장이 스스로 그 시대를 닫고 또 다른 시대를 선언하는 장면이다. 부쩍 야윈 모습의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주저함 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결단은 우리가 존경해야할 모습이다. 앞으로 포스트PC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기대해본다. 나머지 기능에 대한 평가는 이후 포스팅에서 하나씩 다뤄보겠다.